7. 내겐 너무 무거운 의무 ②
마음이 약해서 거절이라곤 못 하는 둘째 누나는 다음 날부터 초희 누나와 나란히 앉아 편물을 짰다. 흰 땡땡이 무늬 포플린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묶은 두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답답하게 생긴 기계인 편물기계 앞에 종일 앉아 있는 모습엔 나 같은 개구쟁이조차 걸음을 멈추고 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들은, 일을 한다기 보다는 무언가를 잊어버리려 애쓰는 사람들 같았다. 심지어 ‘내가 누구인가’조차도. 가끔은 앉은 채 잠이 든 사람들로 보이기도 했다. 명백한 건 그들이 지금 이곳에 있진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확실하게 느낀 것은, 두 여자가 겪어낸 실패가 그녀들을 꽤 멋지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건들이 그늘 속에 놓여 있을 때 훨씬 더 생생해 보이듯 그녀들은 상처 때문에 또렷하고 풍성해 보였다.
편물기계의 이중주 소리가 집의 숨소리로 느껴질 무렵 나는 특별한 풍경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비둘기들이 삼 주 동안 알을 품어 부화시킨 새끼들에게 젖을 먹여주는 모습이었다. 새들을 키운 지 삼 년이 넘었는데도 그 장면을 정면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소나 개, 고양이 같은 포유류가 아닌 새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다니. 아마 사람들은 코웃음을 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엄마 비둘기가 아직 깃털도 채 나지 않은 앙상한 아기 비둘기에게 젖을 먹여주는 모습은 상상을 초월했다. 새끼 새는 어미 새의 부리 안으로 머리를 깊숙이 집어넣어 어미의 모이주머니에서 만들어진 녹은 치즈 같은 젖을 쪽쪽 빨아먹었다. 꼭 빨대로 우유를 마시듯이. 새끼를 제 내장 깊은 곳에까지 받아들여주는 엄마 새는 지구상의 모든 암컷들의 모델 같았다. 더 놀라운 건 아빠 비둘기도 엄마 비둘기와 함께 새끼 새들이 곡식과 지렁이를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젖을 먹여준다는 사실이었다. 날 못마땅해 하면서도 내 호기심만큼은 존중해주는 아버지는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재미있어 했다.
“실제로 그 기간 동안은 수컷의 몸에서도 젖을 만드는 호르몬이 분비된다더라. 사람보다 진화한 종족이라고 해야 하나? 아, 저렇게 수컷도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새가 하나 더 있지. 아프리카에 사는 홍학! 젖도 분홍색이라던가. 나중에 한번 보러 가자.”
“정말이요?”
“그럼. 못 갈 게 뭐 있어?”
비둘기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까 봐 아버지와 어미 새들 몰래 비둘기 알들을 내다버리곤 하는 엄마도 새 부부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광경만큼은 최고로 쳐주었다. 엄마는 아버지 쪽을 힐긋 보며 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을 만큼 크게 말했다.
“어쩜, 새가 사람보다 낫네. 암컷이 혼자 삼 주 동안 알 낳고 품고 하며 고생하는 걸 못 봐 젖을 같이 먹여주다니. 아무래도 하느님이 사람들 보고 좀 배우라고 저렇게 별나게 만들어놓은 것 같애.”
*
그해 겨울 편물 솜씨가 부쩍 는 초희 누나는 가족들에게 스웨터를 한 벌씩 짜주었다. 아버지의 스웨터는 회색, 엄마 것은 치자색, 누나들 것은 무늬만 다른 연분홍색이었다. 내 스웨터는 하늘색이었는데, 그 색깔은 정말 봄 하늘처럼 연하고 푸르러서 오래 보고 있으면 가슴이 다 설렜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초희 누나는 온갖 무늬를 자유자재로 만들 줄 아는 둘째 누나에 비해 기술은 떨어져도 단순한 무늬들도 잘 활용하고 색깔들도 잘 섞어 탐나는 옷을 만들어낼 줄 알았다.
식구들의 칭찬을 듬뿍 받고 나자 자신감이 생겼는지 누나는 작품을 읍내 양품점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몇 주 뒤엔 양품점에서 주문도 들어 왔다. 엉겁결에 모녀의 생계 대책이 생긴 것이다. 둘째 누나도 경쟁을 하듯 작품을 내다 팔자 편물 기계 소리는 이젠 없으면 섭섭한 것이 돼버렸다.
이듬해 봄 집 뒷뜰의 흰 목련 봉오리들이 벌어질 무렵 구겨진 파지 같던 두 누나의 얼굴에도 표정이 살아났다. 정수리의 두피가 간지러워질 만큼 볕이 포근한 날이면 누나들은 방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일하며 얘기를 하다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어린이날 오후 선물을 사주겠다는 초희 누나와 함께 만물상에 갔을 때 우연히 만난 종수가 어이, 조지, 하고 날 부르자 누나는 폭소를 터뜨렸다. 명랑하고 당돌한 사춘기 소녀 같은 쨍한 웃음이었다. 골목을 빠져나온 뒤에도 누나는 다시 허리를 꺾고 깔깔깔 웃어댔다.
누나들 방 앞을 지나다가 두 여자가 웃는 걸 보고 묘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전혀 다르게 생긴 두 여자의 웃음이 놀랍도록 닮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두 누나의 웃음은 할머니를 닮아 있었다. 특히 입을 크게 벌리지 않고 입꼬리만 살짝 올리고 웃는 초희 누나의 미소는 할머니와 똑같았다. 두상과 코가 닮고 입매와 미소, 귓불까지 비슷하면 살아가는 모양도 닮는 걸까. 사람들은 완전히 달라질 순 없는 걸까.
그 무렵의 내 상태는 괜찮았다. 정확히, 휴전 상태라고나 할까. 전쟁 직후에나 느낄 법한, 서로를 무조건 가엾어 하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싸움으로 확대될 경쟁이 거의 없는 단순 놀이에 빠져들었고, 나 못지않게 마음앓이를 했을 종수까지 합류한 뒤엔 매일 모였다.
우리는 손목에 시간이 거꾸로 가는 시계라도 찬 듯 천진난만한 척하며 낙지와 털게를 잡고 자치기를 했다. 모든 생물의 내부를 투시해낼 것만 같은 함평의 여름 햇빛을 받으며 미친듯이 놀다 문득 마주보며 이빨을 드러내고 웃을 때의 동질감도 짜릿했다.
학교 성적도 좋았다. 공부에 관한한 훌륭한 모델인 막내누나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눈높이가 높아져 반 일 등쯤은 쉽게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