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내겐 너무 무거운 의무 ①
몸이 조금씩 나아져가던 어느 날 나는 문득 내가 방치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조차 나를 내버려두는 게 괘씸해 계속 아픈 척할까 했지만 답답해서 일어나고 말았다.
나는 잠깐 현기증을 다스린 뒤 마당으로 나가 문식이 형이 만들어준 팽이를 돌려봤다. 새하얗게 도는 팽이를 보며 두 눈을 막 비빌 때 먼지로 포장을 한 듯한 남자 구두가 보였다. 그것은, 아버지의 구두였다. 고개를 드니, 등지고 선 대문의 붉은색 때문에 더 창백해 보이는 아버지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의 뒤에서 더러운 소복을 입은 한 여자가 나타났다. 사촌인 초희 누나였다. 누나의 퉁퉁 부은 얼굴은 이목구비가 뭉개진 듯 흐릿했고,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데도 무생물 같았다.
그러나 누나의 손을 잡고 서 있는, 누나를 쏙 빼닮은 여자애의 표정은 불행을 겪고 낯선 장소로 옮겨온 힘없는 아이의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그 둥근 얼굴에 손만 대도 온몸이 ‘웨하스’같이 부서질 것 같았다.
엄마와 누나들이 방에서 나오다 초희 누나를 보자 우뚝 멈춰 섰다. 엄마는 누나 곁에 서 있는 여자아이에게 시선을 옮겼다. 엄마는 눈물과 콧물을 쏟기 시작한 아이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아가, 이리 온.”
아이가 뒷걸음질을 치며 울었다. 유리컵이 타일 바닥 위로 떨어졌을 때처럼 날카로운 소리였다. 초희 누나는 아이를 힐긋 보더니 달래주지도 않고 혼자 집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전 같으면 초희 누나에게 뛰어들었을 누나들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전염병 환자를 피하듯이. 엄마는 누나들을 살벌하게 째려본 뒤 제 엄마의 손을 놓치고 방황하는 아이를 안아 올렸다.
그날 초희 누나는 사택의 서쪽 끝에 있는 방에 짐을 풀었다. 그 방은 공부는 별로지만 욕심도 정도 많고 자수와 요리에도 재주가 있는 둘째 누나가 불란서 자수 액자들로 꾸며놓은 예쁜 방이었다. 초희 누나가 우리 집에 잠깐 다니러 온 것인지 살러온 것인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진 못했다.
신기한 건, 대입자격 시험에 떨어지고 돌아와 날개라도 부러진 사람의 포즈로 낡은 편물 기계로 머플러만 짜내며 시위를 벌여온 둘째 누나가 고분고분해진 것이었다.
그러나 둘째 누나는 초희 누나와 함께 있고 싶진 않은지 할머니 방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이미 할머니도 좋은 룸메이트는 아니었다. 초저녁부터 초희 누나 모녀를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 할머니의 머리카락들이 한순간에 하얗게 세어 있었다. 그뿐인가? 무표정한 얼굴도 미라가 저렇지 않을까 싶을 만큼 음산했다.
나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체온이 남아 있기나 한지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할머니를 우울하게 지켜보던 아버지는 여덟 시가 되자 외출을 해버렸다. 이런 날은 폭음을 해서 술집에서 뻗어버릴 게 훤하지만 엄마는 붙들지 않았다. 엄마는 아버지의 마음 같은 것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는 듯했다. 집안의 우울한 공기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진 나는 빨리 자버리기로 결정했다.
장롱에서 담요를 꺼내 아랫목에 깔고 누웠지만 잠은 와주지 않았다. 벽지의 자잘한 국화꽃 무늬들을 세본 뒤 머릿속에서 키운 병아리들의 수까지 세고 나서야 겨우 잠들었지만 괘종시계의 종소리도 식구들의 말도 다 들렸다. 특히 엄마와 둘째 누나가 나누는 대화가 선명했다.
“이 집안이 손이 귀한 집이긴 한가 봐. 초희 신랑도 집안 기운 땜에 저 지경이 돼버린 건 아닌가 싶다. 딱 하나 남은 남자인 네 아버지도 걱정이다. 네 큰아버지도 서른도 못돼 돌아가셨는데. 그래도 감전사가 뭐야, 감전사가…. 그 험하게 망가진 시체를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네 둘째 외삼촌이 그 일을 당했을 때 나도 얼마나 놀랐는데. 아무래도 초희가 네 아버질 원망할 것 같다. 내가 등 떠밀어 초희가 결혼할 때 신랑이 성격도 집안도 다 괜찮은데 직장이 기울어서 네 아버지가 나서서 여수 지사에 전공으로 입사시켜주었거든.”
“그럼 초희 언니는 정확히 몇 살에 우리 집에 왔어요?”
“세 살 때였지. 네 백모가 남편 장례 치른 지 꼭 넉 달 만에 이웃 마을로 재가를 해버렸거든. 딸은 시댁에 놔두고 젖먹이 아들만 데려가는 바람에 갓 시집와 애도 안 낳아본 내가 초희를 키웠잖니?”
“세상에, 겨우 열아홉 살에?”
“휴우, 너희들 할머니와 아버지 눈치 보느라 신혼이고 뭐고 없었다. 직장 좋은 것 하나 보고 왔더니…. 엄마랑 생이별한 애 울음과 짜증은 또 어떻구. 그렇게 일 년 반쯤 보냈나? 어느 날 밤 네 백모가 온몸이 발진으로 벌게진 아이를 안고 돌아왔어. 홍역이었지. 집안의 세 여자가 장손인 아이의 열을 꺾어보려고 밤을 꼬박 새워 간호를 했는데도 걘 아침까지 못 버티고 죽었어. 네 백모는 피를 토할 것 같이 서럽게 울더라. 죽은 듯이 누워 있다 한참 후 벌떡 일어나 방 안을 둘러보더니 허둥지둥 집 밖으로 나가대. 그게 끝이었어.”
“엄마, 그때 죽은 아이는? 그 후 얘기는 해준 적이 없잖아?”
“그날 낮에 할머니와 아버지가 애기 시체를 중간 크기의 항아리에 담았어. 원래 애들이 죽으면 그렇게 장사지내거든. 그새 아이가 자라 있어서 가뿐하게 담기질 못하고 뼈가 툭 부러지는데…. 내가 그 소릴 못 잊잖니? 그 지독히 추운 날 아이가 담긴 항아리를 지게에 지고 나가 선산에 묻고 돌아온 네 아버지가 소주 한 병을 단숨에 비우고 욕을 하더라. 독한 년, 나쁜 년이라고.”
*
어느 날 아버지가 퇴근길에 편물 기계를 한 대 더 사오셨다. 나는 처음엔 그것이 초희 누나에게 기계를 양보하고 심심해하는 둘째 누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버지는 낡은 기계 옆에 새 기계를 놓은 뒤 초희 누나를 쳐다봤다. 탐스러우면서도 새침하게 생긴 초희 누나가 일말의 관심도 없는 말간 눈으로 아담한 피아노 같은 새 기계를 내려다보자 아버지는 쑥스러워했다.
“주인이 최신형이라고 하더라. 구형엔 없던 기능들도 많다던데. 설명서를 한번 읽어보렴.”
그러나 초희 누나는 여전히 무심한 눈으로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새 기계와 검붉게 부식되어가는 헌 기계를 번갈아봤다. 잠시 후 누나는 유난히 긴 검지를 들어 낡은 기계를 가리켰다.
“전 길들여진 것이 편해요. 쓰던 걸 계속 쓸래요.”
둘째 누나의 얼굴이 장미 봉오리같이 벌어졌다. 강요당한 양보에 대한 보상으로 이토록 근사한 선물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는 듯이. 그러나 아버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오늘 밤부터 초희 언니와 방을 같이 써!’ 하고 명령했다.
그날 밤 아버지의 선언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찜통더위 속에 두 다리를 단정하게 모으고 앉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그림자 같은 초희 누나를 향해 그는 비장하게 말했다.
“네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진 마라. 내가 나서서 가늠을 해주마. 알겠니? 일단 이 집에서 아이와 함께 살거라. 애초에 이곳은 네 집이 아니냐? 네가 네 동생들과 함께 자란 집. 다음 일은 천천히 생각해보자.”
아버지의 눈이 젖어가는데도 누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말하는 일과는 무관하게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 텅 빈 도화지 같은 얼굴에 부딪히면 인생이나 운명, 불행 같은 심각한 말들도 조약돌처럼 튕겨져 나올 뿐이었다.
엄마만이 고통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요즘 엄마의 위장병이 도진 걸 알고 있었다. 엄마의 위는 우리 집의 행복과 불행의 기미를 탐지해내는 일종의 센서였다. 답답하거나 우울한 일이 생기면 엄마의 머리가 그걸 알아내기도 전에 위가 먼저 아픔을 호소하며 음식물을 밀어내곤 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초식동물이라도 된 듯 비린 것과 기름진 것을 삼키지 못하고 앙상하게 말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