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깜찍한 악마들 ②
“아버지. 아버지!”
일요일 아침 창호지를 투과한 노란 햇살 속에서 늦잠을 자던 아버지와 나는 마당 쪽에서 들리는 외침에 잠이 깼다.
“빨리 나와보세요! 빨리요!”
분명 목소리의 주인공은 막내누나였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막내누나는 평소에 큰소리를 거의 내지 않는 침착한 소녀였다. 멍한 얼굴로 마주보던 두 사람은 잠옷 바람으로 달려 나갔다.
마당 한가운데에 일요일인데도 단발머리를 깔끔하게 빗은 막내누나가 서 있었다. 누나의 청결한 흰 운동화 밑에선 잿빛이 섞인 푸르스름한 털들로 뒤덮인 수십 마리의 비둘기들이 구구거리고 있었다.
나는 몇 발자국 물러섰다. 회색과 청회색을 오묘하게 섞어 짠 털 담요를 마당에 깔아놓은 듯했다. 아니 싱싱한 겨울 바다 한 조각을 도려내 옮겨다놓은 것 같기도 했다. 대문 쪽에 있던 비둘기들이 일제히 날아오르자 바다가 출렁거렸다.
세 사람은 멍한 표정으로 새들의 움직임을 좇았다. 흥분한 막내누나의 두 뺨은 짙은 분홍색이었다. 아버지는 우리 남매의 어깨에 팔을 한쪽씩 걸치고 환하게 웃었다. 우리도 깔깔깔 웃었다.
그때 부엌문이 열리고 수국 꽃 무늬 앞치마를 두른 엄마가 나타났다. 한 손엔 빈 간장병을 들고 다른 손엔 큰 숟가락이 꽂힌 양푼을 든 엄마는 마당으로 나오려다 말고 멈춰 섰다. 움푹한 눈두덩 속에 박힌 까만 눈동자가 오래된 적을 노려보듯 새들을 봤다. 아버지의 몸이 긴장했다.
뜻밖에도 엄마는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부엌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렸다. 순간 아버지와 나, 막내누나는 눈빛으로 의기투합을 했다. 엄마에게 밀려 다시 새들을 잃어버리거나 하는 바보짓은 하지 않겠다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비둘기들이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를 올려다봤다. 아버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물러서서 새들의 수를 세봤다. 마흔아홉. 목포 집에 있던 비둘기들의 수와 비슷했다.
그렇다면, 날아가버린 두 쌍의 비둘기는 집을 떠난 게 아니라 옛 친구들을 불러 모아 돌아온 것인가? 나는 새들의 집요함과 정확함이 기특하면서도 왠지 섬뜩했다. 이렇듯 엄청난 모양새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면서까지 기어이 돌아오게 하는 무엇이 새떼들에게도 있다는 건가? 그때 아버지가 날 보며 싱긋 웃었다.
“옛날에 전쟁을 할 땐 이놈들이 통신병 노릇을 했다잖니? 다리에 쪽지를 매단 채 수만 리길을 곁눈질 한번 않고 간다더니 정말인가 보다. 정말 한 번 가본 길은 절대 잊지 않나보다.”
“그래두요. 어떻게 마흔다섯 마리를 다 찾아와요? 미리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정말 저 녀석들이 목포 집에 있던 새들 맞을까요?”
“아마 맞을 거다. 흐응, 오십 마리? 그건 아무것도 아냐. 열 마리가 몇 만 마리를 불러 모을 수도 있어. 원래 동물들에겐 위험에 처했거나 먹이가 많은 장소를 찾아냈을 때 동료들을 불러 모으는 능력이 있단다. 먼저 파장이란 걸 이해해야 하는데.”
“파장?”
“음, 새들이 날개를 파닥거리면 공기가 떨리고, 공기가 떨리면…. 아, 아니다. 쉽게 생각해보자. 수형이가 간절히 갖고 싶은 물건이 있어. 엄마에게 사달라고 조르겠지? 처음엔 엄마가 안 사주시겠지. 그래도 그 물건이 너무 갖고 싶은 것이었으면 수형인 밤낮으로 그것 생각만 하겠지? 수형이의 눈과 동작에도 그 마음이 드러날 테고, 결국 엄마가 사주시겠지?”
“정말 그럴까요?”
아버지는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애정이 담뿍 담긴 눈으로 계속 멋진 파도를 만들어내는 비둘기들만 봤다.
“특히 비둘기는 새들 중에서도 파장을 가장 멀리 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새란다. 결국.”
아버지는 비둘기들 쪽으로 두 손을 내밀었다. 새 두 마리가 그의 손등 위로 냉큼 올라앉았다.
“올 건 오게 돼 있지. 맞아, 그래도 느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놈들이구나. 잘 왔다. 잘 왔어!”
새들이 아버지의 온몸에 달라붙었다. 아버지는 그들을 내버려둔 채 너털웃음을 웃었다. 잠깐, 아버지가 거대한 뿌리를 가진 나무로 보였다. 또 새들은 그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꽃이나 열매 같았다. 이제야 비로소 함평 집이 우리 집으로 완성됐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엄마의 눈빛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우리는 무시할 것이다. 이렇게까지 된 마당에 설마 새들을 쫓아내기야 하겠는가? 오늘 아침 맛보기로 돼 있던 얼큰한 동태찌개가 사라진 건 감수하겠지만, 그 이상의 양보는 절대 사절이었다.
*
비열한 방법으로 승리를 쟁취하고도 아직 허기가 지는지 종수는 군용 플래시 불빛 같은 눈빛을 사방에 뿌리며 내 주위를 맴돌았다. 나와 종수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는 이유로 적이 된 아이들도 안 보이면 전신주나 벽, 돌멩이를 뻥뻥 차대며 욕을 퍼붓는 그는 방향 감각을 잃은 고장 난 전차 같았다.
그런데도 나는 왠지 종수와 붙고 싶지가 않았다. 패배의 충격이 깊기도 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주위의 모든 것을 무기화하라, 라는 충고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동네 싸움꾼이 스포츠맨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뒷골목 깡패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종수처럼 언제든 흉기로 돌변할 수 있는 물건을 휘두르는 녀석을 만나면? 나도 똑같이 한다? 그럼 그 후의 나는 어떻게 될까?
머릿속이 복잡해지자 종수를 상대하는 것도 귀찮아졌다. 나는 나름대로 용의주도하게 녀석을 피해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옆 동네로 가기 위해 문제의 다리를 건너가던 나는 다시 종수와 마주치고 말았다. 기고만장해 하는 녀석의 뒤로 줄줄이 서 있는, 3차 결전 이후 녀석에게 되돌아간 네 아이들을 본 순간 심장에 불이 붙어버렸다. 내가 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계속 따르는 충직한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도 위안이 돼주지 못했다.
물불 안 가리고 싸우고 싶은 충동을, 나는 꾹 삭혔다. 읍내 쪽으로 돌아섰을 때 종수가 뛰어와 앞을 막아섰다. 나는 소리쳤다.
“비켜!”
“비켜? 아우, 비키란다. 얘들아. 우리 모오두 보고 꺼지란다. 하, 조지 박이 명령하면 다 들어야 하냐? 조지 박이 대통령이라도 돼?”
내 눈을 뚫어져라 보는 녀석의 눈 속엔 분노와 열기가 빼곡했다. 갑자기 그가 아이들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야, 느이들 조지 박 아버지 걸음걸이 봤냐?”
그때서야 나는 녀석이 작정하고 복수의 칼날을 빼 들었음을 알았다. 제 아버지가 내 엄마를 향해 대머리를 조아리게 만든 힘이 다름 아닌 내 아버지의 힘이라는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나중에 조지 박도 꼭 즈이 아버지처럼 걷게 될 거다. 자, 잘 봐둬!”
종수가 다리 위에서 천연덕스럽게 팔자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유난히 팔자걸음이 심해 걸을 때면 사지가 허공을 휘젓는 듯 보이는 아버지의 자태가 녀석을 통해 드러나자 더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꼭지가 돈 나는 어떻게 하면 종수를 아프게 할까, 그를 뒤집어놓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잠시 후 내 입에서도 어떤 말이 튀어나왔다.
“흥, 느이 엄만 기생이었다며? 그러니 자식도 버리고 남자랑 붙어 달아났지.”
그날 나는 이겼다. 나쁜 말도 폭력이라면 종수의 폭력에 맞서 내 식의 폭력을 휘두름으로써 끝장을 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은 깊고도 진했다. 내가 그토록 교활하고 잔인하고 순발력 좋은 아이였다니…. 어른들에게 몇 번 들은 그 지독하고 한심한 말이 어떻게 내 입에서 흘러나왔을까? 그러나 처음으로 돌아간다 해도 내가 똑같이 굴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더 우울하게 했다.
이제 종수에게 갔던 아이들을 찾아올 수 있게 되었지만 더 이상 아이들을 몰고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정말이었다. 다시는 전처럼 요란하게 몰려다니며 서로의 못생긴 마음을 놀리고 안아주며 깔깔거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집에 박혀 있는 날들이 많아졌다. 결국 내 인생 다섯 번째 소풍을 일주일 남겨놓고 나는 홍역에 걸려버렸다. 한 달 만에 등교해서 어색한 학교생활을 하고 나자 곧 여름 방학이 되었고, 완전히 긴장을 푼 내 몸은 독한 여름 감기에 걸렸다. 그걸 핑계 삼아 나를 조용하고 서늘한 집 안에 놔둘 수 있게 되면서 겨우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