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깜찍한 악마들 ①
삼학년이 되자 학교에서의 내 위치는 한결 견고해졌다. 더 이상 전학생으로 분류되지 않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집요하게 대장이 되고 싶어 하는 내 욕망을 받아들여준 것이다. 그건 곧 내가 날 그들이 생각하는 대장의 자격 요건에 세심하게 맞춰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간단히 분류하자면, 아이들은 두 종류였다. 아니, 애초에 아이들은 두 종류로 태어나는 듯했다. 즉 혼자 힘으로든 누군가의 힘에 기대서든 타인을 지배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과 복종하는 시늉을 하며 타인에게 자신을 맡겨버리고 싶어 하는 아이들로. 어느 쪽에도 끼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이렇듯 느긋한 분석이 가능한 것은 내 라이벌 종수가 요즘 싸움이나 편 가르기에 흥미를 잃고 엄마 닭 잃은 병아리 마냥 웅크려 앉아 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도 종수는 너덧 시간 동안 가만히 있는 것만도 벅찬지 아무 말이 없었다.
종수로 하여금 그를 그이게 하던 무엇, 즉 본성을 잃어버리게 만든 메가톤급 상처는 바로 엄마의 가출이었다. 정확히 한 달 전 양조장 안 사장의 후처인 종수 엄마가 이복형들 틈에 녀석을 놔두고 가출해버렸던 것이다.
한때 광주의 유명한 요리집 기생이었다는 종수 엄마의 가출에 대해선 말들이 분분했다. 그 중 가장 그럴 듯한 것은 우리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며 소문을 모이처럼 물어 나르는 김 계장 부인의 말이었다.
‘종수 엄마가 서일관에서 일할 때 안 사장이 끈질기게 눈독을 들였대요. 그때 종수 엄마는 광주의 유명한 버스회사 집 외아들과 연애 중이었는데 남자가 총각이었으니 팍팍했겠죠. 남자 집 사람들이 무시로 드나들며 욕하고 협박하는데 안 사장 부인까지 찾아와 포악을 떨었으니. 결국 종수 엄마의 연애가 끝나고 남자가 결혼할 무렵 안 사장 부인이 병으로 죽었대요. 가족들까지 등을 떠밀자 안 사장을 따라 함평으로 와 종수를 낳았대요. 전실 아들 셋이 하나같이 억센 데다 시부모도 화류계 출신이라고 무시한 모양이에요. 여기저기 쏘다니며 잘 놀면서도 속은 끓였는데…. 결국 바람이나 쐬려고 광주에 드나들었는데 글쎄, 거기서 옛사랑을 만났다지 뭐예요. 부모 죽고 사업 기울고 가정 깨지는 걸 겪으며 무서운 것 없어진 남자는 여잘 놓아주지 않았대요. 결국 종수랑 목포로 서커스 구경을 다녀온 다음 날 여자는 집을 나가버렸어요. 물론 남자도 광주에서 사라졌구요.’
종수 엄마의 가출보다 더 놀라운 건 함평 사람들이 그녀를 맹렬히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욕심 없고 초봄 죽순 속살같이 연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하긴 그냥 툭 저질렀겠지. 맞아, 애를 데리고 다녀도 도통 엄마처럼 보이질 않았어. 꼭 물정 모르는 이모 같았다니까.’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올 것이 왔다는 표정까지 지었다. 늙은 아버지가 반쯤 미쳐서 아내를 찾아 헤매는 동안 혼자 버려진 채 방황하던 종수는 오월이 되자 돌변했다.
고장 난 난로처럼 과열된 그는 아이들과 마주치기만 하면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걸었다. 이젠 내 편 네 편도 구분 못하는지 잘 지내온 아이들에게도 적의를 보이는 녀석은 위협적이지도 않았다. 너무 뜨거운 분노가 오히려 그를 허점투성이로 만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창에 찔린 짐승 같은 종수를 함부로 하면 안 될 것 같은 죄의식에 시달렸다. 뜻밖에도 내겐 공정함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싸워 이기고 싶은 것이 욕심이라면 규칙까지 지켜 근사해 보이고 싶은 것은 더 큰 욕심이었다.
시간이 더 흐르자 종수는 변해서 아이들을 되찾고 싶어 했다. 녀석이 쓴 방법은, 치사하게도 매수였다.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은 시절인 만큼 대부분의 시골 아이들은 고기나 달콤한 과자류에 약했다. 여름엔 서리를 해서라도 수박, 참외는 실컷 먹어보고 또 물고기를 잡아 구워 먹기도 했지만 육고기를 배불리 먹을 기회는 적었다.
그걸 너무 잘 아는 녀석은 제 아버지가 목포에서 사온 쫀득한 육포를 나눠주기도 했고, 돈을 갖고 나와 캐러멜을 사주기도 했고, 집에서 고기를 먹는 날 따로 불러 먹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내 눈치를 보며 혹은 나를 무시하며 녀석의 집을 드나든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모른 척했다. 나의, 그러니까 내 아버지의 힘으론 어찌해볼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지뢰가 묻힌 산비탈 위를 걷는 것 같은 나날이 흘러갔다. 3차 결전의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어느 날 내가 아이들을 몰고 썰물의 바닷가로 가려고 다리를 건널 때 종수가 맞은편에서 나타난 것이다.
“얘들아, 나랑 가자. 지금 우리 집에서 삼계탕을 끓이고 있어. 셋 앞에 한 마리는 돌아갈 거다.”
피가 거꾸로 솟기는커녕 올 것이 온 것만 같아 너무 무서웠다. 그러나 내 눈 앞에서 아이들이 시험에 빠지도록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딱지 결전 때의 종수처럼 나는 아이들의 선택이 두려웠다. 딱지와 닭고기 중 무엇이 선택받기 쉬운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오래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만약 내가 보는 앞에서 아이들이 종수를 따라가면? 그 후의 일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진동하는 눈꺼풀에 잔뜩 힘을 주며 녀석을 노려봤다.
“이 나쁜 새끼가. 왜 남의 일에 멋대로 끼어들어?”
“남의 일? 야아 그러니까 이게 니 일이란 말야? 저 애들이 니 물건이라도 돼? 니 부하냐? 허, 니가 그렇게 잘났어? 그렇게 대단해? 에이, 쌍, 목포에서 굴러들어온 흰 개뼈다귀 같은 게!”
나는 튀어 나가 녀석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내게 힘을 준 건 분노가 아니라 녀석이 욕을 하는 순간에도 감추지 못한 불안과 두려움이었다. 나도 최선이었지만 그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는 사악하고 격렬한 기운에 휘말린 악의 병사들처럼 강펀치를 주고받았다. 먼지가 하얗게 튀고, 통증이 뼛속까지 파고들고, 언뜻언뜻 피가 보였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우리 둘로부터 멀찍이 물러나는 게 느껴졌다. 애초에 마을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어른들이 보고 달려와 우리를 말려줄 가능성은 없었다. 둘 중 하나가 나가떨어져야만 끝이 나는 진짜 혈전이 시작된 것이다.
나중엔 치명적인 한 방을 노리며 자꾸 헛방을 날려대는 우리가 바람에 날리는 빈 빵 봉지같이 하찮게 느껴졌다. 나는 무섭고 외롭고 막막했다. 어떻게든 끝을 내보려고 몸 구석구석을 뒤져 젖 빨던 힘까지 뽑아낼 때였다. 두께는 얇은데 아주 단단한 무언가가 내 머리를 꽝, 내리쳤다. 눈앞에서 별들이 화려하게 튀어 올랐다. 나는 녀석의 멱살을 놓고 픽 쓰러졌다.
타다다닥…. 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져가는 발소리들이 들렸다. 누군가가 나를 부축한 순간 나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꼭 두 시간 십 분 뒤 나는 한의원 내실 침상 위에서 뒤통수 몇 군데에 침을 꽂은 채 깨어났다. 다섯 살 때 마당의 오동나무 위에 올라갔다 떨어져 기절한 뒤 역시 한의원에서 깨어났던 일 이후 다섯 번째 터진 대형 사고였다.
안심할 수 있게 되자마자 노골적으로 못마땅한 표정부터 내비치는 아버지와 종수 집에 쳐들어가 종수가 내 머리를 널빤지로 친 사건에 대해 조리 있게 비판하는 엄마, 대머리를 계속 조아리며 사죄하던 종수 아버지를 보며 가슴을 졸였을 뿐인데, 한 달이 흘러가 있었다.
한의원 할아버지가 내가 다 나았다고 진단을 내렸을 때도 내 머리는 우물 속에 거꾸로 처박힌 듯 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