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누구의 상처가 더 큰가 ①
“수형아. 수형이 어딨니?. 아버지랑 어디 좀 가자.”
안방 아랫목에서 이불을 감고 누워 문식이네 강아지 꿈과 떠난 비둘기 꿈을 번갈아 꾸고 있던 나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그러나 대답은 선뜻 나와 주지 않았다. 저녁 무렵은 돌아올 시각이지 떠날 시각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나는 초저녁부터 잘게 뜯은 솜사탕 같은 흰 눈이 소복소복 내려 쌓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다시 한 번 눈짓으로 독촉을 하자 하는 수 없이 할머니가 사주신 밤색 코트를 껴입고 따라나섰다.
예상대로 거리는 거대한 명주 솜이불을 깔아놓기라도 한 듯 새하얬다. 평소에 내가 아이들을 몰고 쏘다니던 그 거리가 아니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미사에서 자주 들은 하느님이라는 분을 느끼게 해주는 고요하고 엄숙한 겨울밤이었다.
한참 동안 묵묵히 걷던 아버지는 읍내에서도 가장 외진 골목의 끝에 있는 허름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따라 들어가려다 말고 간판을 올려다봤다. 서투르다 못해 조잡한 붉은 붓글씨체로 산고깃집이라고 적혀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중앙의 원탁에 둘러앉아 있던 중년 남자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아버지는 환히 웃었다. 아버지는 회색 양복 남자와 갈색 양복 남자 사이에 앉으며 내 작은 몸뚱이도 함께 끼워 넣었다.
“내 아들놈. 전에 집에서 봤지?”
“어이쿠, 반 년 사이에 쑥 커버렸네. 말 그대로 우후죽순이네.”
“고 녀석. 신통하네. 재주가 얼마나 좋으면 이렇게 부모의 잘난 곳만 골라 닮게 할 수 있나? 녀석, 인물 한번 훠언허다.”
그때서야 나는 원탁 주위의 남자들이 이사 온 날 밤 정종을 들고 집에 찾아왔던 군 기관장들이라는 걸 알았다. 경찰서장님, 우체국장님, 조합장님, 그리고 직책을 알 수 없는 두 분. 나는 일어서서 정식으로 인사를 한 뒤 가게 안을 둘러봤다. 벽에 붙어 있는 메뉴판은 검은 붓글씨체였다. 토끼 스끼야키, 토끼 구이, 멧돼지 구이…. 노루, 산비둘기…. 그때서야 나는 가게 이름이 산고깃집인 이유를 알았다. 아버지는 새 단골집인 이곳에서 이젠 친한 친구가 된 군의 기관장들과 자주 술을 마셔온 듯했다.
그날 밤 아버지 일행이 시킨 음식은 토끼 스끼야키였다. 맑고 노란 기름들이 동동 뜬 달큼한 국물 속에 잠긴 고기는 연하고 고소했다. 혀의 뿌리까지 감동시키는, 담백하면서도 극진한 맛이 어떤 맛인지 알 수 있었다.
당연히 그날의 화제는 정치였다. 밥 먹는 것보다 정치 얘길 하는 걸 더 좋아하는 남자들은 마치 어제 제 집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보고하듯 핏대를 올리며 불공정하고 희망 없는 세상을 비판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자기 인생과는 크게 상관없어 보이는 일에 저토록 열렬하다니. 그런데 그 모습이 싫지 않았다. 싫기는커녕 바짝 마른 장작들을 화덕에 던졌을 때처럼 내게 열기가 번져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끊임없이 아이들과 찧고 까불고 싸우게 하는 어떤 피가 달구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뜨겁고 격하고 순결한 분위기가 실이 끊어지듯 툭툭 끊어졌다. 열정적인 토론들 사이의 틈을 채운 건 산고깃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애잔한 향기였다. 한참 후에야 나는 원인을 찾아냈다. 바로 산고깃집 주인인 젊은 여자가 문제였다. 그녀가 소주를 갖다 주거나 야채들이 수북한 접시를 내오거나 불판을 갈아줄 때마다 여자보다 열다섯 살은 많아 보이는 아저씨들은 소년처럼 수줍어했다. 여자가 옆에 서기만 해도 기계가 작동하듯 주홍빛 피톨들이 팔뚝과 뺨 언저리에 어른거렸다.
나는 여자를 자세히 살펴봤다. 산고깃집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거칠고 원기 왕성한 느낌과는 달리 여자는 곱고 연약했다. 묵직한 전골냄비를 나르는 가는 팔목에서도, 순한 갈색 눈을 감싼 긴 속눈썹에서도 전혀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몸 전체가 나는 여자예요, 하고 속삭이는 여자였다. 언제부터인가 남자들은 그 여자가 남편이 있는 여자인가 없는 여자인가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쓸데없이 핏대를 올리는 남자들의 얼굴엔 정치 얘기를 할 때와 비슷한 열기가 가득했다. 결국 이 집을 처음 알고 친구들을 몰고 왔다는 우체국장님이 일어서서 교통정리를 했다.
“있어. 남편 있어. 생각해봐. 남편 있으니 산고깃집을 하지. 아님 누가 이 많은 고기를 대? 가져다가 파는 것도 한계가 있지. 산적, 아니 꼭 멧돼지 겉은 놈이 허구한 날 꼭 저처럼 생긴 짐승 잡으러 다녀.”
“거 참, 돼지 목에 순금 목걸이네.”
“진주 아니던가?”
그때 팔짱을 낀 채 침묵을 지키던 경찰서장님이 국가 기밀이라도 누설하듯 은근하게 말했다.
“소문이 무성해. 전쟁 때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는 얘기도 있고, 제주도 출신이라는 얘기도 있고, 심지어 거제도에서 왔다는 말도 있어. 모두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 나온 말들이겠지.”
“왜? 간첩이라는 얘긴 없어?”
조합장님이 한마디도 안 하고 갈 순 없다는 듯 의자를 당겨 앉았다.
“설마 섬사람들이 산고기 잡아 끓이는 일을 할까? 어디서든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치켜들게 마련이야. 내 생각엔 이북 출신이란 말이 맞는 것 같어!”
그때 경찰서장님이 더욱 더 대단한 비밀이라도 알려주듯 작고 맵게 생긴 눈을 빛냈다.
“아마 간간이 패기도 한다지. 주기적으로, 꼭 발작하듯이.”
“그 등치루? 세상에…. 저런 여잘 때릴 때가 어디 있다구. 손목 잡고 힘 한번 꽉 주면 유과같이 부서지겠던데.”
“몸 이곳저곳에 멍, 상처가 있거나 화장이 지나치게 두꺼워지면…. 뭐, 그날인 거지.”
나는 남자들의 이야기보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아버지의 표정이 더 신기했다. 아버지의 얼굴 근육은 분노와 연민, 호감 등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변했다.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는 산고깃집 여자와 상관이 있는 남자처럼 보였다. 그 여자의 남편이거나 애인이거나 아니면 겉늙어 보이는 오라버니라도 되는 것 같았다.
주인 여자의 눈빛과 동작도 못지않게 꺼림칙했다. 여자는 유독 아버지 앞에서만 실수를 했다. 간장 종지를 놓아주거나 빈 대접에 국물을 부어줄 때마다 손을 떨어 무언가를 흘리면 엄마 앞이라면 까탈을 부렸을 아버지는 더없이 관대했다. 오히려 여자보다 더 떠는 그를 지켜보는 내 마음은 복잡했다. 아버지 속에 아버지 아닌 남자가 산다는 사실이 낯설기도 하고 조금 징그럽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자 그 느낌은 배신감으로 변했다. 내 자리를 침해당한 것만 같은 억울함이 어린 남자의 것인지 아들의 것인지조차 헷갈렸다. 나는 식어버린 전골 국물 속으로 거칠게 숟가락을 꽂았다.
*
네 번째로 아버지를 따라 산고깃집에 갔을 때도 끈적하고 아리송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내가 산고깃집의 분위기에 그런대로 적응했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그의 친구들의 소박한 외출’이라는 영화의 조연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나는 남자 어른들의 모든 것이 좋았다. 그들의 각진 턱에 돋은 파릇한 수염 자국과 세상일에 대해 단호히 편을 가르는 굵은 목소리, 알코올과 지폐와 양복 천의 냄새가 뒤섞인 체취가 신비롭기만 했다. 어른들이 정치하는 사람들을 비꼬는 농담을 하다 호탕하게 웃으면 나도 따라서 웃어보았다. 내가 그들 부족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뿌듯했다.
음력설을 사흘 앞둔 날 산고깃집 안엔 술 취한 짓궂은 손님들이 유독 많았다. 주인 여자에게 농담을 걸다 꼭 끝을 시비로 마무리하는 손님들과 아버지 일행 간의 신경전도 몇 차례 되풀이되었다. 아버지의 반응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결국 네 번째로 시비가 일자 아버지는 총알같이 달려 나가 끈적한 농담을 한 장본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때 요란한 기척과 함께 가게의 미닫이 유리문이 벌컥 열렸다.
“혜숙아!”
문틀 위엔 갈색 털모자를 쓰고 빛바랜 가죽 외투를 입은 덩치 큰 중년 남자가 검붉은 핏물이 밴 큰 자루를 어깨에 들쳐 메고 서 있었다. 나는 그가 말로만 듣던 주인 여자의 남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별일 없지?”
별일 있으면 가만두지 않겠어, 하고 으름장을 놓는 듯한 말투였다. 뚜벅뚜벅 가게 안을 걸어가는 남자의 동작이 그가 거칠고 자유롭게 살아온 남자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죽은 짐승이 담긴 자루에서 피라도 떨어질까 봐 주춤주춤 비켜섰다. 아버지와 그의 친구들도 어느새 탁자 앞으로 돌아와 있었다.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뒷문을 열어 남편이 나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버지 앞에선 화사하고 연하고 폭신폭신하던 여자가 한순간에 탁자나 의자, 가마솥 같은 물건이 돼버린 것 같았다.
원탁 주위의 남자들도 찬물 세례라도 받은 듯 조용해졌다. 산고깃집 남자를 혐오하면서도 압도당해버렸다고나 할까. 어린 수컷인 나 역시 마음대로, 힘닿는 대로 제가 잡으러 다니는 짐승처럼 살고 있는 주인 남자에게 주눅이 들어버렸다.
결국 그 무엇도 사냥꾼 사내가 들어오기 전과 같을 수 없다는 걸 안 남자들은 어설프게 달구어진 마음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아버지가 돈을 계산대 위에 놓았을 때도 여자는 나와 보지도 않았다. 사랑도 장사도 다 필요 없어요, 하고 외치는 듯한 썰렁한 분위기만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