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담배 피우는 여자 ②
두 달 후 추석을 맞았을 때 엄마에겐 현실의 행복도 찾아들었다. 아침에 차례를 지낸 식구들이 성묘를 가려고 대문 밖으로 나왔을 때 낯설지만은 않은 흰색 지프가 서 있었다. 읍내의 대절 택시들과는 차원이 다른 멋진 육체를 가진 그 차에서 느껴지는 건 힘, 그것도 강력한 힘이었다. 동경해온 물건이 너무 가까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 한 발 물러섰을 때, 차 문이 열리면서 운전수가 나와 아버지에게 인사를 했다.
“김 서장님께서 박 소장님 가족의 성묘 길을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엄마가 아버지를 올려다봤다. 아버지는 무심하다 못해 심드렁한 표정으로 헤드라이트들을 보고 있었다. 받아 마땅한 것을 받고 있다는 듯 덤덤한 얼굴이었다.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내게도 차에 대한 권리가 있다는 걸 알아버린 나는 차 주위를 돌며 차체를 살펴봤다. 원점으로 돌아와 엄마를 보니 심상치가 않았다. 두 뺨엔 홍조가 배어 있고, 큼직한 갈색 눈은 벌써 흥건히 젖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녹색 양단 치마 말기를 움켜쥔, 알이 굵은 산호 반지를 낀 손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엄마 역시 오늘 아침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일이 마음에 든 것이다. 엄마의 감정은 호감 정도가 아니라 감동인 듯했다.
그날부터 엄마는 지금 이곳의 삶에 마음을 붙였다. 엄마는 자주 소리 높여 웃었고, 우수한 야생짐승의 암컷같이 날렵하면서도 맵시 있게 움직였다. 엄마가 의욕적으로 변해 이것저것 시키는 일이 많아지자 식구들도 덩달아 긴장을 해야 했다. 사람 미련하고 동작 느린 걸 가장 못 참는 엄마의 짜증을 피해가려면 매 순간 군인처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 했다.
우리 집에서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는 사람이 딱 하나 있긴 했다. 바로 막내 누나였다. 그러나 누나가 잔소리를 듣지 않는 이유는 그녀가 모범적이어서 라기 보단 애초에 엄마의 관심 밖에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막내 누나는 말 그대로 밥상에 숟가락만 하나 더 놓으면 되는 아이였다. 누나가 학교 선생님들이 혀를 내두를 만큼 공부를 잘한다는 사실도 상황을 바꿔주진 못했다.
목포 시절 누나가 광주까지 가서 본 학력고사에서도 일등을 했을 때도 음료수 상자를 사들고 학교에 다녀온 엄마의 표정은 복잡했다. 아버지가 보던 신문까지 치우고 관심을 보이자 엄마는 아예 등을 보이고 돌아앉았다. 엄마는 버선을 한 짝씩 벗어 던지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저 쪼그맣고 깡마른 게 공불 그렇게 잘한다네요. 선생님들 말이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대요. 대체 누굴 닮았을까?”
“딸이 아버질 안 닮으면 누굴 닮어? 나도 집이 넉넉해 제때 공부를 했으면 우리 재희 만큼은 했을 걸.”
“아이구, 때 놓쳤으니 하시는 말씀이겠지. 두고 볼 사람 없으니까. 아, 쟨 잘하는 얘들 중에서도 특별하다잖아요. 근데 한 가지.”
“한 가지 뭐?”
“워낙 말이 없어서 반장은 시켜줄 수가 없대요. 내가 쟤 어릴 때 말을 안 걸어줘서 그런가? …. 그래도 어머니가 웬만큼은 하셨는데.”
그날 저녁 밥상머리에서도 엄마는 막내누나를 계속 신통해했다. 아이구, 나 참이라는 감탄사까지 섞어가며 누나를 요리조리 뜯어봤다. 우리 식구 중 유일하게 동양적인 얼굴을 가진 열두 살 누나는 엄마의 관심이 부담스러운 듯 자꾸 할머니에게 붙었다. 나는 내가 하루에 열 번 만물상에 가자고 해도 다 따라가주는 ‘말없고 똑똑한 기계’의 위치가 격상되어가는 걸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나 엄마가 누나의 총명함을 인정하고 기특해한 건 그날뿐이었다. 다음 날부터 모녀 관계는 원점으로 돌아가버렸다. 누나가 전교 일 등을 할 때마다 매번 흥분하고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나서서 선생님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엄마는 어떤 신념을 지키듯이 막내 누나가 뿜어내는 광채를 단호히 무시했다. 적어도 말로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
이 주일 후엔 엄마가 좋아할 일이 또 생겼다. 엄마가 아버지와 나 몰래 틈만 나면 구박하던 비둘기들이 가출해버린 것이다. 처음엔 평소처럼 조금 먼 나들이라도 갔겠지,하며 기다렸는데 이틀, 사흘이 지나고 일주일, 이주일이 돼도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두 달 반 전에 잘라준 속 날개가 다시 자라 전같이 높이 날 수 있게 되자 마음을 못 붙인 타지를 떠나버린 거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멍했다. 이토록 확실한 이별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가슴 맨 밑바닥에서부터 화가 차올랐다. 뒤통수와 목 뒷덜미가 뜨거워지고 두 다리까지 후들거렸다. 사실 나에게 화를 낼 자격은 없었다. 녀석들이 혹독한 이별을 겪고 낯선 곳으로 와 전혀 행복해하지 않았던 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기 때문이다.
걸핏하면 짜증을 내고 다투다 한 번은 암컷이 제 새끼를 위협한 뒤 죽여버리는 광경까지 봤을 땐 아버지도 침통해했다.
“꼭 누구만큼 답답한 녀석들이네. 그깟 지나간 일은 잊고 시치미 뚝 떼고 살 것이지 뭘 그렇게 연연해서…. 하긴 쉽진 않은 일이겠지만.”
“….”
“자신을 해치거나 죽여버릴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자존심이 강한 종족이라는 뜻이야. 적어도 내가 이 정도는 살아야 한다, 하고 생각하니까 늘 괴롭지. 얼룩말들을 봐. 동료가 눈앞에서 사자에게 잡아먹혀도 그냥 그 자리에서 풀을 뜯어먹어. 일단 배를 채운 사자는 다시 허기가 지기 전까진 절대 안 덮친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 배만 채우면 된다는 점에선 사자나 얼룩말이나 똑같아…. 그런데 비둘기는 코끼리와 비슷하더라구. 자존심이 대단하면서도 조직적이고, 집을 나와 떠도는 새끼들도 없고, 또 나와서도 늙으면 꼭 돌아가야 하고.”
그 후 나는 비둘기들과 눈을 맞출 수 없었다. 녀석들이 괴로워하는 이유를 알고 나자 마음이 더 불편해진 것이다. 그들을 계속 본다는 건 내가 힘이 없다는 걸 거듭거듭 확인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하늘에 대고 맹세하건대, 새들을 사랑하지 않았던 순간은 단 한 순간도 없다. 사랑했기 때문에 거리를 두면서도 아버지와 함께 물과 모이를 주고 똥을 치워주고 새집을 청소해주고 한 것이다. 비로소 나는 진성극장에서 본 한국 영화들에서 자주 듣던 배신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 것 같았다. 나는 나를 무시해온 새들을 돌봐준 나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 분노를 드러냄으로써 버리고 싶었다. 나는 마당에서 얇게 썬 애호박들을 돗자리 위에 널고 있는 엄마에게 달려갔다.
“사다리…. 사다리 갖다줘…. 흐, 흐윽.”
흰 수건을 머리에 두른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봤다. 엄마가 내 분노와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또 마음이 상한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집 뒤쪽에, 저기 뒤쪽에 사다리 있잖아. 빨리!”
비로소 내 말의 뜻을 이해한 엄마는 새집들을 힐긋 보더니 다시 눈을 내리깔고 애호박들을 널기 시작했다. 내 욕구를 무시해버리겠다는 사인이었다. 나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발을 뻗고 울었다. 엄마는 나를 째려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안 돼!”
평소처럼 윽박지르지도 않는 것. 그것은 절대 네 말대로 해줄 수 없어. 포기해!로 알아들으면 되는 태도였다.
그때 문득 아버지의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아버지에게 부탁해보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나는 엄마가 나를 볼 수 있도록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불쌍한 아이의 표정을 한 채 화단 돌 위에 쪼그려 앉아 아버지를 기다렸다. 심각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쓰는데 주책스럽게 졸음이 쏟아졌다.
반항하고 싶은 욕망과 자버리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꽤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때, 진회색 가을 양복을 입은 아버지가 동쪽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발딱 일어섰다.
“아버지! 저기 저 새집들 뜯어버려요!”
“….”
“지붕 밑에 있는 새집들이요. 다 없애버려요, 네?”
나는 다시 발을 굴렀다. 놀라서 지붕 쪽을 보는 아버지를 보자 또 눈물이 터졌다. 나는 손등으로 두 눈두덩을 문질렀다. 아버지는 바지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안쓰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심해하는 것 같기도 한 표정으로 날 봤다.
느닷없이 격렬한 슬픔이 몰려왔다. 처음이었다. 목포 친구들과 헤어질 때는 싫고 섭섭하면서도 마음 한쪽엔 낯선 장소와 낯선 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떠난 새들에 대한 감정은, 달랐다. 그것은 바위처럼 확실했고, 무거웠고, 썩은 수초처럼 끈적끈적했다. 결국 아버지는 내 어깨를 다독거려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래, 그렇게 하자. 이봐, 수희 엄마. 사다리 어딨어?”
아버지에게 건성으로 인사를 하고 부엌으로 갔던 엄마가 다시 나왔다.
“유별나…. 진짜 유별나. 저것들을, 하필, 오늘 꼭 뜯어내야 하는 이유가 뭐야? 왜 단 하루도 꼴을 못 봐?”
아버지는 집 뒤쪽으로 가서 사다리를 가져왔다. 아버지는 연장 상자를 들고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가 힘겹게 새집들을 뜯어냈다. 아버지가 새집들을 하나씩 마당으로 던질 때마다 가슴이 후련했다. 상한 자존심도 급격히 회복됐다. 아버지가 새집의 잔해들을 마당 한가운데로 가져와 망치로 내리치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근자근 밟았다. 잔해들이 다른 땔감과 함께 부엌 아궁이 불 속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상상하자 다시 가슴이 후련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하고 싶은 대로 실컷 했는데도 마음은 더 무거웠다. 시간이 갈수록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더니 괘종시계의 초침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나중엔 환청처럼 새들이 찢어진 우산 같은 날개를 파닥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일어나 앉고 말았다. 충직한 호위병같이 내 양쪽에 누워 있는 아버지와 엄마는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찾아 들고 땔감 창고로 갔다. 어느새 나는 음산하고 퀴퀴한 군 냄새를 풍기는 잡동사니들 틈을 미친 듯이 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