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담배 피우는 여자 ①
그날 이후 엄마는 내가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마다 두 얼굴을 보였다.
사람들 앞에선 따끔하게 야단을 치고 둘만 남으면 금의환향한 개선장군으로 대해주는 식이었다. 나도 엄마식의 환대에 중독이 돼가는지 가끔은 싸울 일이 없으면 먼저 시비를 걸어서라도 싸워 이겨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내 승리에 중독되어가는 모습도 우스꽝스러웠다. 명절이면 화려한 큐빅 브로치가 달린 비로드 한복을 입고 남선전기 지사장 댁에 인사를 가거나 세련된 코발트색 원피스 차림으로 수녀님들과 천주교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엄마를 보고 누가 이토록 야만적인 엄마를 떠올릴 수 있겠는가?
엄마는 두 얼굴을 보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내 괴팍한 성격에 대한 불만을 꼭 끼워 넣었다.
“아휴, 수형이 쟤가 어릴 때부터 얼마나 까다로웠는데요. 세상에, 세 살짜리 애가 다른 사람 손이 제 몸에 닿는 걸 끔찍이 싫어하는 거야. 이발을 해주려면 이발소를 세 곳이나 돌아다녀야 했어요. 그뿐인가. 다섯 살 땐 또 어땠구요? 기차를 타고 외가에 가는데 아예 의자 하나를 독차지하고 앉아 곁에 아무도 못 앉게 하는 거 있죠?”
말끝마다 그때 내가 얼마나 민망했는지. 정말 문제예요! 라고 못을 박았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진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외아들의 특출함의 증거로 여기는 듯했다. 당연히 할머니는 엄마의 그런 행동들을 싫어했다. 화단을 손질하다 엄마가 온갖 핑계로 불러 모은 동네 여자들 앞에서 내 흉을 보는 척하며 자랑하는 걸 볼 때면 어김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다고 화를 냈다는 뜻은 아니다. 파란 하늘에 회색 구름 하나가 끼어들었다 사라지듯 눈매를 구겼다 펴면 그만이었다.
딸 넷을 낳은 뒤 어렵게 얻은 아들인 나를 편애하지 않았던 할머니는 실제로 드러내놓고 아들, 아들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딸을 하나씩 낳을 때마다 하늘이라도 무너진 듯 대성통곡을 해서 산후조리를 망쳐버리는 장본인은 바로 산모인 엄마였다.
결국 엄마는 넷째 아이로 막내 누나를 낳았을 땐 차라리 죽어버리라고 한겨울의 마루에 내놓았다고 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기겁을 하고 달려 나와 눈을 꽉 감고 사지를 오그린 채 우는 갓난애를 안고 들어가며 욕을 했단다. 미친 년, 천벌 받을 년이라고.
그러나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버지의 태도였다. 아버지는 하나뿐인 아들이자 막내인 나에게 가혹하도록 엄격했다. 다른 아버지들이 아들 앞에서 보여주는 무언가를 비축해놓은 듯한 뿌듯함도 거울을 보는 반가움 같은 걸 나는 그에게서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아버지는 나를 통해 거울을 보는 일이 지겹고 짜증스러운 듯했다.
아버지에 대한 허기가 강해질수록 나를 세상에서 가장 잘나고 멋진 남자로 봐주는 엄마에 대한 애착도 강해졌다.
엄마와 나 사이엔 비밀이 많았다. 대부분은 엄마가 누나들은 물론 할머니, 아버지에게도 주지 않고 나한테만 먹이는 음식들이었는데 그보다 더 은밀한 것도 있었다. 바로 엄마의 흡연이었다.
사실 엄마가 사람들 앞에서 편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으려면 최소한 십오 년은 기다려야 했다. 즉 더 이상 여자라고 부르기도 멋쩍은 존재인 할머니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책이나 법에 나와 있진 않지만 많은 이들이 순순히 합의해준 규칙이었다. 적어도 한전 중견 간부의 아내이자 공부 잘하는 누나들의 현모인 엄마와 담배는 어울리지 않았다.
왜 담배를 피우세요? 하고 묻는다면 엄마도 할 말은 많을 것이다. 구 년 전 나를 임신했을 때 겪은 지독한 입덧, 함평보다 외진 강진에서 생활하며 느끼는 답답함, 큰 도시로 나가 근사하게 살아보고 싶은 욕심, 말수 적고 품위 있지만 이상하게도 편하지만은 않은 할머니랑 살면서 느끼는 스트레스….
물론 아버지도 평범한 남편은 아니었다. 열다섯 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십년 넘게 공부를 하고 돌아온 아버지가 고리타분한 조선 남자일 순 없었다. 즉 예민한 청년기에 여자의 음주나 흡연에 관대한 일본 문화를 접한 적이 있는 그에게 아내의 조금 이른 흡연은 특별히 봐주고 말고 할 무엇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아버지가 좌천이란 걸 당해 다시 시골로 내려왔으니 엄마의 흡연은 계속될 것이다. 당연히 나의 시도 때도 없는 망보기도 계속될 것이다.
박눈치라는 또 다른 별명을 가진 나의 직감은 할머니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분위기’ 같은 건 무시해버리는 엄마는 할머니의 눈총도 가볍게 무시했다.
*
엄마와 나의 두 번째 비밀은 극장 나들이였다. 날씨가 특별히 좋거나 몹시 심심한 날이면 엄마는 이른 저녁을 지어 먹고 평소엔 하지 않는 화장을 하고 나에게도 좋은 옷을 입혀 극장으로 갔다.
내가 함평에서 첫 승리를 거둔지 이 주째 되는 날에도 우리는 영화를 보러 갔다. 읍의 하나뿐인 극장인 진성 극장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곧장 매표구 앞으로 가 표를 사지 않고 김지미와 최무룡, 조미령의 얼굴이 조악하게 그려진 간판만 힐긋거렸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없지? 직원들이 통 안보이네. 흥, 이렇게 널널하게 일을 하니 손님이 없지.”
이상하게도 엄마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검은 선팅 때문에 안에서만 밖을 보게 돼있는 매표구 안에 있던 청년이 엄마를 발견하고 달려 나와 깍듯이 절을 했다.
“사모님. 나오셨습니까?”
역삼각형 얼굴을 가진 말라깽이 청년은 쏜살같이 어디론가 달려갔다. 오 분 뒤 청년은 그보다 훨씬 노련하고 냉정해 뵈는 키 큰 중년 남자와 함께 왔다. 극장의 총관리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양복 깃을 여미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아휴, 일하다 나오심 안 되는데. 이래서 내가 가뿐하게 영화 한 편 보고 싶어도 선뜻 못나온다니까.”
“무슨 말씀을. 아, 저희가 상영하는 영화라는 게 전기 없인 단 일 초도 못 돌리는 것 아닙니까? 전기세는 저희 극장의 가장 큰 지출 항목입니다. 사모님 나오시면 당연히 뵙고 인사 드려야지요.”
엄마의 얼굴에 생기가 와락 감돌았다. 이른 아침 첫 햇살을 받은 분홍 장미가 이슬들을 털고 봉오리를 열어젖히듯이.
수줍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힘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한 엄마는 유치한데도 예뻐 보였다. 내가 밖으로 나도는 동안 엄마도 함평에서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하나 발견한 것이다. 관리인과 마주서서 꽤 오래 요즘 개봉된 한국영화들에 대해 애정 어린 비판을 가하던 엄마는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청년에게 주었다.
“담배라도 사서 나눠 피워요. 그럼 수고해요.”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줄을 서서 표를 사지 않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마가 매표구 직원에게 준 돈이 우리 둘의 입장료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무엇에 대해 매표구 직원에게 준 돈과 영화표 값 사이의 차액을 지불한 것일까? 그것이 엄마의 얼굴에 생기가 돌게 한 무엇에 대한 보상이라는 건 확실한데 정체 파악이 쉽지가 않았다.
관객들의 검은 뒤통수들만 드문드문 솟은 상영관 안에서 엄마는 반듯하게 앉아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와 입술 모양과 잘 맞지 않는 더빙 목소리로 꽉 찬 스크린을 응시했다.
영화에 푹 빠져 있는 엄마는 더 이상 가족들의 습관과 싸우는 잔소리꾼이 아니었다. 최소한 일생일대의 사랑에 빠진 처녀, 혹은 부모 몰래 열심히 신학문을 배우러 다니는 여학생은 되는 것 같았다.
시작한지 십 분이 안 돼 우리 편과 적을 구분할 수 있어서 응원하는 심정으로 몰입해도 되는 액션 영화나 전쟁영화만 좋아하는 나는 두 시간 내내 졸다 깨다만 반복했다. 엄마가 귓속말로 스크린 속의 상황을 설명해주어도, 클라이맥스에서 배우들이 절절하게 사랑을 고백하며 울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내 고개가 앞으로 떨어졌을 때, 엄마가 내 손을 찾아 꼭 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엄마를 올려다봤다.
황홀해하고 있는 엄마는 이미 영화를 보고 있지 않았다. 집과 마을을 오가며 보내는 똑같은 나날들로 채워진 이곳을 떠나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장소에서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해보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