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겨야만 돌아갈 수 있어 ③
예상대로 내 걱정은 걱정으로 끝나지 않았다. 마을 여기저기서 나를 조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난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어른들이었다. 종수가 제 부모에게 고자질하듯 얘기를 한 뒤 어른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확 퍼진 듯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내 별명을 아는 어른들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아졌다. 나름대로 나를 어려워하던 동네 어른들이 귀여움 반 만만함 반으로 조지, 조지, 하고 불러대는 것에 적응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조지, 조지, 조지…. 하필 남자의 생식기로 오해받을 수 있는 별명이라니. 아이들이 계속 나에 대해 환상을 품어주길 바라며 더 보여주고 싶은 모습들을 고르고 있었는데…. 이젠 밤하늘의 별무더기가 번개로 바뀐다 해도 종수를 용서할 수 없다. 그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를 많이 의식하고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어떤 의미에선 조지 박 사건을 만들어낸 또 다른 장본인인 수녀들과도 멀어지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친해졌다. 내가 엄마에게 유스티나 수녀님의 말을 전한 지 이틀 뒤인 일요일 엄마가 나를 데리고 미사에 참석한 것이 시작이었다. 나는 한 시간가량 계속되는 의식이 너무 지겨워 틈만 나면 밖을 기웃거렸지만 엄마는 바짝 마른 스펀지처럼 미사의 모든 것을 흡수했다. 미사가 끝날 무렵엔 얼굴이 환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엄마는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거짓말같이 마음이 편해지네. 미사 의식도 잘 모르고 성가도 기도문도 모르는데. 하나님 가까이 가야 마음이 편해지는 걸 보면 나도 썩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 착한 사람들은 법 없어도 살듯 하느님한테 관심 없다던데. 정말 교리나 한번 받아볼까?”
이른바 정치적인 사람인 엄마는 성당의 수녀님들과도 금세 친해졌다. 또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해 뵈는 늙은 신부님께도 꼬박꼬박 인사를 해서 안면을 텄다. 지키지도 못할 거면서 성당 봉사 활동에 끼고 싶다는 얘기도 해버렸고, 한 번쯤 정식으로 집에 초대하고 싶다는 소망도 내비쳤다.
하루는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엄마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유스티나 수녀님이 내 쪽을 보며 눈을 찡긋했다. ‘조지 박’이 탄생한 순간과 흡사한 순간이 닥칠까 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어머님이 세례를 받으면 아드님도 열 살이 될 때 첫 영성체를 받아야 해요. 하느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거지요. 그때 본인이 원하면 복사를 시켜볼 수 있어요.”
“복사요?”
“미사를 집전하시는 신부님 양쪽에 서 있던 아이들, 못 보셨어요?”
“아하, 신부님 옷 비슷하게 생긴 흰 옷을 입고 목에 큰 십자가를 건…. 아휴, 걔들 멋있던데. 아, 복사 원하죠. 무조건 하고 싶죠. 얘, 수형아!”
엄마의 열에 들뜬 눈이 나를 돌아봤다. 새 욕망으로 팽팽히 장전된 그 눈을 본 순간 나는 엄마가 언젠가는 나를 복사로 만들어버리고야 말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미사 내내 성당 의자 한 귀퉁이를 지키는 것도 힘들어 하는 내가 한 시간 동안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못 움직이는 복사를 하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나는 유스티나 수녀님을 따라 심방을 가기로 한 약속도 헌신짝같이 팽개치고 성당 밖으로 달아나버렸다. 절대로, 하느님의 착한 인형이 되고 싶진 않았다.
*
드디어 기회가 왔다. 집요하게 내 주위를 배회하던 종수가 가장 유치한 방식으로 싸움을 걸어온 것이다. 그가 내세우는 이유는, 하찮았다. 사흘 전 내가 함평의 유일한 약국인 백화당 앞을 지나갈 때 그가 조지! 하고 크게 불렀는데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역시 하나뿐인 태권도장인 무진관 앞에서 놀고 있었을 때도 또 학교 운동장에서 전격적으로 마주쳤을 때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음을 강조하며 새끼가 날 무시하네, 하고 덧붙였는데 그 말은 맞았다.
그러나 ‘조지’라는 별명이 함평 전체에 드넓게 퍼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날이면 날마다 시비를 걸어오니 무시할 수만도 없었다. 그가 ‘꼭 서양 계집애처럼 생긴 녀석이 재수 없이’라고 토까지 달 때면 나도 모르게 카운트다운을 하게 됐다.
하긴 내 입장에서도 녀석과의 몸싸움을 피해갈 이유는 없었다. 그와 싸우는 것은 이곳 함평에서 자잘한 싸움들을 모조리 생략하고 바로 결승전을 치르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었다. 진다해도 잃을 것은 없었다. 녀석은 대장이고, 대장과 싸워 지는 것은 그럴 수 있는 일이니까. 만약 이긴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나는 종수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갖게 될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벌써 몸싸움에서 주지해야 할 사항들을 체크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상대의 얼굴을 노리되 내 얼굴은 보호하라. 얼굴은 통증에 단련이 안 되는 유일한 부위니까. 또 급소인 명치로 상대의 주먹이 날아오면 즉각 힘을 줘서 충격을 반으로 줄여야 한다. 만약 상대의 눈을 쳐서 앞이 캄캄해지게 만들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다음은, 상대의 허리를 붙들어야 한다. 모든 힘은 허리에서 나온다는 걸 허리를 잡혀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안다.
그리고, 만에 하나 빨리 지치면 상대에게 엉겨 붙어버려라! 결정타가 나오기 힘든 상황인 만큼 둘 다 큰 피해를 입지 않고 또 누군가가 달려들어 말려줄 가능성도 많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 속에서 공격과 방어를 쉼 없이 되풀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감이 생기면 근육들이 실전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을 내기 때문이다.
내 몸에서도 화약 냄새가 감돌기 시작한 지 꼭 사흘 만에 결전은 이루어졌다. 처음부터 호감을 드러냈던 문식이라는 아이와 서서히 나를 따르기 시작한 아이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걸어갈 때 옆 동네 쪽에서 종수가 패거리를 몰고 나타난 것이다.
“어이, 조지. 조지 박! 어디 가냐?”
나는 액션 배우마냥 날쌔게 돌아서서 종수를 노려봤다.
“어, 이제야 제 이름을 알아듣네.”
갑자기 종수가 손가락 두 개로 젓가락질을 하는 시늉을 하며 후루룩, 소리까지 냈다. 그가 ‘조지 박’의 탄생 과정까지 떠벌일 거라곤 예상 못했던 나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녀석이 다가와 잔인하게 웃었다.
“벌써 잊어버렸어? 어이, 얘들아! 여기에 조지가 또 있냐?”
“아아니. 어업다.”
녀석을 따르던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온몸의 피가 얼굴로 몰려드는지 두 뺨이 화끈화끈했다. 이럴 때 달려들지 않으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못난 남자가 되게 돼 있었다. 나는 종수의 눈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선빵이 헛방이라는 걸 확인하자 곧장 그의 허리를 찾아 쥐었다. 그도 내 허리를 붙들었다. 순간 나는 뜻밖에도 그가 절박하다는 걸 알았다. 내게 퍼부은 농담과 조롱도 다 허세였을까? 제 자리를 뺏길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절대 뺏기지 않겠다는 투지가 똘똘 뭉친 그의 주먹은 맵고 날카로웠다.
그러나 녀석에겐 근본적인 약점이 있었다. 체격과 체력은 나에게 뒤지지 않는데 몸이 둔했다. 당연히 상대가 어느 주먹을 어느 방향으로 날려 올지를 알아차리는 감각도 둔했다. 제 자리를 위협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의 특징이었다. 목포 시절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해봤던 나는 왕년의 감각을 십분 활용해 녀석의 허점만을 골라 공격했다. 결정적인 한 방이 빗나가자 아예 검불처럼 엉겨붙어버렸다. 지친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시간을 끌었다. 그때 아이들 중 하나가 뛰어가 전했는지 어른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저 녀석들! 왜 저렇게 길을 막고 있어? 대체 뉘 집 자식들이길래 공부는 안 하고 대낮부터 쌈박질이야?”
계속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나는 다시 녀석의 밑에 깔렸다. 모든 근육들에서 힘을 끌어내 녀석의 허리를 움켜쥔 뒤 몸을 뒤집어 그의 위에 올라탔다. 내 두 손이 그의 굵은 목을 틀어쥐었을 때 아저씨 둘이 달려들어 힘겹게, 아주 힘겹게 우리를 떼어냈다. 우리는 몸을 붙들린 채 퍼질러 앉아 씩씩거리며 서로를 노려봤다. 기다렸다는 듯이 현장에 관여한 두 어른의 비난과 훈계가 우리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기분은 괜찮았다. 지켜보던 아이들은 내가 종수의 멱살을 틀어쥔 순간을 이 싸움의 엔딩으로 기억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