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 집엔 문이 많다 ②
다음 날 오후 네시쯤 아버지는 새장 문을 열고 새 한 마리를 꺼냈다. 날아오를 때마다 머리를 천장에 찧었는지 정수리에 검붉은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또 눈앞까지 흘러내려 굳은 핏물은 예리한 핏자국 같았다.
먼저 아버지는 화초 가위를 끓는 물에 담가 소독을 했다. 그는 한 손으로 새의 몸통을 틀어쥐고 다른 손으론 겹겹이 포개진 날개들을 들춰 속 날개를 찾아냈다. 그의 충혈된 눈이 나를 올려다봤다. 이리 와서 여길 꼭 붙들어라. 나는 주춤주춤 다가가 눈을 감고 아버지가 넘겨주는 부위를 틀어쥐었다.
눈을 떴을 땐 이미 아버지가 화초 가위로 비둘기의 몸통에 붙은 가장 얇은 날개를 끊어내고 있었다. 그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이곳에 익숙해질 때까진 못 날게 해야 해. 적응하기만 하면 이놈들에게도 시골이 훨씬 좋을 거다.”
새가 격렬하게 진저리를 치자 핏물이 흠뻑 밴 날개가 툭 떨어졌다. 나는 잽싸게 항생제로 쓰이는 다이아찐 가루를 새의 상처에 훌훌 뿌려주었다. 새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몸을 모로 눕혔다. 아버지는 다시 새장 문을 열고 다른 새를 꺼냈다. 결국 세 마리의 새들은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수술을 당했다. 아버지는 산모처럼 기진맥진해 누워 있는 녀석들이 가엾지도 않은지 그들을 하나씩 일으켜 세워버렸다. 더 놀라운 건 새들이 일어나 어기적어기적 걷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픈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던 걸까? 아니면 잇달아 들이닥친 불행에 기가 막혀 널브러져 있었던 걸까? 새들은 습관처럼 날개를 펄럭거려봤지만 겨우 일 미터쯤밖에 날지 못했다. 아버지는 됐다 하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평소 높이의 십분의 일밖에 날지 못하는 새들이 전혀 새 같지 않았다. 꼭 어제 트럭을 타고 올 때 본, 신작로변 집을 뛰쳐나와 함부로 길을 건너가던 자줏빛 장닭 같아서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아버지의 명령으로 양동이에 물을 담아와 흙에 밴 핏자국들을 씻어낼 땐 기분이 또 달라졌다. 솜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기도 하고 찬물을 뒤집어쓴 듯 오싹하기도 했다. 나는 내가 충격을 받았다는 걸 인정했다. 그토록 높이 날던 새들이 날개를 뺏기고 애초에 땅에 살았던 동물들 보다 더 비참해질 수 있다는 것. 나는 신발 밑창으로 희미해진 핏자국들을 벅벅 문질렀다.
*
월요일 아침 아버지는 출장소로 첫 출근을 했다. 출근이라고 해야 집의 동쪽으로 난 문을 열고 나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아버지가 다시 양복 사나이로 변해 떠나는 걸 보고서야 겨우 차분해진 나는 오늘 하루를 무기 제조에 바치기로 결정하고 다락에 둔 장난감 상자를 꺼내와 안방 바닥에 엎었다.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백 장의 딱지와 분유 깡통 세 개를 가득 채운 구슬들이었다. 은하세계나 달나라, 요정나라라도 감춘 듯 영롱하게 반짝이는 오색 구슬들도 소중하지만 내가 편애하는 것은 딱지다.
목포 골목에서부터 내 땀과 눈물을 가장 자주 훔쳐본 딱지는 정직하면서도 창의적인 게임이었다. 지형과 바람의 세기, 풍향 등을 분석한 뒤 상상력까지 발휘해 여러 용도의 딱지들을 만들어 체력과 테크닉을 겸비한 팔로 내리쳐 수십 장을 따면 아이들은 숙연해하며 감탄해줬다. 분명 그 탄성 속엔 존경과 숭배가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 나는 전쟁 영화의 스토리를 쏙 빼닮은 그 감동적인 구조가 소년들 세계에서 딱지가 어른들의 레슬링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게 한 이유라고 생각했다.
조각보 이불같이 화려한 딱지들을 한쪽으로 치워놓은 뒤 나는 다시 다락으로 가 딱지 재료들을 꺼내왔다. 철 지난『자유의 벗』 열 권과 그것들을 낱장으로 찢어 물에 불렸다 말렸다 하길 되풀이해 일차 가공해놓은 종이들이었다, 적의 딱지들 대부분을 땅으로부터 분리시키면서도 정작 자신은 어떤 공격에도 넘어가지 않게 해줄 딱지를 만들기 위한 기초 공사였다. 목포 골목을 삼 년이나 지배하다 서울로 떠난 영태 형이 후계자인 나에게만 전수해준 비법인데, 다른 아이들은 따라 하고 싶어도 재료를 구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자유의 벗』은 미 공보원이 발행해 관공서에만 배포하는 제법 귀한 반공 잡지이기 때문이다.
나는 열정적으로 딱지를 접기 시작했다. 얇고 질기고 탄력적인『자유의 벗』 종이를 다섯 장에서 열 장씩 겹쳐 공격과 수비를 겸할 딱지들로 변신시켜가며 나는 생각했다. 이곳 함평 아이들의 딱지 재료는 무엇일까? 공책, 달력, 잡지 표지, 설탕 포대 혹은 비료 포대? 그들의 집에도 우리 집처럼 책이 넘쳐날까? 설마『자유의 벗』이 일간신문이나 주간지만큼 흔하게 널려 있는 건 아니겠지. 또 대장 아이에겐 딱지 제작 기술을 전수해주고 온갖 무용담들을 들려줄 형이 있을까?
새 딱지는 최대한 납작하게 해줘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누나들의 책들로 눌러줄 딱지와 밤에 내 짱구 머리로 눌러줄 딱지, 도로 위에 깔아놓아 차들이 밟고 지나가게 한 뒤 수거해 와야 할 딱지들을 구분해놓은 뒤 나는 마지막 작업에 돌입했다. 바로 딱지가 가능한 한 오래 땅에 붙어 있을 수 있도록 커터 칼로 표면을 살살 긁어 울퉁불퉁하게 해주는 것.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엄마가 안방으로 와 뒷짐을 진 채 서성거리며 계속 나를 힐긋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