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날개를 구해줘 ②
7월 24일, 우리 가족은 새벽부터 이삿짐을 쌌다. 천지에 가득한 열기 때문에 누군가와 닿기만 해도 불쾌해지는 토요일이었다. 누나들이 많은 데다 옛 직원들도 송별 인사 삼아 도와주었기 때문에 짐 꾸리기는 착착 진행되었다. 일단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할, 이젠 저희끼리 자취생활을 해야 하는 둘째 누나와 셋째 누나는 아버지의 기분은 아랑곳 않고 계속 툴툴거렸다.
“아휴, 심란해. 심란해서 짐도 못 싸겠네.”
“이젠 우리끼리 밥해 먹고 빨래해가며 공부해야 한대. 난 몰라. 목포여고 시험 대비반에도 들어갔는데.”
“난 대입고사 치를 수험생이다.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죽자사자 공부해도 붙을동말동인데. 아, 이참에 규칙을 정하자. 도시락은 번갈아가며 싸기다. 나한테 몽땅 미루기만 해봐.”
“아, 알았어. 벌써부터. 무슨 언니가 저래?”
“이게 정말. 내가 널 모르면 이런 말 하지도 않아!”
그러나 아버지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술을 마셔서 꺼멓게 변색된 그 얼굴은 겨울밤의 동네 공터처럼 썰렁했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두루마리 휴지같이 풀려나오던 짐들이 트럭 두 대 안으로 모두 옮겨졌다. 집이 텅 비어버렸을 때야 식구들은 한 달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던 또 다른 이유를 깨달았다. 짐을 끌어내는 동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몸짓으로 마당을 가로지르거나 집 주위를 빙빙 돌며 청회색 무늬들을 만들어내던 수십 마리 비둘기들 때문이기도 했던 것이다. 특히 새들의 주인이며 아버지였던 아버지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새파랬다.
아버지는 팔짱을 낀 채 이젠 버려질 낡은 물건들로 꽉 찬 마당에서 노는 비둘기들과 지붕 박공 밑 새집을 들락거리는 비둘기들을 번갈아봤다. 세 번쯤. 나는 새들의 수를 헤아려봤다. 오십 마리쯤 돼보였다. 언제 저렇게 불어났을까? 늘 봐왔지만 새삼 놀라웠다.
오십이라는 수는 아버지가 맨 처음 사온 한 쌍의 비둘기로부터 계속 번식해서 이루어진 수였다. 비둘기를 잉꼬나 앵무새처럼 집에서 키우는 건 원래 일본 풍습이라고 했다. 일제시대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관공서 사택에서 비둘기를 키우는 풍습이 한국인들에게까지 퍼질 무렵 청년 시절을 일본에서 보낸 아버지가 정원을 가꾸는 풍습과 함께 그 문화를 받아들인 것이다. 비둘기들 수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면 제법 자란 새들을 암수 짝 지워 남의 집에 주거나 파는 이른바 분양이라는 것도 했다.
아버지는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른 뒤 담배를 피웠다. 지난 한 달 동안 아버지는 거의 새들을 돌보지 않았다. 아침마다 신문을 들고 마당으로 나와 손바닥 위에 쌀을 올려놓고 새들을 불러 모으던 그가 녀석들을 귀찮아하기까지 했다. 평소엔 아버지의 또 다른 아이들처럼 그의 어깨 위에 곧잘 올라앉던 새들도 눈치만 보며 쭈뼛거렸다. 아버지를 닮아 생물들의 감정을 잘 해독해내는 나는 새들과 아버지 간의 신경전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새들은, 화내고 슬퍼하고 자존심을 곤두세우면서도 한편으론 아버지가 자신들을 책임져주길 바랐고, 아버지는 여전히 새들을 사랑하면서도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했다.
아버지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아버지는 담배꽁초를 구둣발로 비벼 끄고 새들에게 다가갔다. 새들의 눈과 자태, 동작을 꼼꼼히 살펴보던 그는 아직 어리지만 빠르고 암팡져 보이는 놈으로만 두 쌍을 골라 새장에 담았다.
갑작스런 감금에 놀란 새들이 미친 듯이 푸드덕거리자 새장이 기우뚱거렸다. 대가족과 헤어지는 일에 충격을 받은 걸까? 청회색 날개들이 부딪혀 바람을 일으키더니 곧 새들이 머리를 천장에 찧는 소리가 들렸다. 남은 수십 마리의 새들도 일제히 날아올라 새장 주위를 돌았다. 평화의 상징이 아니라 격투 중인 검은 까마귀들 같은 새들은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새들의 집단적인 반항에 놀란 식구들은 집 곳곳에 주저앉았다.
그때 아버지가 새장 앞으로 가 쥐고 있던 신문으로 천장을 탁, 쳤다. 감쪽같이 수그러든 새들이 깃에 부리를 박고 앉았다. 나는 깜짝 놀랐다. 길들여지는 것에 익숙한 습성 탓일까? 아니면 주인에 대한 습관적인 예의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 감금에서 새로운 질서의 시작을 눈치챈 것일까? 그렇다면 좀 전에 놀란 척했던 건 또 무언가? 슬픈 눈을 끔벅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새들을 보자 아버지 못지않게 새들을 아끼고 정성껏 돌봐주었던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열두시 반쯤 새장은 트럭 한 구석에 얌전히 놓여졌다.
트럭에 올라탄 우리 가족을 멍하게 보는 마흔여섯 마리의 비둘기들을 뒤로 하고 떠날 때, 아버지는 눈을 감아버렸다. 입안에 물고 있던 유리 조각들을 삼켜버린 사람의 표정이 저럴까? 그러나 늘 비둘기 똥을 지겨워하며 툭하면 새들을 구박하던 엄마의 얼굴은 또 달랐다. 목포 집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엄마 얼굴은 갈아 끼운 유리창처럼 말개졌다. 엄마는 통쾌해하는 것 같았다.
‘흥, 그깟 쓸모없는 새들에게 마음을 주고 괴로워하니 직장에서도 밀려나지.’
물론 엄마에게도 새들에 대한 사랑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를 비웃는 쾌감에 비하면 미미해 보였다. 적어도 늘 무언가를 단칼로 내리쳐 끊어내는 일만은, 엄마가 아버지보다 능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