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날개를 구해줘 ①
내 아홉 번째 생일 다음 날, 한국 전력 회사에 다니던 아버지는 좌천을 당했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굉장히 거창하다.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너 정말 좌천이라는 말의 뜻을 알긴 아니? 라고 물어올까 봐 겁이 날 정도다.
1961년 6월 27일 밤 안방 미닫이문이 왈칵 열리면서 남자의 체취와 뒤섞인 술 냄새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곧 누군가가 제 몸을 방바닥에 쿵, 떨어뜨리는 소리가 났다. 술이 잔뜩 취해 부축을 받고 온 아버지겠지. 늘 그랬듯이 벌떡 일어나 윗도리를 벗고 넥타이를 풀고 다시 누워 코를 골 테고. 그런데 오늘은 그게 아니었다.
“성란아.”
오로지 인사하기가 귀찮아 벽 쪽으로 누워 잠든 척하고 있던 나는 눈을 떴다. 우리 집에서 아버지가 엄마 이름을 부르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내 부모 아닌 다른 배역이 있음을 말해주는 그 호칭을 좋아하지 않았다. 비교적 단순하고 호쾌한 남자인 나의 마음에 삐딱한 질투심과 야릇한 슬픔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또 아버지의 말투가 평소처럼 낭만적이지도 은근하지도 않다는 사실도 찜찜했다. 그는 곧 매연 같은 한숨을 토해냈다.
“나 오늘 발령받았다. 내 고향 전라남도 함평군 출장소 소장으로! 하하, 함평군 출장소라….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 그건 좌천이지.”
“과, 광주로 가는 것도 아니고 함평으로 내려가요? 이봐요, 수형 아버지! 강진에서 목포로 올라온 게 언젠데! 겨우 일 년 반밖에 안 됐는데!”
엄마가 아버지 몸을 마구 흔들었다. 방 안의 공기 알갱이들도 와르르 흔들렸다. 내 짱구 머릿속에 고여 있던 남은 잠이 신발을 꿰차고 달아나버렸다. 가짜 하품이라도 하며 일어나봐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했지만 곧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무엇보다도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든 확실하게 주연 역할을 해낼 수 없다면 아예 끼어들지 않는 성격이다. 윤곽조차도 흐린 사람이 되어 있으나마나하게 존재하는 것.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러나 잠시 후 엄마가 흐윽, 하고 울었을 때 나는 일어나버리고 말았다. 화려한 녹색 실크 잠옷을 입은 엄마가 아버지의 몸을 세차게 흔들고 있었다. 까무잡잡하고 매끄러운 엄마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방울들도 따라서 흔들렸다.
“자버리면 다야? 이유는 말해주고 자야지. 당신 밑에 있던 이 과장과 윤 계장은 승진했다는데 왜 당신이 시골로 가? 작년 연말 실적도 좋았다면서. 잘못도 없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아휴, 내가 나가 따져볼 수도 없고!”
저런…. 나는 누운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럴 땐 도저히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나이 적은 남자와 비교하며 시시콜콜 따지고 보채는 건 아버지에게 제발 화 좀 내주세요, 하고 비는 행위와 다름이 없다. 아들이 아닌 관객의 입장에서 봐도 그것만은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버지가 후줄근한 포대처럼 계속 흔들려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아버지의 감은 두 눈에 습기가 번지더니 얼굴과 몸이 굳어갔다. 등을 바닥에 꽉 붙인 그는 수명을 다하고 쓰러진 나무 같기도 하고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못 되는 죽은 위인의 동상 같기도 하다. 그를 억지로 뜯어내면 방바닥에 커다란 도장 같은 몸 자국이 찍혀 있을 것만 같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그러나 그녀의 눈물이 내가 닦아줄 수 있는 눈물이 아니어서 나는 다시 벽을 보고 누웠다. 뜻밖에도 아버지가 말한 함평이라는 낯선 장소에 대해 슬그머니 호기심이 동했다. 아, 그렇다고 내가 일 년 반 동안 살아온 목포를 싫어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틀렸다. 목포에서의 생활은 좋았다. 난 단지, 남아 있는 것도 괜찮지만 낯선 시골로 가보는 것 역시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나는 아홉 살의 건강한 소년이었고, 사람과 꽃과 짐승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괘종시계가 한 번 종을 쳤다. 옆방에서 주무시는 할머니 때문에 실컷 소리를 지를 수도 없는 엄마는 결국 마당으로 나갔다. 어둠 속에서 슬리퍼를 찾아 신은 엄마는 한동안 서성거리다 눈치 없이 봉오리를 활짝 연 여름 꽃들을 흘겨본 뒤 한 대 때려줄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의 화사함이 못마땅해서다. 그리고 그 이유 역시 단 하나다. 엄마는 자기 마음과 다른 건 다 싫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햇빛처럼 쾌활하면서도 은근히 까다롭고 대범한 척하면서도 옹졸한 엄마 밑에서 살다보면 누구든 눈치라는 게 늘게 된다. 지붕 박공 밑의 새집에서 살고 있는, 평소엔 밤에도 지붕 위를 막 쏘다니는 비둘기들도 오늘따라 조용했다.
올해 봄 서울의 한 사립대학에 입학한 큰누나의 말에 따르면, 엄마는 정치적인 사람이었다. 물론 나는 그 ‘정치적’이란 말의 뜻도 잘 몰랐지만, 누나의 말투와 눈빛에서 그것이 밖으로 나다니기 좋아하고 사람의 등급을 매기길 좋아하는 엄마 성격의 어떤 부분을 비꼬는 말일 거라고 짐작했다. 실제로 엄마는 사람이 적은 곳, 즉 이러이런 사람이라고 소개할 만한 그럴듯한 사람들이 없는 심심한 장소를 싫어했다. 그런 곳에선 엄마가 할 일이 없었다.
나는 곤히 잠든 척하기 위해 감은 눈꺼풀에서 힘을 빼고 입술까지 조금 벌렸다.
한참 후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를 반듯하게 눕힌 뒤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려주는 엄마의 큰 손에서 알싸한 담배 냄새가 났다. 금관의 냄새다. 엄마가 가끔 나에게 망까지 보게 하며 할머니 몰래 피우는 담배는 두 종류다. ‘금관’과 ‘진달래’.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엄마는 우울하거나 화가 날 때면 값비싼 금관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