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인세로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홍삼 엑기스를 한 박스 사드렸다. 할머니는 백담사에 가서 기도까지 했는데 고작 홍삼이야? 하고 투덜댔지만, 홍삼을 드시고 나서는 꼭 거실 한가운데서 팔굽혀펴기를 했다. 젊었을 적에는 팔굽혀펴기를 오십 개 이상 했다는 할머니는 아이들이 잘못을 하면 종아리를 때리는 대신 팔굽혀펴기를 시켰다.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팔 힘을 물려받았다. 할머니는 그것 말고도 장점이 많은 분이셨다. 하지만 그 장점들은 밑에 세 동생들이 골고루 나누어 물려받았다. 외할머니에게는 투피스 정장을 한 벌 사드렸다. “이제는 회장님처럼 가게에 앉아 계셔야 해요.” 카운터에 앉아서 손님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평생 식당을 해온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 모습이라고 아버지는 외할머니에게 말했다. 외할머니는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 부엌이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투피스를 만지면서 색이 곱네, 고마워, 하고 말했다.
부모님은 독자들을 만나면 사진 하나하나에 숨겨진 사연들을 이야기해주었다. 갓난아기일 때 눈이 안 보이는 아버지에게 밟혀 절름발이가 된 여자아이의 신발을 찍은 사진을 보며 아버지는 말했다. “자세히 보면 오른쪽이 닳아 밑창이 뚫어졌어요.” 장님인 여자아이의 아버지는 평생 딸에게 죄책감을 갖고 살아야 했다. 그때마다 여자아이는 괜찮다고, 그때 머리나 혹은 얼굴을 밟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가 몰라서 그러는데 이 동네에서 자기가 가장 예쁜 아이라고. 여자아이는 다리를 심하게 절었는데, 오른발을 내디딜 때마다 오른쪽으로 몸이 넘어질 듯 휘청거렸다. “하지만 이 절름발이 덕분에 목숨을 건졌어요.” 여자아이가 어느 공사현장을 지날 때였다. 뒤에서 일하던 인부가 스패너를 떨어뜨렸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던 여자가 마침 그 밑을 지나가고 있었다. 스패너는 여자의 왼쪽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왼쪽 허벅지 위로 떨어졌다. 만약 여자가 정상적으로 걸었다면 스패너는 여자의 머리를 맞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른쪽으로 몸이 휘는 바람에 스패너는 여자의 왼쪽 허벅지를 맞추고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허벅지를 세 바늘 꿰매면서 여자는 만약 다리를 절지 않았다면 지금쯤 머리를 수십 바늘 꿰매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사람들에게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면, 너무나 신기하게도, 누군가가 손을 들고는 말했다. “저도 그런 사람을 알아요.” 그러고는 다리를 저는 바람에 목숨을 건졌던 어느 아가씨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머니가 일곱 번이나 번개에 맞았지만 죽지 않았다는 어느 나무에 대해, 그리고 그 나무 아래에 앉아서 아무도 사지 않는 음료수를 팔고 있는 노파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또 누군가 손을 흔들고 저의 고향에도 그런 나무와 노파가 있어요, 하고 말해주었다. 나는 빵 봉지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혹시 누군가 저도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아가본 적이 있어요, 하고 말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책을 낸 뒤에 약간의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아무리 책을 들여다보아도 거기에는 다른 사람의 삶만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곧 오십대가 된다는 사실이 두려웠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것이라곤 겨우 책 한 권뿐이라는 사실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새벽이슬이 내려앉은 마당을 맨발로 걸으면서 아버지는 일찍 죽은 큰삼촌을 생각했다. 에이, 형 왜 그래, 하며 주먹으로 자신의 어깨를 툭 치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버지는 불이 켜진 내 방을 올려다보면서 그래도 이 세상에 날 닮은 사람이 저기 한명 있지, 하고는 중얼거렸다. 나는 아버지가 새벽마다 불이 켜진 내 방을 올려다본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아버지를 위해 늘 불을 켜고 잠을 잤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밤새 공부를 하는 녀석이 왜 그렇게 공부를 못하냐? 하고 묻지 않았다. 실연을 당한 뒤 삼 년 동안 세계여행을 했다는 전직 아나운서가 쓴 여행기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서점에 다녀온 아버지는 우리의 책이 더이상 여행 베스트셀러 코너에 꽂혀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버지는 새로운 책을 써야겠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국내 편으로 말이야.” 독자들을 만나면서 부모님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들었던 기적 같은 이야기들이 실은 주변에 아주 많이 널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그걸 찾는 거야.”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는 인세로 카메라 장비를 샀다. 그러고는 예전에 쓰던 카메라는 나에게 주었다. “너는 우리를 찍어봐.” 아버지는 그것이 우울증을 해결할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고, 나는 그런 부모님을 타인처럼 바라보고, 그리고 그런 나를 부모님이 바라보는 것. 아버지의 머릿속에는 이미 새 책의 구성이 완성되어 있었다.
부모님은 독자들을 만나면 사진 하나하나에 숨겨진 사연들을 이야기해주었다. 갓난아기일 때 눈이 안 보이는 아버지에게 밟혀 절름발이가 된 여자아이의 신발을 찍은 사진을 보며 아버지는 말했다. “자세히 보면 오른쪽이 닳아 밑창이 뚫어졌어요.” 장님인 여자아이의 아버지는 평생 딸에게 죄책감을 갖고 살아야 했다. 그때마다 여자아이는 괜찮다고, 그때 머리나 혹은 얼굴을 밟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가 몰라서 그러는데 이 동네에서 자기가 가장 예쁜 아이라고. 여자아이는 다리를 심하게 절었는데, 오른발을 내디딜 때마다 오른쪽으로 몸이 넘어질 듯 휘청거렸다. “하지만 이 절름발이 덕분에 목숨을 건졌어요.” 여자아이가 어느 공사현장을 지날 때였다. 뒤에서 일하던 인부가 스패너를 떨어뜨렸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던 여자가 마침 그 밑을 지나가고 있었다. 스패너는 여자의 왼쪽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왼쪽 허벅지 위로 떨어졌다. 만약 여자가 정상적으로 걸었다면 스패너는 여자의 머리를 맞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른쪽으로 몸이 휘는 바람에 스패너는 여자의 왼쪽 허벅지를 맞추고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허벅지를 세 바늘 꿰매면서 여자는 만약 다리를 절지 않았다면 지금쯤 머리를 수십 바늘 꿰매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사람들에게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면, 너무나 신기하게도, 누군가가 손을 들고는 말했다. “저도 그런 사람을 알아요.” 그러고는 다리를 저는 바람에 목숨을 건졌던 어느 아가씨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머니가 일곱 번이나 번개에 맞았지만 죽지 않았다는 어느 나무에 대해, 그리고 그 나무 아래에 앉아서 아무도 사지 않는 음료수를 팔고 있는 노파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또 누군가 손을 흔들고 저의 고향에도 그런 나무와 노파가 있어요, 하고 말해주었다. 나는 빵 봉지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혹시 누군가 저도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아가본 적이 있어요, 하고 말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책을 낸 뒤에 약간의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아무리 책을 들여다보아도 거기에는 다른 사람의 삶만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곧 오십대가 된다는 사실이 두려웠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것이라곤 겨우 책 한 권뿐이라는 사실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새벽이슬이 내려앉은 마당을 맨발로 걸으면서 아버지는 일찍 죽은 큰삼촌을 생각했다. 에이, 형 왜 그래, 하며 주먹으로 자신의 어깨를 툭 치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버지는 불이 켜진 내 방을 올려다보면서 그래도 이 세상에 날 닮은 사람이 저기 한명 있지, 하고는 중얼거렸다. 나는 아버지가 새벽마다 불이 켜진 내 방을 올려다본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아버지를 위해 늘 불을 켜고 잠을 잤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밤새 공부를 하는 녀석이 왜 그렇게 공부를 못하냐? 하고 묻지 않았다. 실연을 당한 뒤 삼 년 동안 세계여행을 했다는 전직 아나운서가 쓴 여행기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서점에 다녀온 아버지는 우리의 책이 더이상 여행 베스트셀러 코너에 꽂혀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버지는 새로운 책을 써야겠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국내 편으로 말이야.” 독자들을 만나면서 부모님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들었던 기적 같은 이야기들이 실은 주변에 아주 많이 널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그걸 찾는 거야.”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는 인세로 카메라 장비를 샀다. 그러고는 예전에 쓰던 카메라는 나에게 주었다. “너는 우리를 찍어봐.” 아버지는 그것이 우울증을 해결할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고, 나는 그런 부모님을 타인처럼 바라보고, 그리고 그런 나를 부모님이 바라보는 것. 아버지의 머릿속에는 이미 새 책의 구성이 완성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