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집에서 자장면 세 그릇이 배달되던 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지는 전화를 받으면서 배달원에게 잠깐만 기다리세요, 하고 말했다. 수화기 저편에서 편집장이 아버지의 이름을 말했다. 접니다, 라고 대답하면서 아버지는 혹시 카드회사에서 온 전화가 아닌지 마음을 졸였다. 두 달 전, 결혼기념으로 어머니에게 목걸이를 하나 선물했는데, 카드 결제를 아직 못 했던 것이다. 편집장이 원고 이야기를 하자 아버지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소파에 누워 있던 작은삼촌이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음식을 거실에 내려놓고 돈을 주기를 기다리던 배달원도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발로 작은삼촌을 툭, 툭, 쳤다. 그리고 송화기 부분을 손으로 가린 다음 얼른 계산해, 하고 말했다. 편집장이 언제 한번 출판사로 나와달라고 말을 했다. 아버지는 내일 가겠습니다, 라고 대답하려다가 너무 조급해 보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수요일쯤은 어떨까요? 그날 시간이 가능합니다.” 아버지는 말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아버지는 작은삼촌을 발로 한번 찼다. “넌 먹지 마!” 배달원이 만이천원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만오천원을 주면서 거스름돈은 됐어요, 하고 인심을 썼다. “웬일이야?” 작은삼촌은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왕복 한 시간 거리의 마트도 걸어다니는 아버지가 어쩐 일로 삼천원이나 팁으로 주었는지 궁금했다. “안 가르쳐줘.” 아버지는 말했다. 아버지가 부엌 입구에 달린 벨을 눌렀다. 벨소리가 2층 전체에 울렸다. 나는 읽던 만화책을 내려놓고는 1층으로 내려갔다. 벨을 설치한 것은 아버지의 생각이었다. 기상시간이나 식사시간을 알리는 벨이었지만 할머니는 등이 가려울 때도 벨을 누르곤 했다. “오늘 저녁은 자장면이다.”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나는 종일 잠옷 바람으로 소파에 뒹굴고 있던 두 남자를 쳐다보고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자장면을 먹다 아버지와 내가 마지막 남은 단무지를 동시에 집었다. 아버지가 내게 귓속말로 전화가 왔었어, 하고 말했다. 나는 아버지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나는 마지막 단무지를 아버지에게 양보했다. “그런데 엄마한테 전화했어요?” 나는 먹던 자장면을 내려놓고는 외할머니의 가게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외할머니가 지금 바쁘단다, 하고 말했다. “외할머니, 집에 올 때 족발 하나만 가지고 오라고 엄마한테 해주세요. 파티할 일이 있다고요.” 내 말에 외할머니가 이만삼천원이란다, 하고 농담을 했다. 족발 파티를 하면서, 아버지는 작은삼촌과 고모에게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취했고, 작은삼촌에게 책이 팔리면 차를 사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고모에게는 시집을 가면 모든 가전제품은 다 사주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엉엉 울면서 안방 문을 붙잡고 울었다. “어머니, 주무세요? 제가 유럽여행을 보내드릴게요.” 할머니는 동네 할머니들이랑 설악산에 이박삼일 놀러 갔기 때문에 안방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식구들이 아버지의 등뒤에서 킥킥대며 웃었다. 그날 할머니는 백담사에서 돈 만원을 내고 기왓장에 식구들의 이름을 새겼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가 책을 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할머니는 모든 게 자신의 기도 덕분이라고 공치사를 늘어놓았다. 아버지는 책이 나올 때까지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조깅을 했다. “배 나온 중년 아저씨가 쓴 책이라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니.” 아버지는 조깅을 하기 전에 2층으로 올라와서 나를 깨웠다. “마찬가지로 배 나온 소년이 쓴 책을 누가 좋아하겠니.” 나는 뱃살이 문제가 아니라 여드름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땀을 흘리며 여드름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에 속아주는 셈 치고 딱 한 번 아버지를 따라 조깅을 했다. 하지만, 너무 피곤해서 오전 수업 내내 졸아야 했다. 조깅 대신 일주일에 두 번씩 피부과에 다녔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어머니는 눈 밑의 주름과 기미가 신경쓰였지만 가게가 워낙 바빠 따로 손볼 여력이 없었다. 책에 넣을 가족사진을 찍던 날, 어머니는 자꾸만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왼쪽 눈 밑에 기미가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눈치챈 사진작가가 어머니에게 다가와 제가 다 지워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하고 말했다. 그제야 어머니는 사진작가가 여길 보세요, 하고 말할 때마다 활짝 웃었다. 책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아버지는 화요일 심야시간에 하는 책 프로그램을 꼬박꼬박 보면서 더딘 시간을 견뎠다. 그사이 외할머니의 가게는 요리프로그램에 나가는 것이 확정되었고, 어머니는 참외를 일분에 세 개 이상 깎을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하게 칼질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아버지는 이상하게 자신감에 차서 작은삼촌에게 이 형이 말이다, 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되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고 단짝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수학선생님은 ‘어떤’이란 말을 자주 썼는데, 나는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어떤’이란 단어를 몇번이나 쓰는지를 세면서 지루한 수학시간을 보냈다. 세 달 후 평균을 내보니 세상에나 백스물아홉 번이나 되었다. 그리고 겨울이 지나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작가프로필에 나이를 한 살 더 올려야 한다는 사실에 실망을 했다. “뭐 그래봤자 똑같은 사십대잖아요.” 내가 말했지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다. 어머니가 가게 앞 가로수의 은행나무에서 새싹이 돋는 것을 무심히 바라보던 어느 날 드디어 책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