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신입직원은 아버지가 보낸 사진이 왜 눈에 익은지 기억이 났다. 회사에서 집까지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신입직원은 퇴근하고 집에 가면 잠자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피곤해졌다. 마을버스를 타면 늘 졸았고 그래서 정거장을 지나치는 일도 많았다. 집에 도착하기 두 정거장 전에, 기사는 앞서 달리던 자전거를 피해 급정거를 했고, 신입직원은 의자의 손잡이에 이마를 부딪쳤다. 꿈을 꾸고 있는 건지 꿈에서 깬 건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신입직원은 이마를 만지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문득, 아 그 사진, 하고 중얼거렸다. 대학 졸업을 일 년 앞두고 휴학을 했을 때였다. 대형 할인마트에서 일을 하던 어머니가 디스크 수술을 받게 되자, 신입직원은 어머니를 대신해서 일을 했다. 그때 신입직원의 꿈은 배낭여행을 떠나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는 한 달에 백만원을 받는다고 거짓말을 했다. 실은 한 달에 백십만원을 받았다. 거기에 어머니 몰래 과외를 했고, 그래서 한 달에 사십만원씩 몰래 돈을 모았다. 마침내 복학을 한 달 앞두고 신입직원은 배낭여행을 떠났다. 신입직원이 눈에 익는다고 생각한 사진은, 그 사진 속의 할아버지는, 배낭여행중 만났던 사람이었다. 감기에 걸려서 예정일보다 며칠을 더 머물러야 했던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아버지였다. 게스트하우스 입구 의자에 앉아서 하루 종일 박하사탕을 먹던 할아버지였다. 집에 돌아온 신입직원은 부은 다리를 주무르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어머니에게 그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게스트하우스 입구에 앉아 손님들에게 오로지 ‘굿 바이’라는 말만 한다고. 눈앞에서 부인이 죽은 것을 목격한 이후에 그렇게 되었다고. 그후로 이십 년 동안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그런데 엄마. 놀라운 일은 그전의 일들은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을 한다는 거야.” 마을사람들은 옛 기억을 두고 싸움을 벌이다 해결이 나지 않으면 할아버지에게 찾아왔다. 어르신, 우리 아들이 열세 살 때 옆집 창문을 깨서 물어준 적이 있죠? 하고 물으면 할아버지는 너무나 세세한 것까지 대답을 해주었다. 창문을 깰 때 같이 있었던 녀석들과, 바람이 나서 도망을 간 창문가게 사장의 이름과, 당시 창문의 가격까지도. 할아버지는 삼십 년 전에 누구네 집 생일잔치에는 어떤 음식을 차렸는지는 알아차려도 정작 자신의 손자는 알아보지 못했다. 손자가 첫 월급으로 박하사탕을 한 박스나 사왔다는 것도. “슬픈 일이네.” 딸의 이야기를 들은 신입직원의 어머니는 말했다. 이렇게 허리가 아픈데 나중에 내 손자라도 업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출근을 하자마자 신입직원은 다시 한번 사진을 확인했다. 지팡이 때문에 잘 보이진 않지만 분명 박하사탕처럼 하얗고 작은 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 사진 뒤에 적힌 편지를 보니 더더욱 확실해졌다. ‘우리도 아주 나중에, 늙게 되면, 손자 손녀 들에게 박하사탕을 선물 받게 될까? “엄마, 구멍이 뚫려요. 구멍이” 이 말이 네가 박하사탕을 처음으로 먹던 날 한 말이란다.’ 신입직원은 박하사탕을 먹고 난 다음 입을 벌리고 운동장을 달려본 기억이 있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한 날이었다. 신입직원은 용기를 내어 편집장에게 아버지의 원고를 보여주었다. 원고를 본 편집장은 이 책을 왜 내야 하는데? 하고 물었다. “가족신문이나 만들라고 해.” 신입직원은 편집장에게 그래도 혹시 다른 원고를 보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만 읽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편집장이 아버지의 원고를 싫어했던 이유는 아버지가 원고 맨 앞에 붙인 편지의 첫 문장 때문이었다. 이것은 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라고 아버지는 적었다. 그간 이십이 년의 경험으로 볼 때, 그런 편지와 함께 투고된 원고치고 좋은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편집장은 그런 말을 신입직원에게 하지 않았다. 그런 지루한 원고들을 더 읽을 필요가 있는 신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편집장은 그래, 알았어, 하고 대답했다. 편집장은 원고를 책상 구석에 던져두었다. 며칠이 지나자 아버지의 원고 위로 다른 원고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신입직원은 퇴근을 하기 전에 편집장의 자리에 가서 밑에 깔린 아버지의 원고를 맨 앞으로 올려놓았다. 편집장은 일요일에 빈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다. 집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해서 커피를 세 잔씩 마셔가며 책을 한 권 읽고, 책상 정리를 하고, 이메일함을 열어 일주일 동안 쌓인 스팸메일을 지우고, 그리고 창밖으로 지는 해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하지만, 10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은 지는 해를 보지 못했다. 책상 정리를 하다가 구석에 쌓아둔 원고 뭉치 속에서 아버지의 원고를 발견했다. 신입직원의 제발요, 하는 목소리가 떠올라 편집장은 원고를 읽어보기 시작했다. ‘중간에 사라진 원고는 못 찾겠어요. 그래도 주소하고 전화번호는 찾아냈어요.’ 마지막 장에 신입직원은 메모를 남겼다. 숫자 9를 알파벳 g처럼 썼다. 편집장은 수화기를 들고 9가 네 번이나 들어가는 우리집 전화번호를 눌렀다.
출근을 하자마자 신입직원은 다시 한번 사진을 확인했다. 지팡이 때문에 잘 보이진 않지만 분명 박하사탕처럼 하얗고 작은 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 사진 뒤에 적힌 편지를 보니 더더욱 확실해졌다. ‘우리도 아주 나중에, 늙게 되면, 손자 손녀 들에게 박하사탕을 선물 받게 될까? “엄마, 구멍이 뚫려요. 구멍이” 이 말이 네가 박하사탕을 처음으로 먹던 날 한 말이란다.’ 신입직원은 박하사탕을 먹고 난 다음 입을 벌리고 운동장을 달려본 기억이 있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한 날이었다. 신입직원은 용기를 내어 편집장에게 아버지의 원고를 보여주었다. 원고를 본 편집장은 이 책을 왜 내야 하는데? 하고 물었다. “가족신문이나 만들라고 해.” 신입직원은 편집장에게 그래도 혹시 다른 원고를 보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만 읽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편집장이 아버지의 원고를 싫어했던 이유는 아버지가 원고 맨 앞에 붙인 편지의 첫 문장 때문이었다. 이것은 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라고 아버지는 적었다. 그간 이십이 년의 경험으로 볼 때, 그런 편지와 함께 투고된 원고치고 좋은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편집장은 그런 말을 신입직원에게 하지 않았다. 그런 지루한 원고들을 더 읽을 필요가 있는 신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편집장은 그래, 알았어, 하고 대답했다. 편집장은 원고를 책상 구석에 던져두었다. 며칠이 지나자 아버지의 원고 위로 다른 원고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신입직원은 퇴근을 하기 전에 편집장의 자리에 가서 밑에 깔린 아버지의 원고를 맨 앞으로 올려놓았다. 편집장은 일요일에 빈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다. 집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해서 커피를 세 잔씩 마셔가며 책을 한 권 읽고, 책상 정리를 하고, 이메일함을 열어 일주일 동안 쌓인 스팸메일을 지우고, 그리고 창밖으로 지는 해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하지만, 10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은 지는 해를 보지 못했다. 책상 정리를 하다가 구석에 쌓아둔 원고 뭉치 속에서 아버지의 원고를 발견했다. 신입직원의 제발요, 하는 목소리가 떠올라 편집장은 원고를 읽어보기 시작했다. ‘중간에 사라진 원고는 못 찾겠어요. 그래도 주소하고 전화번호는 찾아냈어요.’ 마지막 장에 신입직원은 메모를 남겼다. 숫자 9를 알파벳 g처럼 썼다. 편집장은 수화기를 들고 9가 네 번이나 들어가는 우리집 전화번호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