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인테리어를 새로 해야 한다며 고모는 적금통장을 내놓았다. 취직을 하고, 신용카드를 만들고, 어느 적금이 이율이 더 좋은지 은행마다 비교하러 다녔을 때만해도 고모에게는 많은 계획이 있었다. 처음에는 월 이십만원씩 이 년짜리 적금을 부었다. 적금 만기를 여섯 달 남기고 할아버지의 어금니 두 개가 빠졌다. 다음에는 조금 무리해서 월 삼십만원짜리 적금을 부었다. 만기를 얼마 앞두고 작은삼촌이 사고를 쳤다. 술을 먹다가 옆자리 사람들과 시비가 붙었는데, 그만 상대방의 이가 나간 것이다. 작은삼촌은 그저 밀기만 했다고, 그랬는데 술에 취한 남자가 넘어지면서 탁자 모서리에 이를 부딪친 것뿐이라고 변명을 했다. 고모는 모아놓은 돈이 한 푼도 없는 작은삼촌이 한심했다. “그래가지고 어디 결혼이나 하겠어?” 그랬더니 작은삼촌이 난 월급의 전부를 어머니에게 드려, 하고 말했다. 고모는 해약을 한 적금통장을 작은삼촌에게 주었다. “이제는 생판 모르는 남자의 이나 해줘야 하다니.” 체육시간에 축구를 하다가 인대가 늘어났던 나는 작은삼촌과 고모에게 이제 더이상 물리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말을 했다. “병원비도 아낄 겸 집에서 찜질을 할게.” 고모가 만기가 될 때까지 적금을 부은 적은 딱 한 번이었다. 고모는 그 돈에 맞는 해외여행지를 골라두었다. 서른 살이 되는 기념으로 여행을 갈 생각을 하니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익숙한 공간이 그렇게 지루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텔레비전 옆에 놓여 있는 고장난 리모컨, 오 초에 한 방울씩 물이 떨어지는 수도꼭지, 오른쪽만 두 개가 남은 실내화. 그 모든 것이 십 년 동안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고모는 ‘소년소녀 가장 돕기’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눈물을 흘렸다. 이대로 사는 건 의미가 없어.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해외여행을 갈 돈을 모조리 기부를 했다. 고모가 건네준 적금통장을 본 어머니는 아가씨, 아직, 세 달이나 남았어요, 하고 말을 했다. “그냥 해약해요. 내가 붓는 적금은 늘 그랬어요.”
어머니와 고모는 타일 하나를 고르는 데도 신중했다. 미끄러지지는 않는지, 때가 잘 타지는 않는지, 잘 깨지지는 않는지…… 그런 것을 고르는 동안 어머니는 생각보다 고모와 잘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향이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고모가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를 하는 것을 보아왔던 어머니는 주방만은 절대 맡기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고모는 가게 앞에 ‘새 단장중입니다. 가게 주인은 바뀌지 않았으니 다시 찾아주세요.’ 라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고모가 인테리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카운터였다. 카운터에는 오래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프지 않는다는,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를 했다는 의자를 사두었다. “사돈어르신이 여기 앉아 계셔야 해요. 저기 구석진 자리까지 모두 볼 수 있다는 듯이.”
고모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분점을 열 개만 내자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고모보다 먼저 장사를 시작한 어머니는 그 말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았지만 고모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우리 오 년 안에 해봐요, 하고 대답했다.
가게를 새로 오픈하는 날 작은삼촌은 직장동료들을 열 명이나 데리고 왔다. 외할머니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그렇게 편하게 앉아서 가게를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가게를 시작한 후로 외할머니는 손님들의 돈을 앉아서 받아본 적이 없었다. 삼촌의 직장동료들은 족발 두 접시와 보쌈 두 접시를 먹었다. “정말 맛있네요.” “앞으로 자주 올게요.” 그들은 똑같은 말을 하고 또 했다. 그러고는 계산도 하지 않고 떠났다. 외할머니는 십이만팔천원이라고 적은 영수증을 누구에게 줘야 할지 몰라 앞장이 떨어져나간 외상장부 사이에 끼워두었다. 그러면서 아는 사람이랑 동업을 해서는 안 되는 건데, 하고 후회를 했다. 작은삼촌이 군대에 있을 적에 홀쭉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친구가 찾아왔다. 제대를 하고 소식이 끊어진 홀쭉이가 작은삼촌을 다시 찾게 된 것은 할머니가 출연한 퀴즈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그날 우리 가족의 응원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갔다. 홀쭉이는 작은삼촌을 한 번에 알아보았다. 퀴즈 프로그램의 작가는 쉽게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세상의 기인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할 적에 방송에 나온 남자가 오래 전부터 찾고 있던 친구라며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시청자가 있었다. 작가는 아무 의심 없이 전화번호와 집주소를 알려주었다. 며칠 후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을 때에야 작가는 연락처를 알려준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전화를 건 시청자는 약혼자의 배신으로 자살기도를 한 딸을 둔 아버지였다. 그 딸은 그후로 반신마비가 되었다. 어느 날, 자신의 딸을 버린 남자가 텔레비전에 나온 것을 보게 되었고 그래서 그 딸의 아버지는 복수를 했다. 자신의 딸이 겪은 고통의 반이라도 느끼게 되길 바랐다고, 딸의 아버지는 경찰에게 말했다. 하지만, 십여 년 전에 약혼자를 버린 남자는 겨우 허벅지에 열 바늘을 꿰맸을 뿐이었다. 그 사건으로 고통을 받은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작가였다. 개인 정보를 유출했다는 이유로 프로그램에서 잘렸으니까. 그래서 작가는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홀쭉이는 삼촌과 같이 찍은 사진을 들고 방송국을 찾아갔다. 작가에게 그 사진을 보여주었고, 작가는 홀쭉이를 보면서 예전과 많이 다르시네요, 하고 말했다. 살이 적당히 붙은 홀쭉이는 더이상 군대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 “번호를 알려주시면 오늘 저녁 살게요.” 홀쭉이는 말했고, 작가는 얼른 번호를 알려주었다. 작은삼촌과 홀쭉이는 계속해서 건배를 했다. 테이블을 정리하던 아버지는 너무 많이 마시는 것 아니냐, 하고 한마디를 했다. 아버지는 자신을 보고 찾아온 손님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울적해졌다. 아버지가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은 너무나 먼 곳에 있었다.
어머니와 고모는 타일 하나를 고르는 데도 신중했다. 미끄러지지는 않는지, 때가 잘 타지는 않는지, 잘 깨지지는 않는지…… 그런 것을 고르는 동안 어머니는 생각보다 고모와 잘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향이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고모가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를 하는 것을 보아왔던 어머니는 주방만은 절대 맡기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고모는 가게 앞에 ‘새 단장중입니다. 가게 주인은 바뀌지 않았으니 다시 찾아주세요.’ 라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고모가 인테리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카운터였다. 카운터에는 오래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프지 않는다는,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를 했다는 의자를 사두었다. “사돈어르신이 여기 앉아 계셔야 해요. 저기 구석진 자리까지 모두 볼 수 있다는 듯이.”
고모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분점을 열 개만 내자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고모보다 먼저 장사를 시작한 어머니는 그 말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았지만 고모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우리 오 년 안에 해봐요, 하고 대답했다.
가게를 새로 오픈하는 날 작은삼촌은 직장동료들을 열 명이나 데리고 왔다. 외할머니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그렇게 편하게 앉아서 가게를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가게를 시작한 후로 외할머니는 손님들의 돈을 앉아서 받아본 적이 없었다. 삼촌의 직장동료들은 족발 두 접시와 보쌈 두 접시를 먹었다. “정말 맛있네요.” “앞으로 자주 올게요.” 그들은 똑같은 말을 하고 또 했다. 그러고는 계산도 하지 않고 떠났다. 외할머니는 십이만팔천원이라고 적은 영수증을 누구에게 줘야 할지 몰라 앞장이 떨어져나간 외상장부 사이에 끼워두었다. 그러면서 아는 사람이랑 동업을 해서는 안 되는 건데, 하고 후회를 했다. 작은삼촌이 군대에 있을 적에 홀쭉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친구가 찾아왔다. 제대를 하고 소식이 끊어진 홀쭉이가 작은삼촌을 다시 찾게 된 것은 할머니가 출연한 퀴즈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그날 우리 가족의 응원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갔다. 홀쭉이는 작은삼촌을 한 번에 알아보았다. 퀴즈 프로그램의 작가는 쉽게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세상의 기인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할 적에 방송에 나온 남자가 오래 전부터 찾고 있던 친구라며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시청자가 있었다. 작가는 아무 의심 없이 전화번호와 집주소를 알려주었다. 며칠 후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을 때에야 작가는 연락처를 알려준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전화를 건 시청자는 약혼자의 배신으로 자살기도를 한 딸을 둔 아버지였다. 그 딸은 그후로 반신마비가 되었다. 어느 날, 자신의 딸을 버린 남자가 텔레비전에 나온 것을 보게 되었고 그래서 그 딸의 아버지는 복수를 했다. 자신의 딸이 겪은 고통의 반이라도 느끼게 되길 바랐다고, 딸의 아버지는 경찰에게 말했다. 하지만, 십여 년 전에 약혼자를 버린 남자는 겨우 허벅지에 열 바늘을 꿰맸을 뿐이었다. 그 사건으로 고통을 받은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작가였다. 개인 정보를 유출했다는 이유로 프로그램에서 잘렸으니까. 그래서 작가는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홀쭉이는 삼촌과 같이 찍은 사진을 들고 방송국을 찾아갔다. 작가에게 그 사진을 보여주었고, 작가는 홀쭉이를 보면서 예전과 많이 다르시네요, 하고 말했다. 살이 적당히 붙은 홀쭉이는 더이상 군대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 “번호를 알려주시면 오늘 저녁 살게요.” 홀쭉이는 말했고, 작가는 얼른 번호를 알려주었다. 작은삼촌과 홀쭉이는 계속해서 건배를 했다. 테이블을 정리하던 아버지는 너무 많이 마시는 것 아니냐, 하고 한마디를 했다. 아버지는 자신을 보고 찾아온 손님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울적해졌다. 아버지가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은 너무나 먼 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