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들에게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한 고모는 동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도서관은 열시에 문을 열었다. 고모는 벤치에 앉아서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다. 고모처럼 정장을 입고, 아홉시가 되기 전부터,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서류가방을 들고 넥타이까지 메고 오는 남자들도 있었다. 고모는 도서관 게시판에 일반 회사도 아홉시면 업무가 시작인데 열시에 문을 여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글을 남겼다. 댓글이 수십 개가 달렸지만 담당자의 답변은 올라오지 않았다. 도서관 식당의 라면이 지겨워질 무렵, 아침 공기가 서늘해져서 삼십 분 이상 벤치에 앉아 있기가 힘들어질 무렵, 고모는 용기를 내어 할머니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을 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말했다. “그만두고 싶다니. 벌써 그만둔 거 아니었어?” 할머니가 눈치를 챈 것은 퀴즈대회에서 떨어지고 얼마 후였다. 아침상에 청국장을 내놓았는데, 밥을 먹은 후 고모는 양치질을 다시 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기억에 의하면, 취직을 한 뒤로, 고모는 늘 양치질을 두 번 했다. 밥을 먹기 전에 한 번, 밥을 먹은 후에 한 번. 특히, 청국장을 먹은 날은 반드시 이를 닦았다. 과장인가 부장인가가 청국장 냄새를 끔찍이 싫어한다며 가그린으로 입을 두어 번 더 헹구기도 했다. 고모가 출근을 하고 난 뒤 할머니는 신발장을 열어보았다. “넌 지난 한 달 동안 한 번도 굽 높은 구두를 신지 않았지. 게다가 네가 마신 물컵에 립스틱 자국도 없었어.” 할머니는 말했다. “한 달 안에 다시 취직을 하거나, 일 년 안에 결혼을 하거나.” 할머니는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말을 했다. “삼 개월 안에 독립을 하겠어!” 고모가 말을 했다.
회사를 그만둔 지 네 달 하고 열흘 만에 처음으로 고모는 늦잠을 잤다. 고모는 열시 반쯤 일어나 잠옷을 입은 채로 아침밥을 먹었다. 늦잠을 잔 어머니가 기지개를 켜며 부엌으로 건너오면서 오늘 반찬은 뭐예요? 하고 물었다. “뭇국이요.” 어머니는 숟가락을 들고 고모의 맞은편에 앉았다. 동치미 국물을 한 모금 마신 어머니가 딱 알맞게 익었네, 하고 말을 했다. “그런데 출근 왜 안 했어요. 오늘 일요일인가?” 그때,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소리쳤다. “놔둬라. 삼 개월 안에 독립한다니까. 너 돈 꿔주지 마라.” 고모가 밥을 먹다 말고 어머니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가씨. 난 돈 없어요.” 어머니가 말했다. 고모는 어머니의 눈 밑을 가리켰다. “제가 기미 없애는 화장품 선물할게요.” 고모는 할머니가 듣도록, 거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어머니만이 들을 수 있도록 작은 소리로 말을 했다. “그러니까 새언니. 족발가게 같이 동업해요.”
도서관에서 고모는 노숙자에서 식당 사장이 된 남자의 자서전을 읽었다. 남자의 마음을 바꾸게 한 것은 어느 식당 주인 덕분이었다. 배가 고팠던 남자는 눈에 보이는 아무 식당에 들어가 김치찌개를 시켜 먹었다. 테이블이 몇 개 없는 작은 식당이었다. 남자는 공깃밥을 추가했다. 그러자, 계란프라이와 함께 밥이 나왔다. “계란은 서비스예요.” 밥을 다 먹은 남자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가게 주인에게 고추볶음을 좀더 달라고 말을 했다. 주인이 주방으로 들어간 사이 남자는 도망을 쳤다. 가게 문에 달린 종에서 땡그랑, 소리가 났는데 그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렸다. 도망을 가는 남자의 등에 대고 가게 주인이 소리쳤다. “성공하면 갚아.” 고모는 그 이야기를 외할머니에게 들려주었다. “그 남자는 서른 개가 넘는 체인점을 지닌 식당 사장이 되었어요. 김치찌개가 먹고 싶은 날이면 어김없이 그 가게를 찾아간다네요. 물론 공깃밥도 추가해 먹고요.” 외할머니는 고모에게 그런 이야기라면 가게에 앉아서 수도 없이 들을 수 있다고 말을 했다. “그러니까요.” 고모가 얼른 말을 받았다. “저도 그런 가게 주인이 되고 싶어요.” 외할머니는 무릎을 주무르면서 생각했다. 김치찌개니까 공짜로 주지. 족발을 어떻게 공짜로 줘. 외할머니는 나도 한 달에 쌀 한 가마니씩 기부를 한다오, 하고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거지들이 찾아오면 콩나물국에 밥을 한 그릇씩 대접하곤 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딸 힘들게 하지 말고, 가게를 두 배로 늘려놓아야 해.” 할머니가 말했다.
회사를 그만둔 지 네 달 하고 열흘 만에 처음으로 고모는 늦잠을 잤다. 고모는 열시 반쯤 일어나 잠옷을 입은 채로 아침밥을 먹었다. 늦잠을 잔 어머니가 기지개를 켜며 부엌으로 건너오면서 오늘 반찬은 뭐예요? 하고 물었다. “뭇국이요.” 어머니는 숟가락을 들고 고모의 맞은편에 앉았다. 동치미 국물을 한 모금 마신 어머니가 딱 알맞게 익었네, 하고 말을 했다. “그런데 출근 왜 안 했어요. 오늘 일요일인가?” 그때,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소리쳤다. “놔둬라. 삼 개월 안에 독립한다니까. 너 돈 꿔주지 마라.” 고모가 밥을 먹다 말고 어머니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가씨. 난 돈 없어요.” 어머니가 말했다. 고모는 어머니의 눈 밑을 가리켰다. “제가 기미 없애는 화장품 선물할게요.” 고모는 할머니가 듣도록, 거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어머니만이 들을 수 있도록 작은 소리로 말을 했다. “그러니까 새언니. 족발가게 같이 동업해요.”
도서관에서 고모는 노숙자에서 식당 사장이 된 남자의 자서전을 읽었다. 남자의 마음을 바꾸게 한 것은 어느 식당 주인 덕분이었다. 배가 고팠던 남자는 눈에 보이는 아무 식당에 들어가 김치찌개를 시켜 먹었다. 테이블이 몇 개 없는 작은 식당이었다. 남자는 공깃밥을 추가했다. 그러자, 계란프라이와 함께 밥이 나왔다. “계란은 서비스예요.” 밥을 다 먹은 남자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가게 주인에게 고추볶음을 좀더 달라고 말을 했다. 주인이 주방으로 들어간 사이 남자는 도망을 쳤다. 가게 문에 달린 종에서 땡그랑, 소리가 났는데 그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렸다. 도망을 가는 남자의 등에 대고 가게 주인이 소리쳤다. “성공하면 갚아.” 고모는 그 이야기를 외할머니에게 들려주었다. “그 남자는 서른 개가 넘는 체인점을 지닌 식당 사장이 되었어요. 김치찌개가 먹고 싶은 날이면 어김없이 그 가게를 찾아간다네요. 물론 공깃밥도 추가해 먹고요.” 외할머니는 고모에게 그런 이야기라면 가게에 앉아서 수도 없이 들을 수 있다고 말을 했다. “그러니까요.” 고모가 얼른 말을 받았다. “저도 그런 가게 주인이 되고 싶어요.” 외할머니는 무릎을 주무르면서 생각했다. 김치찌개니까 공짜로 주지. 족발을 어떻게 공짜로 줘. 외할머니는 나도 한 달에 쌀 한 가마니씩 기부를 한다오, 하고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거지들이 찾아오면 콩나물국에 밥을 한 그릇씩 대접하곤 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딸 힘들게 하지 말고, 가게를 두 배로 늘려놓아야 해.” 할머니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