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외할머니는 깁스를 풀고, 세 달이나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무릎을 굽힐 때마다 통증이 찾아왔다. 퀴즈 대회에서 탈락한 할머니가 속이 곯은 참외를 사온 어머니를 구박하는 것을 본 어느 날, 외할머니는 내가 왜 우리 집을 놔두고 여기에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참외를 바꿔오라고 했고, 그날따라 손님이 많아서 세수할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은 어머니는 그냥 버리라고 했다. “이 아까운 걸. 얼마주고 샀는데?” 할머니가 물었다. 어머니는 제가 택시 한 번 안 타면 돼요, 하고 말했다. 할머니는 참외의 속을 긁어냈다. “내가 다 먹으마. 돈 버는 너는 쉬어라.” 할머니는 정말 참외를 다 먹었고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할머니는 화장실을 갈 때마다 외할머니의 발을 밟았다. 그때마다 외할머니는 ‘엄마. 불 끄고 자요.’ 라고 스위치 옆에 낙서가 되어 있는 안방과 큰맘먹고 산 거위털 이불이 그리워졌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외할머니는 할머니에게 이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을 했다. “왜요. 나 때문이에요?” 할머니는 혹시 실수를 한 게 있는지를 생각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일이 없었다. 며칠 전에 둘이 화투를 쳤는데 할머니가 돈을 삼만이천원이나 땄다. 할머니는 차마 그 일 때문에 그러느냐고 묻지 못했다. 외할머니는 늦잠을 자는 어머니를 깨우지 않고, 처음 왔을 때처럼, 가방에 옷을 담았다. 할머니가 가방을 싸는 외할머니의 등을 보았다. “사돈!” 할머니가 외할머니를 불렀다. 외할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언제든지 다시 오고 싶으면 와요. 특히, 등에 파스를 붙여야 하는 날에는 꼭.” 외할머니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한기가 느껴졌고 그래서 외할머니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싱크대 위에는 썩은 사과가 하나 놓여 있었다. 외할머니는 사과를 손가락으로 찔러보았다. “망할 년.” 외할머니는 어머니 욕을 했다.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씩 들러 청소를 하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외할머니는 보일러를 틀었다. 그리고 거위털 이불을 덮고 자리에 누웠다. 역시 내 집이 최고야,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하룻밤을 자고 나자, 외할머니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심심해, 라고 중얼거린 뒤에 외할머니는 깜짝 놀랐다. 그 말은 평상에 앉아서 마당에 널린 빨래의 그림자가 길어지는 것을 보던 아홉 살 무렵에 써보고는 그후로 한 번도 말해본 적이 없는 단어였다. 된장찌개를 끓이려고 냉장고를 열어봤더니 썩은 양파와 시든 호박이 하나 보였다. 외할머니는 지갑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양파와 호박 그리고 버섯을 샀다. 집으로 돌아온 외할머니는 멸치 육수를 냈다. 쌀통에는 쌀벌레가 가득했다. 쌀보다 쌀벌레가 더 많은 것처럼 보였다. 외할머니는 다시 지갑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즉석밥을 두 개 사고 두부도 한 모 샀다. 계단을 오를 때 무릎에 통증이 느껴졌다. 외할머니는 이층에서 한 번, 삼층에서 한 번, 걷는 것을 멈추어야 했다. 무릎 사이에 바늘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간신히 집에 도착해보니 끓는 물이 넘치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불을 줄이고 냄비 뚜껑을 열었다. 육수는 다 졸아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시 물을 붓고 된장을 풀었다. 그리고 썰어놓은 야채들을 넣었다. 된장이 다 끓자 외할머니는 전자레인지에 즉석밥을 데웠다. 식탁에 밥과 찌개를 올려놓았다. 다른 반찬은 없었다. 외할머니는 오늘 찌개는 어때? 짜요? 하고 묻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듯했다. 된장찌개는 맛이 없었다. 된장찌개를 한 숟가락 떠먹은 후에야 외할머니는 찌개를 끓이는 동안, 한 번도 간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도 먹을 만하네.” 외할머니는 중얼거렸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다가 외할머니는 싱크대 위에 놓인 검은 봉지를 보았다. 그것은 두부였다. 두부도 안 넣다니. 외할머니는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깼다. 깨진 그릇을 개수대 안에 그대로 둔 채 외할머니는 고무장갑을 벗었다. 외할머니는 설거지를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생각했다. 내일 슈퍼마켓에 가서 일회용 접시들을 사야겠어, 하고 외할머니는 다짐했다. 외할머니는 다시 방으로 가서 거위털 이불을 덮고 자리에 누웠다. 무릎이 시큰거렸다.
하지만, 하룻밤을 자고 나자, 외할머니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심심해, 라고 중얼거린 뒤에 외할머니는 깜짝 놀랐다. 그 말은 평상에 앉아서 마당에 널린 빨래의 그림자가 길어지는 것을 보던 아홉 살 무렵에 써보고는 그후로 한 번도 말해본 적이 없는 단어였다. 된장찌개를 끓이려고 냉장고를 열어봤더니 썩은 양파와 시든 호박이 하나 보였다. 외할머니는 지갑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양파와 호박 그리고 버섯을 샀다. 집으로 돌아온 외할머니는 멸치 육수를 냈다. 쌀통에는 쌀벌레가 가득했다. 쌀보다 쌀벌레가 더 많은 것처럼 보였다. 외할머니는 다시 지갑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즉석밥을 두 개 사고 두부도 한 모 샀다. 계단을 오를 때 무릎에 통증이 느껴졌다. 외할머니는 이층에서 한 번, 삼층에서 한 번, 걷는 것을 멈추어야 했다. 무릎 사이에 바늘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간신히 집에 도착해보니 끓는 물이 넘치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불을 줄이고 냄비 뚜껑을 열었다. 육수는 다 졸아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시 물을 붓고 된장을 풀었다. 그리고 썰어놓은 야채들을 넣었다. 된장이 다 끓자 외할머니는 전자레인지에 즉석밥을 데웠다. 식탁에 밥과 찌개를 올려놓았다. 다른 반찬은 없었다. 외할머니는 오늘 찌개는 어때? 짜요? 하고 묻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듯했다. 된장찌개는 맛이 없었다. 된장찌개를 한 숟가락 떠먹은 후에야 외할머니는 찌개를 끓이는 동안, 한 번도 간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도 먹을 만하네.” 외할머니는 중얼거렸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다가 외할머니는 싱크대 위에 놓인 검은 봉지를 보았다. 그것은 두부였다. 두부도 안 넣다니. 외할머니는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깼다. 깨진 그릇을 개수대 안에 그대로 둔 채 외할머니는 고무장갑을 벗었다. 외할머니는 설거지를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생각했다. 내일 슈퍼마켓에 가서 일회용 접시들을 사야겠어, 하고 외할머니는 다짐했다. 외할머니는 다시 방으로 가서 거위털 이불을 덮고 자리에 누웠다. 무릎이 시큰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