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화가 모두 끝난 뒤에도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할머니는 거실에 있는 삼십이 인치 텔레비전을 떠올렸다. 고모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새로 산 텔레비전이었다. 교육방송으로 과외공부를 해야 한다며, 학원을 다니는 것보다도 그게 더 경제적이라며, 고모는 할머니를 한 달이나 졸랐다. “지금 텔레비전은 너무 작아 글씨가 잘 안 보인단 말이야.” 고모는 말했다. 하지만 고모는 교육방송을 보는 척하면서 드라마를 보았고 그 사실을 몰랐던 할머니는 열두 달 동안이나 할부 값을 갚았다. “텔레비전이 너무 작아.” 할머니는 괜찮다며 위로를 하는 우리들에게 말했다. “아홉 명이라니. 그렇게 많으니, 우리 집처럼 작은 텔레비전으로는 안 보인 거야.” 외할머니는 맞아요, 텔레비전 탓이에요, 하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대기실을 정리하던 작가가 피식, 하고 웃었다. “아가씨, 뭐가 웃겨?” 할머니가 예선전을 통과했고 삼 주 후에 출연하게 될 것이라고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해준 작가였다. 할머니는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작가는 퀴즈 프로그램을 하기 전에 세상의 기인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했었는데, 거기에서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자기 뜻대로 번개를 치게 할 수 있다는 남자 때문에 북한산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산 정상에 서서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향해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던 남자는 결국 비가 오는 날 다시 만나면 안 될까요, 하고 말했다. 한번은 네 발로만 걷는다는 사내를 촬영했는데, 방송이 나가고 난 뒤 사내는 두 발로 걷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시청자 제보가 들어왔다. 열 건의 제보 중에서 거의 아홉 건이 거짓이었다. 거짓을 밝혀내는 일을 오랫동안 하다보니 작가는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을 비웃는 버릇이 생겼다. 작가는 할머니에게 사과를 했다. “나는 예선전에서 2등을 했던 사람이라고.”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는 작가에게 맞히지 못한 나머지 문제들을 보여달라고 부탁을 했다. 만약 그 문제를 끝까지 풀지 못하면 억울해하지 않을 거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오늘 풀지 않은 문제들은 다음에 써야 해요.” 작가가 안 된다고 하자 할머니는 그럼 한 번만 더 출연을 하게 해달라고 했다. 작가는 한숨을 쉬더니, 그럼 문제를 보여드리죠, 하고 말했다.
할머니는 아홉번째 문제까지 단번에 답을 맞혔다. 그때마다 작은삼촌은 아깝다, 라고 중얼거렸다. 찬스 문제의 보너스 상품이 식기세척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고모는 별로 갖고 싶지 않은 상품이었다는 사실에 약간의 위로를 받았다. 할머니가 첫번째 문제를 틀린 이유는 어쩌면 사회자의 말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사회자는 첫번째 문제를 제출하면서 누구나 풀 수 있는, 선물로 내드리는, 첫번째 문제입니다, 하고 말을 했다. 오 년 동안 멘트는 변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한 번도 첫번째 문제를 주의 깊게 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는 늘 두번째 문제부터 집중해서 문제를 풀었다. 드디어 마지막 열번째 문제였다.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할머니, 이것도 아는 문제야?” 내가 물었다. 할머니가 돋보기를 벗어 탁자에 내려놓고는 두 눈을 손바닥으로 비볐다.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할머니가 말했다.
대기실을 나오기 직전 작은삼촌은 작가에게 무엇인가를 물어보았다. 수첩에 메모를 하는 작은삼촌을 보면서 고모는 전호번호 물어보는 거 아니야? 하고 할머니에게 귓속말을 했다. “너무 말랐어.” 할머니는 만약 작은삼촌이 작가와 사귀게 된다면 어떻게든 졸라서 다시 한번 출연을 하리라고 생각했다. 방송국을 나온 삼촌이 수첩을 꺼내들고 앞장서서 길을 걸었다. “뭐야?” 고모가 물었다. “약도. 그 작가분이 맛있는 집을 알려줬어.” 우리들은 약도를 따라 골목길을 걸었다. 우회전을 두 번 하고, 좌회전을 한 번 하고, 다시 우회전을 하니 돼지갈빗집이 나왔다. “오늘은 내가 쏠게.” 작은삼촌이 말했다. 언제는 안 그랬나, 라고 고모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말은 아버지의 귀에 들렸다. “책이 거의 완성되어가.” 아버지는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다. 고기를 구우면서 작은삼촌이 물었다. “그런데 마지막 문제는 아는 문제였어요? 모르는 문제였어요?” 할머니는 그게 뭐가 중요해, 하고 대답했다. 고모가 할머니의 옷에 묻은 고추장을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엄마, 새옷인데 깨끗이 입어.” 일곱 명이 십오 인분의 돼지갈비를 먹었고, 후식으로 나온 수정과를 두 잔씩 마셨다.
할머니는 아홉번째 문제까지 단번에 답을 맞혔다. 그때마다 작은삼촌은 아깝다, 라고 중얼거렸다. 찬스 문제의 보너스 상품이 식기세척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고모는 별로 갖고 싶지 않은 상품이었다는 사실에 약간의 위로를 받았다. 할머니가 첫번째 문제를 틀린 이유는 어쩌면 사회자의 말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사회자는 첫번째 문제를 제출하면서 누구나 풀 수 있는, 선물로 내드리는, 첫번째 문제입니다, 하고 말을 했다. 오 년 동안 멘트는 변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한 번도 첫번째 문제를 주의 깊게 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는 늘 두번째 문제부터 집중해서 문제를 풀었다. 드디어 마지막 열번째 문제였다.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할머니, 이것도 아는 문제야?” 내가 물었다. 할머니가 돋보기를 벗어 탁자에 내려놓고는 두 눈을 손바닥으로 비볐다.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할머니가 말했다.
대기실을 나오기 직전 작은삼촌은 작가에게 무엇인가를 물어보았다. 수첩에 메모를 하는 작은삼촌을 보면서 고모는 전호번호 물어보는 거 아니야? 하고 할머니에게 귓속말을 했다. “너무 말랐어.” 할머니는 만약 작은삼촌이 작가와 사귀게 된다면 어떻게든 졸라서 다시 한번 출연을 하리라고 생각했다. 방송국을 나온 삼촌이 수첩을 꺼내들고 앞장서서 길을 걸었다. “뭐야?” 고모가 물었다. “약도. 그 작가분이 맛있는 집을 알려줬어.” 우리들은 약도를 따라 골목길을 걸었다. 우회전을 두 번 하고, 좌회전을 한 번 하고, 다시 우회전을 하니 돼지갈빗집이 나왔다. “오늘은 내가 쏠게.” 작은삼촌이 말했다. 언제는 안 그랬나, 라고 고모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말은 아버지의 귀에 들렸다. “책이 거의 완성되어가.” 아버지는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다. 고기를 구우면서 작은삼촌이 물었다. “그런데 마지막 문제는 아는 문제였어요? 모르는 문제였어요?” 할머니는 그게 뭐가 중요해, 하고 대답했다. 고모가 할머니의 옷에 묻은 고추장을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엄마, 새옷인데 깨끗이 입어.” 일곱 명이 십오 인분의 돼지갈비를 먹었고, 후식으로 나온 수정과를 두 잔씩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