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고모가 사준 옷이 꽉 껴서 숨을 쉴 때마다 배에 힘을 주어야만 했다.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는 단추를 하나 풀었고, 아버지가 건네준 우황청심환을 먹었다. 집에 도둑이 들었을 때도 먹지 않던 우황청심환이었다. 할머니는 잠을 자다 말고 중간에 화장실을 가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자기 전에 늘 거실 바닥을 깨끗이 정리해두곤 했다. 내 장난감 자동차를 밟아서 뒤꿈치에 피가 난 적도 있었고, 리모컨을 밟는 바람에 텔레비전이 켜져 놀란 적도 있었다. 도둑이 들던 날도 화장실 때문에 새벽 세시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은 불이 켜진 채 문이 열려 있어서 더듬거리며 걷지 않아도 되었다. 할머니는 화장실에서 나와 검은콩을 보리차와 함께 넣고 끓인 물을 컵에 따랐다. 그때였다. 현관에서 잠금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발뒤꿈치를 들고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천천히 문이 열리더니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할머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몇 초 동안 서로를 노려보다가 남자가 천천히 문을 닫았다. 마당을 가로질러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할머니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달았다. 할머니는 뒤늦게 현관을 향해 들고 있던 컵을 던졌다. 현관 유리가 깨졌고, 그 소리에 놀라, 온 식구들이 나왔다. “무슨 일이야.” 할아버지가 말했다. 할머니는 도둑이 들었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깨진 현관 유리가 아까웠고, 또 그걸 가지고 할아버지가 잔소리를 할까봐 거짓말을 했다. “그 놈이 날 덮치려 하잖아. 그래서……” 작은삼촌은 깨진 유리들을 치웠다. 잔은 놀랍게도 손잡이만 떨어졌을 뿐 깨지지 않았다. “내가 이 컵으로 도둑의 얼굴을 맞혔어. 피가 났다고.” 할머니는 손잡이를 본드로 붙인 컵을 볼 때마다 말했다. 스태프가 대기실 문을 열고는 다음 출연자 대기해주세요, 하고 말했다. 할머니는 허공에 대고 숨을 쉬어보았다. 우황청심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물을 마시고 또 마셨다. 마시면서 퀴즈를 풀다 오줌이 마려우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했다.
고모는 맨 앞줄에 앉아야 한다고 우겼다. 작은삼촌은 그러면 텔레비전에 얼굴이 나올지도 모른다며 세번째 줄에 앉자고 했다. “왜, 누구 돈이라도 떼먹었어?” 고모가 농담을 했다. “옛 애인들이 보고 그리워할까봐.” 작은삼촌이 말했다. 응원석에 도착해보니 맨 앞줄만 빼고 빈자리가 없었다. 모두들 작은 플래카드를 하나둘씩 들고 앉아 있었다. 첫번째 도전자는 아이들과 부인이 캐나다에 있다는 가장이었다. “어떨 때 가족이 보고 싶으세요?” 사회자가 물었다. “오늘 아침에 옷을 입다가 바지에 발가락이 걸려 넘어졌는데 괜히 눈물이 나더라고요.” 첫번째 도전자는 말했다. 작은삼촌은 문지방에 부딪혀서 엄지발가락에 피멍이 들었던 때나 샤워를 하다가 비누를 밟아 넘어졌던 때를 생각했다. 괜히 엄살이 부리고 싶어졌다. 누군가에게 엄살을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작은삼촌은 진지하게 결혼에 대해 고민을 했다. 카메라가 응원석을 비출 때마다 작은삼촌은 플래카드를 들어 얼굴을 가렸다. 첫번째 도전자는 네번째 문제에서 탈락을 했다. 두번째 도전자는 주부였다. 병원에 입원한 딸에게 엄마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출연을 하게 되었다고 주부는 말했다. 나는 두번째 도전자가 오천만원의 상금을 탔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다가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행운은 그렇게 모든 사람에게 오지 않으니까. 주부는 일곱번째 문제까지 고민도 하지 않고 수월하게 맞혔다. 여덟번째 문제에서는 전화찬스를 사용했다. 주부는 병원에 입원한 딸에게 전화를 걸었고, 아파서 이 년이나 학교를 쉬었다는 딸은 문제를 맞히지 못했다. “몰라도 괜찮아.” 주부는 말했다. “그래도 찬스 문제를 맞혀서 냉장고를 받았어.” 고모는 할머니가 오천만원을 탈 수 없다면 적어도 상품이 걸린 찬스 문제만은 꼭 맞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상품이 동남아 여행권이라면 더더욱 좋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세번째로 할머니가 나왔다. 사회자는 공부를 하는 데 뭐가 가장 힘들었냐고 물었다. “책만 펼치면 졸린 거요. 앞으로 우리 손자한테는 공부하라고 잔소리하지 않을 거예요.” 고모가 날 보더니 너 좋겠다, 하고 말했다. 그때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말했다. “걱정 마요. 여기 잔소리할 엄마가 남아 있으니까.” 할머니가 손수건을 꺼내 손바닥을 닦았다. 그리고 버튼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요.” 사회자가 말했다. 첫번째 문제가 나왔다. ‘다음 중 소녀시대의 멤버는 모두 몇명일까요?’ 문제를 다 들은 할머니가 응원석 쪽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2번 아니면 3번일 것 같은데요.” 할머니가 말했다. 2번은 세 명이고 3번은 다섯 명이었다. 할머니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래도 확실히 1번은 아니야. 두 명이 답이라면 그건 너무 쉽잖아. “3번이요.” 할머니가 말했다. 퀴즈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오 년 동안 첫번째 문제에서 탈락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오십대 여자였는데 박찬호 선수의 등번호를 맞히지 못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첫번째 문제에서 탈락한 두번째 사람이 되었다.
고모는 맨 앞줄에 앉아야 한다고 우겼다. 작은삼촌은 그러면 텔레비전에 얼굴이 나올지도 모른다며 세번째 줄에 앉자고 했다. “왜, 누구 돈이라도 떼먹었어?” 고모가 농담을 했다. “옛 애인들이 보고 그리워할까봐.” 작은삼촌이 말했다. 응원석에 도착해보니 맨 앞줄만 빼고 빈자리가 없었다. 모두들 작은 플래카드를 하나둘씩 들고 앉아 있었다. 첫번째 도전자는 아이들과 부인이 캐나다에 있다는 가장이었다. “어떨 때 가족이 보고 싶으세요?” 사회자가 물었다. “오늘 아침에 옷을 입다가 바지에 발가락이 걸려 넘어졌는데 괜히 눈물이 나더라고요.” 첫번째 도전자는 말했다. 작은삼촌은 문지방에 부딪혀서 엄지발가락에 피멍이 들었던 때나 샤워를 하다가 비누를 밟아 넘어졌던 때를 생각했다. 괜히 엄살이 부리고 싶어졌다. 누군가에게 엄살을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작은삼촌은 진지하게 결혼에 대해 고민을 했다. 카메라가 응원석을 비출 때마다 작은삼촌은 플래카드를 들어 얼굴을 가렸다. 첫번째 도전자는 네번째 문제에서 탈락을 했다. 두번째 도전자는 주부였다. 병원에 입원한 딸에게 엄마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출연을 하게 되었다고 주부는 말했다. 나는 두번째 도전자가 오천만원의 상금을 탔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다가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행운은 그렇게 모든 사람에게 오지 않으니까. 주부는 일곱번째 문제까지 고민도 하지 않고 수월하게 맞혔다. 여덟번째 문제에서는 전화찬스를 사용했다. 주부는 병원에 입원한 딸에게 전화를 걸었고, 아파서 이 년이나 학교를 쉬었다는 딸은 문제를 맞히지 못했다. “몰라도 괜찮아.” 주부는 말했다. “그래도 찬스 문제를 맞혀서 냉장고를 받았어.” 고모는 할머니가 오천만원을 탈 수 없다면 적어도 상품이 걸린 찬스 문제만은 꼭 맞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상품이 동남아 여행권이라면 더더욱 좋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세번째로 할머니가 나왔다. 사회자는 공부를 하는 데 뭐가 가장 힘들었냐고 물었다. “책만 펼치면 졸린 거요. 앞으로 우리 손자한테는 공부하라고 잔소리하지 않을 거예요.” 고모가 날 보더니 너 좋겠다, 하고 말했다. 그때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말했다. “걱정 마요. 여기 잔소리할 엄마가 남아 있으니까.” 할머니가 손수건을 꺼내 손바닥을 닦았다. 그리고 버튼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요.” 사회자가 말했다. 첫번째 문제가 나왔다. ‘다음 중 소녀시대의 멤버는 모두 몇명일까요?’ 문제를 다 들은 할머니가 응원석 쪽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2번 아니면 3번일 것 같은데요.” 할머니가 말했다. 2번은 세 명이고 3번은 다섯 명이었다. 할머니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래도 확실히 1번은 아니야. 두 명이 답이라면 그건 너무 쉽잖아. “3번이요.” 할머니가 말했다. 퀴즈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오 년 동안 첫번째 문제에서 탈락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오십대 여자였는데 박찬호 선수의 등번호를 맞히지 못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첫번째 문제에서 탈락한 두번째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