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는 고등학교 동창들과 두 달에 한 번씩 모여 저녁을 먹었다. 모임을 만든 것은 삼 년 전쯤이었다. 고등학교 삼학년 때 짝이었던 친구의 결혼식을 갔다가 고모는 삼학년 이반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결혼식이 끝난 뒤, 뒤풀이는 자연스럽게 동창 모임으로 이어졌다. 1차로 예식장 근처의 호프집에서 맥주를 한잔했다. 그때 누군가가, 고모에 기억에 의하면 영어선생님의 팔자걸음을 곧잘 흉내내던 아이가, 가까운 곳에 자기 단골집이 있다면서 2차를 하자고 했다. 시댁에 가야 한다고 한 사람이 빠지고 나머지는 그 동창을 따라갔다. 그곳은 단골집이 아니라 본인이 경영하는 술집이었다. 서비스라며 양주 한 병을 내왔다. 모두들 취했고 누군가 술집을 하는 친구를 붙잡고 울었다. “니가 이렇게 잘 살고 있다니 기쁘다.” 술값이 꽤 많이 나왔고 부반장을 했던 동창이 인원수대로 나누어서 돈을 걷었다. “커피나 한잔하자.” 술집에서 나오자 한 동창이 말했다. 저녁밥을 차려야 한다며 몇몇 동창들이 서둘러 돌아갔다. 커피를 마시며 모두들 술집을 하는 동창의 욕을 했다. “계산서 봤어? 한 푼도 안 깎아줬어.” “어떻게 거길 데려갈 생각을 하니. 독하다. 하나도 안 변했어.” “양주도 뚜껑이 따 있었어. 손님이 먹다 남긴 거 아닐까.” 그때, 술자리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던 동창 한 명이 말했다. “난 솔직히 걔가 누구인지 생각이 안 나.” 커피를 마시다보니 술이 깼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맥주를 한잔 더 하기로 했다. 맥주를 마시는데 여기저기서 전화가 울려댔다. 남편의 전화를 받은 친구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혼식 뷔페에서 점심을 먹은 지 열두 시간이 지났고, 결국, 술집에는 네 명의 동창만이 남았다. 네 명은 그날 결혼식 축의금보다 더 많은 돈을 술값으로 썼다. 헤어지면서 그들은 서로에게 진작 널 알았으면 좋았을걸, 하고 말했다. 한 친구는 고모에게 미안한데 니 이름이 뭐더라, 하고 묻기도 했다. 네 명은 주말이면 잠옷을 입은 채로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지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것과 공포영화라면 질색을 하는 것도 똑같았다. 넷은 두 달에 한 번씩 만나 낙지볶음에 소주를 마셨고 드라마 줄거리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네 명 중에서 봄에 생일인 사람이 세 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4월 모임에는 늘 세 명의 생일파티를 같이 했다. 낙지볶음 대신 매운 갈비찜을 먹었고,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서로에게 했고, 선물은 주고받지 않았다. 갈비찜 양념에 밥을 비벼 먹으면서 고모는 우리 엄마는 지금 퀴즈 대회에 나가려고 공부중이야, 하고 말했다. “우리 엄마는 우울증을 앓고 있어.” “멋지다. 우리도 나가볼까. 상금은 무조건 나누기.” “차라리, 복권을 사.” 고모는 친구들에게 어째서 할머니가 퀴즈 대회에 나가게 되었는지를 말해주었다. 이야기 도중에 자연스럽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야기가 나왔고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섭섭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친구들이건만 정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왜 그랬어.” “어쩌면 그러니. 우린 밤이라도 새워줄 친구들인데.” 고모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대신 친구들의 잔에 술을 한잔씩 따랐다. “인라인스케이트라도 배울까봐.” “난 등산을 할까 해. 『한국의 명산』이란 책도 샀어.” “다시 대학이라도 들어갈까.” “선이라도 볼래. 그럼 엄마 우울증이 나아질까.” “벌써부터 무릎이 아파.” 넷은 해파리 무침을 안주 삼아 소주 한 병을 더 마셨다. 그리고 평소처럼 커피 한잔도 하지 않고, 맥주로 입가심도 하지 않고, 헤어졌다. 월요일이 되었고, 고모는 출근을 하자마자 부장에게 빌려준 돈 십만원을 받아냈다. 고모는 같은 부서 사람들에게 점심으로 해물탕을 샀고, 옆자리 직원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었다. 고모의 오른쪽에 앉은 직원은 주말이면 테니스를 친다고 말을 했고, 왼쪽에 앉은 직원은 오 년 후에 빵집을 차릴 생각으로 제빵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말을 했다. 고모는 오 년 후에 나는 에베레스트 산에 갈 거예요, 하고 속삭였다. 그리고 고모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할머니는 하루에 백 개 이상의 단어들을 외우는 데 온 정신을 쏟아붓는 바람에, 고모가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고모는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아침을 먹었고 똑같은 시간에 집을 나섰다. 하지만 평소의 할머니라면 알아차렸을 것이다. 고모는 늘 립스틱을 바른 채로 밥을 먹었다. 그래서 고모가 출근을 하고 난 뒤 식탁에는 립스틱 자국이 묻어 있는 물컵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고모가 회사를 그만둔 뒤로 더이상 물컵에는 립스틱 자국이 남지 않았다. 할머니는 IMF나 OECD 같은 답을 맞히는 문제를 가장 어려워했다. “영어는 당최 못 맞추겠어. ISO는 뭐고 IOC 뭐야.” “맞아요. 안 헷갈리는 사람이 이상한 거죠.” 외할머니가 맞장구를 쳤다. 작은삼촌은 그런 할머니를 위해서 그럼 그냥 길게 이름을 외우세요, 하고 충고를 해주었다. ISO 대신 국제표준화기구라고 외웠고, IOC 대신 국제올림픽위원회라고 외웠다. “훨씬 쉽다.” 할머니가 말했다. 마침내, 일곱 권의 상식 문제집을 모두 외웠고, 할머니는 퀴즈 프로그램의 예선전에 응모를 했다. 신청자 백 명 중에서 이등을 했다. 고모는 한 달에 십만원씩 붓던 적금을 해약해서 할머니에게 옷을 사드렸다. “회사에서 보너스가 나왔어요.” 고모는 옷을 사지 않겠다는 할머니에게 거짓말을 했다. 나는 플래카드를 만들었고, 작은삼촌은 월차를 냈다. 방송국으로 가는 길에 고모는 할머니가 우승을 하게 되면 그때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그 옆에서 작은삼촌은 그 돈으로 차를 사리라고 결심을 했다.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드릴 우황청심환을 만지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