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손님들에게 주인 바뀌었어요? 하는 이야기를 수십 번도 더 들었다. 어떤 손님은 문을 열었다가, 주방에서 어머니가 나오는 걸 보고는 다시 문을 닫고 나가기도 했다. 처음에는 딸이에요, 하고 대답했다가, 나중에는 내키는 대로 대답했다. 새로 가게를 인수한 주인이라고 했다가, 가게 주인에게 빚을 못 갚아 대신 일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가, 분점을 내기 위해 음식 비결을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어머니의 거짓말에 속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혹시, 딸 아니에요?” 손님들은 영락없이 물었다. 외할머니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던 어머니는 손님들이 어떻게 해서 딸이라는 것을 아는지 궁금했다. 어머니는 몰랐지만, 눈 밑에 주름이 늘면서 어머니는 점점 외할머니를 닮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무엇엔가 집중할 때 자신도 모르게 입을 실룩거리는 버릇이 똑같았다. 외할머니의 가게에 이십오 년째 단골인 손님은, 족발을 썰 때나 음식 값을 계산할 때의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처음 외할머니의 가게에 오던 그날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때, 회사 동료들과 삼차를 왔었다. 월급은 네 달째 밀려 있었고, 장난꾸러기 막내아들은 동네 유리창을 깨고 다녔다. 유리창을 갈아주고 나면 일주일 내내 콩나물국만 먹어야 했다. 술을 먹고 남자는 동료들에게 막내아들이 깬 유리창이 일 년에 스무 개도 넘었다며 투정을 부렸다. 동료 중 누군가가 회사 복사기라도 훔쳐다가 팔자고 제안을 했다. “좋아.” 그들은 건배를 했다. 누군가 돼지발톱을 보고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 발 좀 봐. 정말 웃기게 생겼어.” 다른 사람들도 돼지발가락을 보고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계산대에 앉아서 공부를 하던 어머니는 술에 취해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하는 남자들이 낄낄거리며 웃는 것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게 그렇게 웃긴가. 죽기 전까지 자기 똥을 밟고 있던 발가락인데.”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그 소리가 남자의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그후로 이십오 년을 외할머니의 가게에 드나들던 남자는 단번에 어머니가 그때 그 딸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많이 컸어요.” 계산을 하면서 남자는 거스름돈을 받지 않았다.
어머니는 여행지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누구에게든 들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외할머니의 가게로 오는 손님들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었다. 혼자 온 사람들은 벽을 보고 이야기를 했고, 둘, 셋씩 온 사람들은 서로의 잔을 보고 이야기를 했다. 주방의 간이의자에 앉아서 공중에 떠도는 말들을 듣다보면 지구 저편의 낯선 언어처럼 들렸다. 눈을 감고, 귀에 들리는 단어들을 모아, 어머니는 문장을 만들었다. 어떤 날은 손님들 모두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날도 있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테이블에 앉아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자신이 얼마나 시시하게 느껴질까. 어머니는 생각했다. 어떤 날은 지구 저편을 헤맬 때 듣고 보았던 그런 기적 같은 이야기를 듣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의 자리에 합석을 하고 싶어졌다. 우리 엄마는 수십 년을 이곳에 앉아 있었구나. 어머니는 군데군데 타일이 떨어져나간 주방을 보며 생각했다. 어머니가 어깨에 멍이 들 정도로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지구를 헤맬 동안, 외할머니는 주방 간이의자에 앉아서 어머니가 보았던 이야기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외할머니의 낡은 연립은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깁스를 하고 계단을 오를 수가 없던 외할머니는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불편해서 싫다.” 외할머니는 목발을 짚고 천천히 계단을 오르내리면 된다고 우겼지만 이층까지 올라가다가 아버지의 등에 업히고야 말았다. “매일 이렇게 업힐 수도 없잖아요?” 아버지의 말에 외할머니는 그럼 깁스를 풀 동안이다, 하고 말을 했다. 아버지는 당분간 나와 함께 지내겠다고 말을 했다. “장모님이 이 사람하고 같이 방을 쓰세요.” 그 말을 들은 할머니가 사돈은 나와 함께 있으면 어떻겠어요? 하고 말을 했다. 할머니는 당신의 방이 우리 집에서 가장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할머니가 외할머니와 같은 방을 쓰려는 것은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잠을 자다가 새벽에 깼다. 그러면 어디선가 희미하게 할아버지의 냄새가 나는 듯했고, 그 냄새가 정확히 어떤 냄새인지 기억을 하려고 몸을 뒤척이다가, 날이 밝았다. 외할머니의 몸에서는 한약 달인 냄새가 났는데, 할머니는 그 냄새를 맡는 순간, 새벽마다 느껴지는 할아버지의 냄새가 잊힐 것만 같았다. 외할머니와 같이 잠이 들던 날 할머니는 오랜만에 푹 잠을 잤다. 하지만 할머니의 예상처럼 외할머니의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이 아니었다. 외할머니의 코 고는 소리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평생 할아버지의 코골이에 맞춰 잠을 잤고 오랜만에 그 소리를 듣자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외할머니와 같은 방을 쓰는 동안,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늘 편안한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