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옆 침대에는 물에 빠져 의식을 잃은 청년이 누워 있었다.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술을 먹다 갑자기 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삼겹살을 구워먹던 청년들은 아무도 수영을 할 줄 몰랐다. 그들은 고등학교 동창이었는데, 운동장 한 바퀴도 제대로 뛰지 못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교장선생님이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프 마라톤대회를 개최했을 때 만났다. 아침 조회시간에 교장은 우승을 한 사람에게 특별 선물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 선물이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과 급식비 면제였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열심히 했을 테고, 그러면 서로 친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암튼, 그들은 그날 그 마라톤대회에서 꼴찌를 했다. 자신이 꼴찌라고 생각한 청년이 달리는 것을 포기하고 보도블록에 앉아서 개미들이 어디론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때 경보 경기를 하는 선수처럼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한 청년이 걸어왔다. “넌 안 뛰어?” 개미를 보던 청년이 난 내가 꼴찌인 줄 알았는데 너구나, 하고 말했다. “아니야, 내 뒤로 세 명이나 더 있어.” 두 청년은 나머지 세 명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결승지점까지 가려면 십삼 킬로미터는 더 뛰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했고, 누군가 우리 학교 운동장으로 치면 스물일곱 바퀴야, 하고 말했다. 그들은 이름을 빼고는 모든 걸 속여 자신을 소개했다. “난 여동생이 있어. 중학생인데 전교 일등이지.” “이건 비밀인데, 우리 할아버지는 유명한 정치인이야. 아버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 발칵 뒤집힐 거야.” “난 어릴 때 전기에 감전된 적이 있어. 그 뒤로 심장이 나빠져서 달리기를 하면 안 돼.” “형과 나는 어머니가 달라. 그래도 우리 둘은 똑같이 생겼어. 쌍둥이처럼.” 십삼 킬로미터를 걸어서 결승지점에 도착했을 때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빈 물병만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그 물병들을 뒤져 물이 남아 있는지를 살폈다. 물병에 남은 물들을 모으니 물통 두 개를 채울 수 있었다. 누군가 먹다 남은 종이컵에 물을 다섯 잔 따랐다. “건배.” 그날 이후로, 그들은, 늘 그렇게 둥그렇게 모여 앉아 술을 마셨다. 친구가 물에 빠졌을 때 그들은 아무도 물로 뛰어들지 못했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들이 달리기 말고도 못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 그들은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어서 밧줄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는 친구의 머리맡에 수영장 등록증을 붙였다. “어제 등록을 했어. 네가 퇴원을 할 때쯤이면 우린 모두 물개가 되어 있을 거야.” 그들은 과장되게 웃었고, 아무도 웃지 않는 중환자실에서 그 웃음소리는 너무나 기괴하게 들렸다. 그들은 할아버지의 침대 머리맡에 붙어 있는 편지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나는 화장실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인삼 한 박스를 병원으로 보내준 그 아이에 대해. 편지 옆에는 사탕들이 하트 모양으로 붙어 있었다. “저 사탕은 뭐니?” 한 청년이 물었다. “저건 할아버지가 구해준 아이가 병문안을 올 때 붙인 거예요. 꽃다발을 선물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 생각해낸 거래요. 할아버지는 그 아이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았어요.” 나는 할아버지가 깨어나면 그 범인을 잡을 것이라고 말을 했다. 할아버지는 경찰을 도와 몽타주를 만들 것이고, 그러면, 누군가 그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이 제보를 할 것이다. 청년은 할아버지의 머리맡에 붙어 있는 편지와 사탕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블로그에 그 사진을 올려놓았다.
사람들이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병원 응급실로 편지가 배달된 것은 병원이 개원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병원 원장이 찾아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꼭 깨어나세요, 하고 말을 했다. 홍보과 직원이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다음 달, 사보에 내보낼 생각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이, 퇴원을 하는 사람들이, 혹은 누군가의 병문안을 온 사람들이 ‘할아버지 힘내세요!’ 하는 글을 적어 응급실 복도에 붙이기 시작했다. 소아병동에서 휠체어를 탄 아이들이 단체로 찾아와 복도에 사탕을 붙였다. 청소부 아주머니는 가끔 청소를 하다 힘이 들면 그 사탕을 몰래 먹곤 했다. 사탕을 먹은 후 사탕껍질 안에 휴지를 넣어두면 아무도 몰랐다. 병원에서 밥을 먹으면, 밥에서도 알코올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늘 소화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아이들의 사탕을 먹으니 만성 소화불량이 저절로 낫는 것 같았다. 청소 아주머니가 콧노래를 부르면서 응급실 복도를 닦고 있는 장면이 사람들에게 종종 목격되었고, 그걸 본 동료들은 혹시 늦바람이 난 건 아닌지 걱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