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바지주머니에는 천원짜리 세 장과 광고지를 잘라 만든 메모지가 들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신문 사이에 끼워져 오는 광고지를 여덟 등분으로 잘랐다. 할아버지는 스테이플러로 묶음을 만들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생각나는 것들을 적었다. 경찰은 할아버지가 남긴 메모들을 읽었다.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입니다. 둘 중 어느 것이 아침 인사로 좋을까?’ 할아버지가 경비로 취직을 했을 때를 생각하며 적은 메모였지만 경찰은 무심히 다음 장으로 넘겼다. ‘잇몸 피, 치약 교체.’ ‘무말랭이, 무국, 호박볶음, 꽈리고추볶음, 가지무침, 달걀말이.’ 어느 날, 식구들이 모두 밖에 나가고 아무도 없는 점심시간에 할아버지는 혼자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라면을 먹던 날이 생각났고, 그날 자기 혼자 라면을 먹을 때, 다른 식구들이 먹던 반찬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마치 식탁 위를 찍은 사진을 보는 것처럼. 가지무침에 고춧가루를 넣었는지 넣지 않았는지도 눈에 보였다. ‘세상이 공평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이런 문구도 적혀 있었는데, 그걸 읽은 경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섯번째 장에서 경찰은 전화번호를 하나 발견했다.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경찰은 전화를 걸어 거기가 어디입니까? 하고 물었다. 탐정만화를 보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경찰은 전화를 끊자마자 무엇인가 냄새가 나는데, 하고 중얼거렸다. 사고가 난 곳이 같은 아파트 상가인 것이 이상하다고, 이건 계획된 살인사건일지도 모른다고, 경찰은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선배 경찰이 뒤통수를 치면서 말했다. “이건 성추행사건이라니까. 할아버지 얼굴 사진 찍어서 얼른 경비실로 가.” 경찰은 휴대폰으로 할아버지의 얼굴을 찍었다.
경비실장이 각 경비초소에 전화를 해서 모두 모이라고 지시를 했다. 경찰은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혹시 아는 분이세요? 하고 물었다. 얼굴의 반이 붕대로 가려져 있는데다가, 휴대폰 화면이 너무 작아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때 새로 경비가 된 장씨가 거 휴대폰 좀 바꿔요,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경찰의 휴대폰을 빼앗더니 이것저것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장씨의 휴대폰이 울렸다. “내가 이 전화기로 사진을 옮겼어요. 좀 크게 보게.” 장씨가 휴대폰 액정 화면에 사진을 띄웠다. “난 모르는 사람 같은데.” “글쎄, 어디선가 본 적도 있고.” “혹시, 그 사람 아닌가. 저번에 박카스 한 박스 가지고 온 사람.” 박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닮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박씨에게 돋보기를 건네주었다. 돋보기를 쓰고, 다시, 사진을 들여다보던 박씨가 맞네, 맞아, 하고 중얼거렸다. 박씨가 달력 뒷장에 적어놓은 전화번호를 찾는 동안, 저녁밥을 지으면서 할머니는 이놈의 영감이 도대체 어디 간 거야, 하고 중얼거렸다. 압력밥솥에서 요란하게 김이 빠지는 소리가 들릴 때, 더 요란하게 전화기가 울려댔다.
할아버지의 사건은 저녁 뉴스에 방송되었다. 카메라가 상가 화장실을 보여주었는데 이미 핏자국은 지워진 뒤였다. 아이와 아이의 어머니의 모습은 모자이크 처리되었다. 음성이 변조된 목소리로 아이의 어머니가, 깨어나실 그때까지 기도를 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근 몇 달 동안 인근에서 비슷한 성추행사건이 일어났었는데 그와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고 발표를 했다. 하지만 범인은 CCTV가 없는 곳만을 골라 범행을 저질렀고, 그래서, 아직까지 범인의 얼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김 할아버지가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입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간호사 한 명이 매일같이 할아버지를 찾아와 손을 잡고는 꼭 일어나세요, 하고 말했다. 간호사는 어릴 적에 의붓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의붓아버지가 간암으로 죽었을 때 간호사는 울지 않았다. 병원으로 인삼이 한 박스 배달되기도 했다. 인삼을 배달한 사람은 두 달 전에 비슷한 사건을 당했던 딸의 아버지였다. “의사 선생님들. 이걸 드시고 기운내서 할아버지를 잘 치료해주세요. 그리고 할아버지 꼭 일어나세요.” 어린아이가 쓴 편지가 들어 있었다. 뉴스를 본 아이가 용기를 내어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약재상을 하는 아이의 아버지가 인삼 열 채를 상자에 담았다. 그리고 그 위에 아이가 쓴 편지를 올려놓았다. 나는 그 아이의 편지를 할아버지의 머리맡에 붙여주었다.
경비실장이 각 경비초소에 전화를 해서 모두 모이라고 지시를 했다. 경찰은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혹시 아는 분이세요? 하고 물었다. 얼굴의 반이 붕대로 가려져 있는데다가, 휴대폰 화면이 너무 작아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때 새로 경비가 된 장씨가 거 휴대폰 좀 바꿔요,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경찰의 휴대폰을 빼앗더니 이것저것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장씨의 휴대폰이 울렸다. “내가 이 전화기로 사진을 옮겼어요. 좀 크게 보게.” 장씨가 휴대폰 액정 화면에 사진을 띄웠다. “난 모르는 사람 같은데.” “글쎄, 어디선가 본 적도 있고.” “혹시, 그 사람 아닌가. 저번에 박카스 한 박스 가지고 온 사람.” 박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닮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박씨에게 돋보기를 건네주었다. 돋보기를 쓰고, 다시, 사진을 들여다보던 박씨가 맞네, 맞아, 하고 중얼거렸다. 박씨가 달력 뒷장에 적어놓은 전화번호를 찾는 동안, 저녁밥을 지으면서 할머니는 이놈의 영감이 도대체 어디 간 거야, 하고 중얼거렸다. 압력밥솥에서 요란하게 김이 빠지는 소리가 들릴 때, 더 요란하게 전화기가 울려댔다.
할아버지의 사건은 저녁 뉴스에 방송되었다. 카메라가 상가 화장실을 보여주었는데 이미 핏자국은 지워진 뒤였다. 아이와 아이의 어머니의 모습은 모자이크 처리되었다. 음성이 변조된 목소리로 아이의 어머니가, 깨어나실 그때까지 기도를 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근 몇 달 동안 인근에서 비슷한 성추행사건이 일어났었는데 그와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고 발표를 했다. 하지만 범인은 CCTV가 없는 곳만을 골라 범행을 저질렀고, 그래서, 아직까지 범인의 얼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김 할아버지가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입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간호사 한 명이 매일같이 할아버지를 찾아와 손을 잡고는 꼭 일어나세요, 하고 말했다. 간호사는 어릴 적에 의붓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의붓아버지가 간암으로 죽었을 때 간호사는 울지 않았다. 병원으로 인삼이 한 박스 배달되기도 했다. 인삼을 배달한 사람은 두 달 전에 비슷한 사건을 당했던 딸의 아버지였다. “의사 선생님들. 이걸 드시고 기운내서 할아버지를 잘 치료해주세요. 그리고 할아버지 꼭 일어나세요.” 어린아이가 쓴 편지가 들어 있었다. 뉴스를 본 아이가 용기를 내어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약재상을 하는 아이의 아버지가 인삼 열 채를 상자에 담았다. 그리고 그 위에 아이가 쓴 편지를 올려놓았다. 나는 그 아이의 편지를 할아버지의 머리맡에 붙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