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엄마는 찜질방에서 삶은 달걀을 여덟 개째 먹다가 전화를 받았다. 낯선 남자가 아이의 이름을 말하자 아이의 엄마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엇이든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고, 그래서 머릿속에 처음으로 든 생각은 유괴를 당했구나, 하는 거였다. 구급대원이 자초지종을 설명하기도 전에 아이의 엄마는 울며 애원했다. “제발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 같이 달걀을 먹던 여자들이 그 말을 듣고 놀라 아이의 엄마를 쳐다보았다. 수화기 저편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걱정 마세요. 아이는 아무 일 없어요.”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뒤, 구급대원은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는 엄마를 보고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아이의 엄마는 딸의 피멍이 든 손목을 보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고 말했다. 아이의 엄마는 그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점심으로 자장면을 시켜주었다. 아이는 가게에서 시켜먹는 자장면보다는 엄마가 끓여주는 자장라면을 더 좋아했다. 자장면은 불었고, 아이는 반쯤 먹다 남겼다. 아이를 피아노학원에 데려다주면서, 아이의 엄마는 학원 끝나면 혼자 집에 올 수 있지? 하고 물었다. 아이가 고개를 끄떡였다. 비밀번호는? 다시 묻자, 아이가 엄마의 귀에 대고 여덟 개의 숫자를 또박또박 말했다. “그런데 왜 상가에는 간 거야? 집에 안 가고?” 아이의 엄마는 어째서 딸이 상가에 갔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피아노 학원에서 113동으로 가는 길은 아파트 상가를 지나치지 않았다. 아이의 엄마는 딸의 손목을 가리키면서 누가 그랬어요? 하고 물었다. 구급대원은 잘 모르지만 우리들이 발견했을 때는 어떤 할아버지가 아이를 붙잡고 있었어요, 하고 대답했다.
아이의 엄마가 어떤 놈인지 얼굴이나 봐야겠어요, 하고 소리쳤다. “지금 수술중이에요.” 구급대원이 말했다. “손목에 상처라도 나면 가만 안 둘 거야.” 여자가 말했다. 그때였다. 아이가 울음을 멈춘 건. 아이가 울음을 멈추자, 찢어진 상처를 꿰매지 않겠다고 소리지르던 사람이 놀라 입을 다물었다. 응급실이 조용해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간호사가 찢어진 오른팔에 마취주사를 놓았다. “할아버지가 그런 게 아니야.” 아이가 말했다. 너무 울어서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수간호사가 아이에게 박하사탕을 건네주면서 잘했다, 하고 칭찬을 해주었다. 아이의 엄마는 피멍이 든 손목을 걱정했지만, 그 멍은 이 주일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쉰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는, 아이의 엄마도, 구급대원도, 응급실의 간호사들도, 몰랐다.
아이가 상가에 간 것은 1층과 2층 계단 사이에 그려진 낙서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물구나무를 선 사람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아이는 우울한 날이면, 상가에 가서, 그 그림을 보았다. 몸을 숙여 가랑이 사이로 그림을 보곤 했는데, 그러면 물구나무 선 사람들이 두 팔을 들고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은 상가 2층에 있는 태권도장에 다니는 청년이었다. 몇 년째 직장을 잡지 못한 청년은 어느 날 자신이 똑같은 잠옷을 삼 년째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청년은 태어나서 한 번도 팔씨름을 이겨보지 못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고등학교 다닐 적에 같은 반 아이에게 돈을 빼앗겼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때 당당하게 대들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비루한 인생을 살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청년은 어머니의 지갑에서 수표 한 장을 훔쳐서 태권도장으로 갔다. 청년은 언제나 비상계단을 이용했다. 중앙계단은 도복을 입은 초등학생들이 늘 오갔기 때문이었다. 가끔,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한 개비씩 피기도 했다. 그리고 담뱃불을 끄기 전에, 남아 있는 재로 계단 벽에 물구나무를 선 사람을 하나씩 그렸다. 나도 언젠가는 이단 옆차기를 할 수 있겠지, 하는 상상을 하면서. 아이가 그 그림을 발견한 것은 청년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일 년 반이나 지난 뒤였다. 물구나무를 선 사람은 다섯 명으로 늘었다. 할아버지가 아이를 화장실에서 구한 날, 아이는 늘 그랬던 것처럼, 가랑이 사이로 그림을 보고 있었다. “그때였어. 어떤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내 옆에 섰어.” 남자는 아이처럼 몸을 숙이고 가랑이 사이로 그림을 보았다. 아이에게 이렇게 보면 재미있니? 하고 물었다. 아이가 네, 하고 대답하니까 남자가 저기 저 끝에 있는 그려진 아이는 널 닮았구나, 하고 말했다.
거기까지 말을 하고 아이는 말을 멈추었다. 남자가 화장실에 끌고 간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망설여졌기 때문이었다. 구급대원이 아이의 손을 잡고 그래서? 하고 물었다. 구급대원의 손은 따뜻했다. 아이는 자신의 손목을 잡고 놓지 않던 할아버지의 손이 생각보다 따뜻했다는 것이 생각났고, 그래서 다시 용기를 내서 말을 했다. “그 아저씨가 맛있는 걸 사준다고 했는데……” 아이의 엄마가 이야기를 듣다 말고, 엄마가 아무도 따라가지 말라 그랬지? 하고 화를 냈다. 그러고는 이내 미안하다, 화를 내서, 하고 사과를 했다. “나를 막 끌고 화장실로 데리고 갔어. 그랬는데.” 아이는 응급실을 둘러보았다. 남자가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려 했다는 말은 하지 않겠어. 아이는 주먹을 쥐었다. 그런 말을 하기엔 자신을 쳐다보는 낯선 사람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하지만 구급대원은 아이가 주먹을 움켜쥐었을 때 모든 것을 파악했다. “그랬는데, 그 할아버지가 날 구해줬어.” 마지막 말을 하고 나자 아이는 갑자기 졸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껴안았고 아이는 길게 하품을 했다.
구급대원이 경찰에 신고를 하는 동안, 아이의 엄마가 수술실 앞에서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기도를 하는 동안, 아이가 엄마의 품에 안겨 편안하게 잠을 자는 동안, 경찰들이 상가 화장실에서 증거품을 수집하는 동안, 할머니와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긴 낮잠을 자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를 보고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아이의 엄마는 딸의 피멍이 든 손목을 보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고 말했다. 아이의 엄마는 그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점심으로 자장면을 시켜주었다. 아이는 가게에서 시켜먹는 자장면보다는 엄마가 끓여주는 자장라면을 더 좋아했다. 자장면은 불었고, 아이는 반쯤 먹다 남겼다. 아이를 피아노학원에 데려다주면서, 아이의 엄마는 학원 끝나면 혼자 집에 올 수 있지? 하고 물었다. 아이가 고개를 끄떡였다. 비밀번호는? 다시 묻자, 아이가 엄마의 귀에 대고 여덟 개의 숫자를 또박또박 말했다. “그런데 왜 상가에는 간 거야? 집에 안 가고?” 아이의 엄마는 어째서 딸이 상가에 갔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피아노 학원에서 113동으로 가는 길은 아파트 상가를 지나치지 않았다. 아이의 엄마는 딸의 손목을 가리키면서 누가 그랬어요? 하고 물었다. 구급대원은 잘 모르지만 우리들이 발견했을 때는 어떤 할아버지가 아이를 붙잡고 있었어요, 하고 대답했다.
아이의 엄마가 어떤 놈인지 얼굴이나 봐야겠어요, 하고 소리쳤다. “지금 수술중이에요.” 구급대원이 말했다. “손목에 상처라도 나면 가만 안 둘 거야.” 여자가 말했다. 그때였다. 아이가 울음을 멈춘 건. 아이가 울음을 멈추자, 찢어진 상처를 꿰매지 않겠다고 소리지르던 사람이 놀라 입을 다물었다. 응급실이 조용해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간호사가 찢어진 오른팔에 마취주사를 놓았다. “할아버지가 그런 게 아니야.” 아이가 말했다. 너무 울어서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수간호사가 아이에게 박하사탕을 건네주면서 잘했다, 하고 칭찬을 해주었다. 아이의 엄마는 피멍이 든 손목을 걱정했지만, 그 멍은 이 주일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쉰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는, 아이의 엄마도, 구급대원도, 응급실의 간호사들도, 몰랐다.
아이가 상가에 간 것은 1층과 2층 계단 사이에 그려진 낙서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물구나무를 선 사람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아이는 우울한 날이면, 상가에 가서, 그 그림을 보았다. 몸을 숙여 가랑이 사이로 그림을 보곤 했는데, 그러면 물구나무 선 사람들이 두 팔을 들고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은 상가 2층에 있는 태권도장에 다니는 청년이었다. 몇 년째 직장을 잡지 못한 청년은 어느 날 자신이 똑같은 잠옷을 삼 년째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청년은 태어나서 한 번도 팔씨름을 이겨보지 못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고등학교 다닐 적에 같은 반 아이에게 돈을 빼앗겼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때 당당하게 대들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비루한 인생을 살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청년은 어머니의 지갑에서 수표 한 장을 훔쳐서 태권도장으로 갔다. 청년은 언제나 비상계단을 이용했다. 중앙계단은 도복을 입은 초등학생들이 늘 오갔기 때문이었다. 가끔,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한 개비씩 피기도 했다. 그리고 담뱃불을 끄기 전에, 남아 있는 재로 계단 벽에 물구나무를 선 사람을 하나씩 그렸다. 나도 언젠가는 이단 옆차기를 할 수 있겠지, 하는 상상을 하면서. 아이가 그 그림을 발견한 것은 청년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일 년 반이나 지난 뒤였다. 물구나무를 선 사람은 다섯 명으로 늘었다. 할아버지가 아이를 화장실에서 구한 날, 아이는 늘 그랬던 것처럼, 가랑이 사이로 그림을 보고 있었다. “그때였어. 어떤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내 옆에 섰어.” 남자는 아이처럼 몸을 숙이고 가랑이 사이로 그림을 보았다. 아이에게 이렇게 보면 재미있니? 하고 물었다. 아이가 네, 하고 대답하니까 남자가 저기 저 끝에 있는 그려진 아이는 널 닮았구나, 하고 말했다.
거기까지 말을 하고 아이는 말을 멈추었다. 남자가 화장실에 끌고 간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망설여졌기 때문이었다. 구급대원이 아이의 손을 잡고 그래서? 하고 물었다. 구급대원의 손은 따뜻했다. 아이는 자신의 손목을 잡고 놓지 않던 할아버지의 손이 생각보다 따뜻했다는 것이 생각났고, 그래서 다시 용기를 내서 말을 했다. “그 아저씨가 맛있는 걸 사준다고 했는데……” 아이의 엄마가 이야기를 듣다 말고, 엄마가 아무도 따라가지 말라 그랬지? 하고 화를 냈다. 그러고는 이내 미안하다, 화를 내서, 하고 사과를 했다. “나를 막 끌고 화장실로 데리고 갔어. 그랬는데.” 아이는 응급실을 둘러보았다. 남자가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려 했다는 말은 하지 않겠어. 아이는 주먹을 쥐었다. 그런 말을 하기엔 자신을 쳐다보는 낯선 사람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하지만 구급대원은 아이가 주먹을 움켜쥐었을 때 모든 것을 파악했다. “그랬는데, 그 할아버지가 날 구해줬어.” 마지막 말을 하고 나자 아이는 갑자기 졸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껴안았고 아이는 길게 하품을 했다.
구급대원이 경찰에 신고를 하는 동안, 아이의 엄마가 수술실 앞에서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기도를 하는 동안, 아이가 엄마의 품에 안겨 편안하게 잠을 자는 동안, 경찰들이 상가 화장실에서 증거품을 수집하는 동안, 할머니와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긴 낮잠을 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