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머니의 작업복을 빌려입으면서 나는 집에 돌아가거든 다이어트를 하리라고 결심했다. 작업복은 세번째 단추가 떨어져나가고 없었는데, 그 사이로 뱃살이 비어져나왔다. “반장님, 누구예요?” 포장지를 접고 있는 사람이 물었다. “아들이지.” 아주머니가 대답을 하고는, 몇 초가 지난 후에, 혼자 웃었다. 오븐에서 갓 나온 빵들은 뜨거웠다. 아주머니는 빵에서 나오는 김을 얼굴에 쬐었다. 그러고는 숨을 힘껏 들이마셨다. “내 고운 피부의 비결이에요.” 나도 아주머니처럼 김을 얼굴에 쬐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먹어왔던 빵과는 사뭇 다른 냄새가 났다. “하나 먹을래요?” 아주머니는 단팥이 밖으로 나온 찌그러진 빵을 꺼내 내 손에 쥐여주면서, 빵 맛이 변했다고 한 말은 아마도 수정해야 할 거라고 말했다. 아주머니의 말이 맞았다. 나는 단 세 입 만에 빵을 다 먹었다. “하나 더 먹고 싶죠?” 아주머니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빵을 세 개나 더 먹고 나니 비로소 몇 분 전에 다이어트를 하리라 결심했던 것이 생각났다. 내가 뭐 그렇지. 나는 마지막 한 입을 삼키면서 중얼거렸다. “자, 그럼.” 아주머니가 나를 옆방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에는 장갑에 마스크까지 쓴 여자들이 빵을 포장하고 있었다. “먹었으니 일을 해야지.” 아주머니가 나를 끄트머리 자리에 앉혔다. 아주머니는 기계에서 포장되어 나온 빵을 박스에 담았다. “이 박스에 열 개씩 담아요. 아, 담기 전에 봉지에서 바람이 새지는 않는지 확인하고.” 그러더니 아주머니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빵들 중에서 하나를 집었다. 봉지를 손바닥으로 누르자 안에서 피식, 하고 바람이 새어나왔다. “어떻게 단번에 찾아내요?” 내 옆에서 포장을 하던 여자가 마스크를 벗더니, 그럼 그것도 못 찾아내고 돈을 받아가려고? 하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포장을 하던 세 명의 여자들이 빵더미에서 빵봉지를 하나씩 골라냈다. 모두 밀봉이 덜 된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누구예요, 반장님?” 안경을 쓴 여자가 물었다. “애인. 가난해서 돈 좀 벌라고.”
하나씩 빵봉지를 확인하던 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요령이 생겼다. 밀봉이 덜 된 빵봉지를 검지와 중지로 살짝 눌러보니 손끝에 전해지는 느낌이 달랐다. 먼저 빵 다섯 개를 내 앞에 끌어다놓고 손가락 끝으로 빵을 누른다. 모두 통과하면 박스에 한 줄로 세운다. 그러고 다시 빵 다섯 개를 손가락을 눌러본다. 빵을 다섯 개씩 두 줄로 세우면 박스 하나가 완성된다. 그러면 더 커다란 박스에 그 박스를 집어넣는다. 큰 박스에는 작은 박스가 열 개 들어갔다. 백 개의 빵을 박스에 담고 난 뒤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 하나 완성했어요.” 내 말에 아무도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벽에 걸린 시계는 초침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멈춘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일을 하다 말고 가끔씩 고개를 들어 시계의 분침이 움직이는 것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속으로 육십 초를 세어보았지만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를 맞추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백삼십을 센 후에 분침이 한번 움직였다. “뭐 하는 거니?” 옆에서 포장을 하던 여자가 내 등을 쳤다. “저 시계요. 이상해요. 분침이 앞으로 가기 전에 뒤로 살짝 움직이는 것 같아요.” 내 말에 모두들 포장하는 일을 멈추고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일 분이 지나고, 분침이 한 눈금 앞으로 가기 전에 뒤로 살짝 움직였다. 마치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가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정말이네.” 모두들 마스크와 장갑을 벗더니 동시에 기지개를 켰다. 나도 따라 기지개를 켰다. 순간 의자에서 엉덩이가 살짝 들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고 있는 큰삼촌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다가 손가락을 코끝에 대고는 숨쉬는 것을 확인하던 어느 여름날이 생각났다. 나는 아직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아홉 살의 내가 작은삼촌이 던진 부메랑을 따라 뛰었다. 부메랑은 하늘을 한 바퀴 돈 다음 다시 삼촌의 자리로 돌아왔다. 열두 살의 나는 어느 날 앨범에 정리된 엽서들을 모두 꺼내 바닥에 늘어놓았다. 아무 엽서나 네 개씩 집어 바닥에 펼쳐놓고 이야기를 만들곤 했다. 자전거를 타는 소녀, 공원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녀, 아버지의 낡은 운동화, 시장에서 예쁜 컵을 고르는 어머니. 이 사진으로 한 줄로 놓고 이야기를 연결하다보면, 수십 가지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담임선생님은 국어교과서가 시시하다는 내 말을 믿지 않았고, 교과서에 낙서를 했다는 이유로 손바닥을 열 대나 때렸다. 이야기를 연결하고 난 뒤, 엽서를 뒤집어 부모님이 사진을 찍은 날짜를 확인해보았다. 그러면 과거의 이야기와 미래의 이야기가 마구 뒤섞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일하면 오늘 일당 없어요.” 어느덧 아주머니가 내 뒤에 와 서 있었다. 의자에 살짝 떠 있던 엉덩이가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엉덩이가 차가웠다.
아주머니는 나를 정문까지 바래다주었다. 공장에서 회사 정문까지 걸어가는 동안, 나는 수위 아저씨들이 CCTV 화면으로 나를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카메라가 보이자 손을 흔들었다. 아주머니는 빵공장에서 일을 한 지 이십오 년이 지났다고 말했다. “내가 열심히 일한 이유를 맞혀보렴.” 아주머니가 첫번째, 하고 말을 했다. 헤어진 지 이십 년이나 된 아들이 있는데 지금은 어디서 사는지 알 길이 없다고. 아들이 여덟 살 때 헤어졌는데 남편이 아들을 주지 않았다고. “그 아들이 혹시 빵을 사먹다가 내 이름을 발견할지도 모르잖아요. 꼭 너처럼. 그래서 일을 한 거지. 반장이 될 수 있게. 그리고, 두번째는……” 여덟 살 때 엄마와 헤어졌는데 그후로 한 번도 못 만났다고. 혹시나 빵을 사먹다가 딸의 이름과 똑같은 이름을 봉지에서 발견한다면, 잠시라도 딸을 추억할지도 모른다고. “자, 첫번째 같아, 두번째 같아?” 코에 점이 있는 수위 아저씨가 수위실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음, 두번째요.” 내가 말했다. 만약 내가 맞혔다면 아주머니에게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해주리라 마음먹으면서. 갑자기 아주머니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정답은 없어요. 내가 비극의 주인공이라고 생각을 하면 아직 철이 들지 않는 소녀처럼 느껴지거든.” 아주머니는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내게 건네주었다. 빵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가출은 생각보다 시시하죠?” 아주머니는 내 주머니에 지폐 한 장을 넣어주었다. “일당.” 나는 아주머니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뭐가요?” 나는 뒷걸음질을 해서 정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저한테 존댓말을 해주어서요.” 나는 아주머니를 향해, 그 뒤에 있는 공장 건물을 향해, 인사를 했다.
하나씩 빵봉지를 확인하던 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요령이 생겼다. 밀봉이 덜 된 빵봉지를 검지와 중지로 살짝 눌러보니 손끝에 전해지는 느낌이 달랐다. 먼저 빵 다섯 개를 내 앞에 끌어다놓고 손가락 끝으로 빵을 누른다. 모두 통과하면 박스에 한 줄로 세운다. 그러고 다시 빵 다섯 개를 손가락을 눌러본다. 빵을 다섯 개씩 두 줄로 세우면 박스 하나가 완성된다. 그러면 더 커다란 박스에 그 박스를 집어넣는다. 큰 박스에는 작은 박스가 열 개 들어갔다. 백 개의 빵을 박스에 담고 난 뒤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 하나 완성했어요.” 내 말에 아무도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벽에 걸린 시계는 초침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멈춘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일을 하다 말고 가끔씩 고개를 들어 시계의 분침이 움직이는 것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속으로 육십 초를 세어보았지만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를 맞추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백삼십을 센 후에 분침이 한번 움직였다. “뭐 하는 거니?” 옆에서 포장을 하던 여자가 내 등을 쳤다. “저 시계요. 이상해요. 분침이 앞으로 가기 전에 뒤로 살짝 움직이는 것 같아요.” 내 말에 모두들 포장하는 일을 멈추고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일 분이 지나고, 분침이 한 눈금 앞으로 가기 전에 뒤로 살짝 움직였다. 마치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가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정말이네.” 모두들 마스크와 장갑을 벗더니 동시에 기지개를 켰다. 나도 따라 기지개를 켰다. 순간 의자에서 엉덩이가 살짝 들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고 있는 큰삼촌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다가 손가락을 코끝에 대고는 숨쉬는 것을 확인하던 어느 여름날이 생각났다. 나는 아직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아홉 살의 내가 작은삼촌이 던진 부메랑을 따라 뛰었다. 부메랑은 하늘을 한 바퀴 돈 다음 다시 삼촌의 자리로 돌아왔다. 열두 살의 나는 어느 날 앨범에 정리된 엽서들을 모두 꺼내 바닥에 늘어놓았다. 아무 엽서나 네 개씩 집어 바닥에 펼쳐놓고 이야기를 만들곤 했다. 자전거를 타는 소녀, 공원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녀, 아버지의 낡은 운동화, 시장에서 예쁜 컵을 고르는 어머니. 이 사진으로 한 줄로 놓고 이야기를 연결하다보면, 수십 가지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담임선생님은 국어교과서가 시시하다는 내 말을 믿지 않았고, 교과서에 낙서를 했다는 이유로 손바닥을 열 대나 때렸다. 이야기를 연결하고 난 뒤, 엽서를 뒤집어 부모님이 사진을 찍은 날짜를 확인해보았다. 그러면 과거의 이야기와 미래의 이야기가 마구 뒤섞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일하면 오늘 일당 없어요.” 어느덧 아주머니가 내 뒤에 와 서 있었다. 의자에 살짝 떠 있던 엉덩이가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엉덩이가 차가웠다.
아주머니는 나를 정문까지 바래다주었다. 공장에서 회사 정문까지 걸어가는 동안, 나는 수위 아저씨들이 CCTV 화면으로 나를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카메라가 보이자 손을 흔들었다. 아주머니는 빵공장에서 일을 한 지 이십오 년이 지났다고 말했다. “내가 열심히 일한 이유를 맞혀보렴.” 아주머니가 첫번째, 하고 말을 했다. 헤어진 지 이십 년이나 된 아들이 있는데 지금은 어디서 사는지 알 길이 없다고. 아들이 여덟 살 때 헤어졌는데 남편이 아들을 주지 않았다고. “그 아들이 혹시 빵을 사먹다가 내 이름을 발견할지도 모르잖아요. 꼭 너처럼. 그래서 일을 한 거지. 반장이 될 수 있게. 그리고, 두번째는……” 여덟 살 때 엄마와 헤어졌는데 그후로 한 번도 못 만났다고. 혹시나 빵을 사먹다가 딸의 이름과 똑같은 이름을 봉지에서 발견한다면, 잠시라도 딸을 추억할지도 모른다고. “자, 첫번째 같아, 두번째 같아?” 코에 점이 있는 수위 아저씨가 수위실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음, 두번째요.” 내가 말했다. 만약 내가 맞혔다면 아주머니에게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해주리라 마음먹으면서. 갑자기 아주머니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정답은 없어요. 내가 비극의 주인공이라고 생각을 하면 아직 철이 들지 않는 소녀처럼 느껴지거든.” 아주머니는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내게 건네주었다. 빵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가출은 생각보다 시시하죠?” 아주머니는 내 주머니에 지폐 한 장을 넣어주었다. “일당.” 나는 아주머니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뭐가요?” 나는 뒷걸음질을 해서 정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저한테 존댓말을 해주어서요.” 나는 아주머니를 향해, 그 뒤에 있는 공장 건물을 향해,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