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위는 단지 빵봉지에 찍힌 이름 때문에 공장까지 찾아왔다는 내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그럼 전국을 뒤져 너랑 이름이 같은 사람들을 다 찾아다닐 거니?” 선글라스를 낀 수위가 물었다. 옆에 앉아 있던 코끝에 점이 있는 수위가 이 도시엔 나랑 이름이 같은 사람이 적어도 열한 명 있어요, 하고 말했다. “전, 낯선 도시에 가면, 공중전화부스에서 전화번호부책을 뒤져보는 버릇이 있거든요. 제 이름과 같은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보려고요.” 코에 점이 있는 수위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한참이 지난 후,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지금 전화받기가 힘든가보다. 메모 남겼으니 기다리렴.” 수위실 근처를 두리번거렸지만 그늘은 보이지 않았다. “배가 아픈데 화장실 좀……” 나는 두 손으로 배를 움켜쥐고는 말했다. 선글라스를 낀 수위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자 코에 점이 있는 수위가 수위실 문을 열어주었다. “수위실 안에 화장실이 있어요?” 나는 변기에 앉아서 천까지 숫자를 세었다. 그리고 물을 내렸다. 화장실에서 나온 나는 에어컨 앞에 서서 아직 여름도 아닌데, 하고 중얼거렸다. 코에 점이 있는 수위가 내 머리를 한 대 치면서 말했다. “너 솔직히 말해봐. 수위실에 들어오려고 화장실 간다고 거짓말했지?” 수위 아저씨들이 축구중계를 보는 동안 나는 CCTV 화면을 보았다. 검은 물체가 휙 하고 지나갔고 놀란 나는 수위 아저씨들을 불렀다. “비닐봉지다.” 화면을 오랫동안 보고 있으니,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나뭇잎이 저절로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양이와 오랫동안 눈싸움을 했고, 내가 저리가, 하고 말하자, 정말로 고양이가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수위실 안에는 담배 냄새가 심하게 났는데, 이상하게도, 중계가 끝날 때까지 아무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저 때문에 참는 거면 괜찮아요. 담배 피우세요.” 자동차가 한 대 지나갔고 수위 아저씨들이 동시에 일어나 거수경례를 했다. “우린 담배 안 피운다. 김씨가 골초였지.”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갑자기 화면에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다들 어디론가 걸어가요. 참, 김씨 아저씨는 어디 갔어요?” 나는 CCTV 화면 안으로 걸어들어오는 듯한 사람들을 뚫어지게 보았다. “점심시간이야. 그리고 김씨는 지난주에 죽었어.” 나는 또 배가 아프네, 라고 중얼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닦으며 거울을 보았다. ‘편지라도 써놓고 올걸. 할머니가 놀랐겠다.’ 나는 물이 묻은 손가락으로 거울에 내 이름을 썼다. 변기 물을 내리고, 심호흡을 한번 한 다음, 밖을 나오자 뚱뚱한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여자일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나는 고개를 숙였다. 큰삼촌의 모자가 눈을 가렸다. 아주머니가 내게 손을 내밀며 악수나 할까, 하고 대답했다. “나는 멋진 청년인 줄 알았어요.” 아주머니는 나를 직원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가출을 하려면 식구들 몰래 집을 나와야 했을 테고, 그러려면 밥은 당연히 못 먹었을 거라고, 아주머니는 추측을 했다. “어떻게 알아요?” 나는 CCTV 화면으로 보았던, 눈에 익숙한 건물 앞에 섰다. “나도 많이 해봤으니까. 내 말이 맞죠?” 아주머니는 식권 두 장을 식권함에 넣었다. 배추된장국에 갈치 한 토막, 연근조림, 파래무침, 깍두기가 오늘의 메뉴였다. 식당에는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똑같은 반찬에 밥을 먹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밥을 빨리 먹었다. 내가 반도 먹지 않았는데 후식으로 준 요구르트까지 다 마셨다. “미안, 워낙 빨리 먹는 게 습관이 되어서.” 나는 파래무침을 싫어했고 그래서 씹지도 않고 삼켰다. 배춧국에 들어 있는 배추의 물컹한 느낌도 싫었지만 깍두기와 같이 씹어 넘겼다. 남김없이 밥을 다 먹고 나자, 나는 흰색 작업복을 입은 수많은 직원들 중 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요즘 빵맛이 변했어요.” 아주머니는 그럴 리가 없다고, 그 빵만 십이 년째 만들고 있다고, 대꾸했다. 나는 가방을 열어 그 동안 모은 빵봉지들을 보여주었다. “제 입맛은 틀림없어요.” 아주머니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빵봉지를 보았다. 그러고는 이것만 찾아서 먹었어요? 하고 물었다. 나는 몇 년째 돌아오지 않는 부모님에 대해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수백 장의 엽서에 대해. 작년 내 생일에는 호텔방에서 두 분이 생일케이크를 앞에 놓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찍어 보냈다. “나는 늘 생일 축하엽서를 생일이 지난 지 일주일 후에 받아요.” 할머니가 끓인 미역국을 다 먹은 후, 고모가 사준 케이크도 다 먹은 후, 작은삼촌이 준 용돈을 다 써버린 후, 엽서는 도착했다. “이런 상상을 해봐요. 일주일 동안 생일 축하한다, 라는 말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 그런 말을 한 후 아주머니는 눈을 감았다. 언젠가 보았던 영화들 중에 그와 비슷한 장면이 있었던 것만 같았다. 똑같은 속도로 찍혀나오는 빵을 종일 보고 나면 잠결에 들리는 자신의 숨소리조차도 지루하게 느껴졌다. 가끔은 손목의 맥을 짚어 지금 쉬고 있는 숨이 자신의 것인지 확인을 할 때도 있었다.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렸고, 아주머니가 감았던 눈을 떴다. “공장 구경할래요? 방금 기계에서 나온 빵이 얼마나 맛있는지.” “좋아요.” 우리는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