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큰삼촌의 모자를 쓰고 집을 나섰다. 모자는 여전히 컸다. 나는 그 모자가 내 머리에 맞는 날이 영영 오지 않기를 바랐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오징어 굽는 냄새가 났고, 냄새를 맡자 아직 아침을 안 먹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나는 오징어 한 마리와 사이다 한 병을 사서 버스에 탔다. 오징어를 씹다가, 버스가 급정거를 하는 순간, 혀를 씹었다. 피 맛이 느껴졌다. 혀를 내밀어 다친 곳을 보려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터널을 지나갈 때 유리창에 혀를 비춰보았다. 그래도 다친 곳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사이다를 한 모금 마셨다. 다친 혀가 따끔거렸다. 멀미가 나려고 할 때마다, 나는 모자에 남아 있는 큰삼촌의 냄새를 맡아보려고 노력했다. 할머니가 찾아내 빨래를 하지 못하도록 나는 큰삼촌의 모자를 옷장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다. 하지만, 모자에서 맡아지는 냄새는 나프탈렌 냄새뿐이었다. 원래 큰삼촌에게 어떤 냄새가 났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고 그걸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 적잖은 실망감이 느껴졌다. 버스가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했다. 나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주 오랫동안 오줌을 누고, 비누칠을 두 번이나 해가며 손을 닦았다.
버스기사가 서서 가락국수를 먹고 있었다. 기사는 국수를 먹으면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천천히 드세요.” 나는 말했다. “버스가 기다리잖아.” 기사가 국수를 씹으면서 말을 했다. 나는 아저씨가 출발을 하지 않으면 그뿐인데 무슨 걱정이냐고 말해주었다. 기사가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마셨다. 나는 버스기사가 가락국수를 국물도 남김없이 다 먹는 것을 보았다. 기사는 자판기 커피를 뽑아 한 모금 마신 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부모님은 어디 있니?” 기사는 주머니를 몇 번 더 뒤지더니 담배를 다시 갑에 넣었다. “부모님은 코트디부아르에 있어요.” 나는 사람들이 부모님에 대해 물을 때를 대비해서 여섯 글자로 된 나라들의 이름을 외워두었다. 푸에르토리코나 코트디부아르라고 발음을 해보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다. 나는 버스기사를 따라 버스로 돌아왔다. 버스에 타기 전에 기사가 내게 물었다. “너 솔직히 말해. 버스 못 찾을까봐 날 기다린 거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깨만 으쓱거렸다. 하지만 할머니의 말투로 이렇게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 똑같이 생긴 버스들이 문제야.” 버스기사가 통로에 서서 모두 탔습니까, 하고 물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인데 누가 탔고 누가 안 탔는지 어떻게 알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나도 모르게 네, 하고 대답했다. 버스가 이내 출발을 했고 나는 눈을 감았다.
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혼자 그네를 타고 있었다. 눈 밑에 칼자국이 있는 남자가 내게 다가와 뭐 하니? 하고 물었다. 나는 깜짝 놀랐는데, 그 남자가 무서웠기 때문이 아니라, 생김새와는 달리 너무나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양복 안주머니에서 커다란 초코파이를 꺼냈다.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세 배는 큰 초코파이였다. “이 안에는 말이야. 하얀 구름이 들어 있단다.” 나는 초코파이를 무릎에 올려놓고, 마시멜로를 감싸고 있는 빵을 손가락으로 뜯어먹었다. 마침내, 흰색의, 동그란, 마시멜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가 그것을 집어 하늘을 향해 들었다. “달 같지 않니?” 남자가 말했다. 나는 그네에서 내려, 달 위를 걷는 사람처럼, 아주 천천히 운동장을 걸었다. 운동장을 한 바퀴 걷고 난 뒤 나는 남자에게 혓바닥을 내밀었다. “혀를 깨물었어요. 많이 다쳤어요?” “응.” 남자가 말했다. 그러고는 내 혓바닥 위에 마시멜로를 올려놓았다. 마시멜로는 혓바닥에서 서서히 녹았다. 마시멜로가 혓바닥에서 녹는 동안 내 키는 쑥쑥 자랐다. 어른이 된 나는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내 옆에는 다리가 바닥에 닿지 않을 정도로 작은 꼬마아이가 앉아 있었다. “내 꿈은 말이에요.” 아이가 말했다. “요리사가 되는 거예요.” 나는 아이에게 그거 멋진 일인데, 하고 말해주었다. 나는 마시멜로를 구워먹어본 적이 있냐고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가 가방을 열더니 수첩을 하나 꺼냈다. “요리 비법을 적은 수첩이에요. 혹시 아는 비법이 있으세요?” 수첩에는 스티커가 잔뜩 붙어 있었는데, 모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그려진 스티커였다. “없단다. 나는 하루 세끼를 사먹어.” 아이가 내 배를 보며 웃었다. “하나 드릴까요?” 아이가 스티커를 가리켰다. “그래.” 아이는 계란프라이를 집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스파게티와 토스트 사이에서 한참을 망설이더니, 결국 그 옆에 있는 토마토주스 스티커를 떼어냈다. “여기에 붙이렴.” 나는 지갑을 꺼냈다. 아이가 지갑에 토마토주스 스티커를 붙이려는 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버스기사였다. “다 왔어.” 버스에서 내린 내 손에는 사이다가 들려 있었다. 나는 김이 빠진 사이다를 마셨다. 트림을 한번 하고 난 뒤 나는 택시를 탔다. 그리고 택시기사에게 빵 봉지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여기 적힌 주소로 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