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득’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단어를 좋아하게 된 것은 국어책에서 문득 배가 고파왔습니다, 라는 문장을 읽게 된 후였다. 그 문장을 읽자 정말로 배가 고파졌다. 모두 다 ‘문득’이란 단어 때문이었다. 나는 ‘설마’라고 말하던 말버릇을 없애고, ‘문득’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문득 아무하고도 말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문득 잠을 자고 싶었습니다, 문득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같은 문장들. 그 문장들을 자꾸 중얼거리다보니 정말로 학교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학교 앞 문방구에 있는 오락기에 동전을 하나 넣었다. 등교시간이 지나도록 게임이 끝나지 않는다면 오늘 학교는 하루 쉬어야지.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비행기가 폭탄을 맞았다. 이제 비행기는 두 대밖에 남지 않았다. 같은 반 아이가 너 뭐 하니? 하고 물었다. 응, 하고 대답하려는 순간 비행기 한 대가 추락을 했다. “선생님이 물어보거든 나 못 봤다고 해.” 나는 말했다. 그리고 초록색 버튼을 손톱이 아프도록 눌렀다. 마지막 비행기는 수십 대의 적군의 비행기를 물리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금세, 어디선가 날아온 로켓에 맞고 공중분해 되었다. 문방구 주인이 너 오락 엄청 못하는 구나, 하고 말했다. “문득 게임을 그만하고 싶어진 거예요.” 나는 말했다. “말이나 못하면.” 문방구 주인이 웃었다.
바람이 불었고, 내 등뒤로 비닐봉지가 바람에 날아갔다. 나는 바람에 날리는 봉지를 따라 걸었다. 비닐봉지는 멈출 듯 멈출 듯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나는 뛰지 않았다.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비닐봉지는 트럭의 바퀴에 깔렸다. 비닐봉지는 수족관이 파란 천으로 덮여 있는 횟집을 지나, 일주일 전에 고양이가 차에 깔려 죽은 피아노 학원 앞을 지났다. 누군가 먹다 버린 살구에 달라붙어 있는 개미들을 스쳐 지나간 뒤, 마침내 비닐봉지는 물웅덩이에 빠졌다. 나는 비닐봉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문득 비닐봉지는 쓸쓸해보였다.” 나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등교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다. 부모님이 내 나이의 소년에게서 산 시계였다. 부모님은 나와 나이가 비슷한 아이들을 만나면 그 아이들이 가진 물건들을 구입했다. 낡은 모자, 바람개비, 목이 늘어난 티셔츠, 물총 등등이 국제우편으로 배달되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샀다. 문득이란 단어만 말을 해도 자동적으로 배가 고파졌기 때문이었다. 빵을 뜯다가 나는 봉지에 내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편의점 파라솔에 앉아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아저씨에게 봉지에 왜 이름이 새겨져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건 제조자 이름이야.” 아저씨가 말을 해주었다. “그러니까 그 빵을 만든 사람이라고.” 아저씨가 다시 한번 설명을 했다. 나는 다시 편의점에 들어가 다른 빵을 하나 골랐다. 거기에는 다른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두 빵을 번갈아가며 먹었다. 내가 만든 빵이, 아니 나와 이름이 같은 누군가 만든 빵이, 두 배는 더 맛있었다. 나는 내 이름이 새겨진 빵 봉지를 잘 펴서 노트 사이에 끼워넣었다. 나는 다른 편의점을 찾아 걸었다. 빵을 뒤지기만 할 뿐 아무것도 사지 않자 아르바이트생이 화를 냈다. “신선한 게 없어요.” 나도 화를 냈다. 그날, 학교가 끝날 때까지, 나는 가게를 돌아다녔다. 나와 이름이 같은 제조자가 만든 빵을 세 개나 더 발견했다. 나는 큰삼촌의 책장에서 전국지도를 꺼냈다. 빵을 제조한 공장이 있는 도시가 어디쯤에 있는지를 찾아 동그라미를 쳤다.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은 오 년 내내 똑같은 빵을 만들었다. 나는 팔백 개가 넘는 빵봉지를 모았다. 그사이, 작은삼촌은 회사를 두 번이나 옮겼다. 나는 작은삼촌에게 빵을 하나 주면서 이거 먹고 정신 좀 차려, 라고 말해주었다. 오 년 동안이나 먹어왔지만 늘 한결같은 맛이었다고. “이렇게 맛없는 빵을 오 년이나 먹었다니. 그러니 니가 이렇게 뚱뚱해졌지.” 작은삼촌이 내 배를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나는 ‘문득 부모님이 그리워졌다’ 따위의 문장은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그 문장이 떠오를 때면 나는 빵봉지에 새겨진 이름을 보면서 ‘문득 그 남자가 궁금해졌다’라는 문장을 중얼거렸다. 사진 속의 부모님은 점점 말라갔다. 초등학교 마지막 운동회 날, 나는 백미터 달리기에서 7등으로 달렸고, 아무 상품도 받지 못했다.
바람이 불었고, 내 등뒤로 비닐봉지가 바람에 날아갔다. 나는 바람에 날리는 봉지를 따라 걸었다. 비닐봉지는 멈출 듯 멈출 듯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나는 뛰지 않았다.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비닐봉지는 트럭의 바퀴에 깔렸다. 비닐봉지는 수족관이 파란 천으로 덮여 있는 횟집을 지나, 일주일 전에 고양이가 차에 깔려 죽은 피아노 학원 앞을 지났다. 누군가 먹다 버린 살구에 달라붙어 있는 개미들을 스쳐 지나간 뒤, 마침내 비닐봉지는 물웅덩이에 빠졌다. 나는 비닐봉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문득 비닐봉지는 쓸쓸해보였다.” 나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등교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다. 부모님이 내 나이의 소년에게서 산 시계였다. 부모님은 나와 나이가 비슷한 아이들을 만나면 그 아이들이 가진 물건들을 구입했다. 낡은 모자, 바람개비, 목이 늘어난 티셔츠, 물총 등등이 국제우편으로 배달되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샀다. 문득이란 단어만 말을 해도 자동적으로 배가 고파졌기 때문이었다. 빵을 뜯다가 나는 봉지에 내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편의점 파라솔에 앉아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아저씨에게 봉지에 왜 이름이 새겨져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건 제조자 이름이야.” 아저씨가 말을 해주었다. “그러니까 그 빵을 만든 사람이라고.” 아저씨가 다시 한번 설명을 했다. 나는 다시 편의점에 들어가 다른 빵을 하나 골랐다. 거기에는 다른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두 빵을 번갈아가며 먹었다. 내가 만든 빵이, 아니 나와 이름이 같은 누군가 만든 빵이, 두 배는 더 맛있었다. 나는 내 이름이 새겨진 빵 봉지를 잘 펴서 노트 사이에 끼워넣었다. 나는 다른 편의점을 찾아 걸었다. 빵을 뒤지기만 할 뿐 아무것도 사지 않자 아르바이트생이 화를 냈다. “신선한 게 없어요.” 나도 화를 냈다. 그날, 학교가 끝날 때까지, 나는 가게를 돌아다녔다. 나와 이름이 같은 제조자가 만든 빵을 세 개나 더 발견했다. 나는 큰삼촌의 책장에서 전국지도를 꺼냈다. 빵을 제조한 공장이 있는 도시가 어디쯤에 있는지를 찾아 동그라미를 쳤다.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은 오 년 내내 똑같은 빵을 만들었다. 나는 팔백 개가 넘는 빵봉지를 모았다. 그사이, 작은삼촌은 회사를 두 번이나 옮겼다. 나는 작은삼촌에게 빵을 하나 주면서 이거 먹고 정신 좀 차려, 라고 말해주었다. 오 년 동안이나 먹어왔지만 늘 한결같은 맛이었다고. “이렇게 맛없는 빵을 오 년이나 먹었다니. 그러니 니가 이렇게 뚱뚱해졌지.” 작은삼촌이 내 배를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나는 ‘문득 부모님이 그리워졌다’ 따위의 문장은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그 문장이 떠오를 때면 나는 빵봉지에 새겨진 이름을 보면서 ‘문득 그 남자가 궁금해졌다’라는 문장을 중얼거렸다. 사진 속의 부모님은 점점 말라갔다. 초등학교 마지막 운동회 날, 나는 백미터 달리기에서 7등으로 달렸고, 아무 상품도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