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버스에서 잠을 자다가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에 놀라 잠을 깨면, 어머니는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팔짱을 끼고 길을 걷는 것을 볼 때도, 빨랫줄에 걸린 빨래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볼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불씨가 꺼져가는 난로에 손을 비벼가며 구구단을 외우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구구단을 외우다 막히면 머리카락 몇 올을 뽑아 연탄 위에 올려보고는 했다. 머리카락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어머니는 낮기온이 사십 도를 넘나드는 도시를 걸어가다 어릴 적 외할머니 가게에 있던 난로와 똑같은 것을 발견했다. 그 난로를 찍으면서 어머니는 여행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혔다. 난로 사진 뒤에는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야’라고 적혀 있었는데,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부모님이 쉽게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예감에 사로잡혔다. 내 시간과 부모님의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흘러가리라는 생각이 어렴풋하게 들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엽서는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밭을 찍은 사진이었다. ‘엄마가 어디 숨어 있는지 찾아봐라.’ 나는 할머니의 돋보기를 빌려 쓰고 사진을 들여다보았지만 어머니의 얼굴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학교 운동장에 서서 내 키보다 그림자가 더 길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서 운동장이 온통 해바라기밭으로 채워진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나는 가방에 모든 교과서와 공책과 준비물을 넣고 다녔다. 아침마다 가방을 쌀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는 아주 편했지만, 시간표를 볼 필요가 없어지니 요일이 자주 헷갈렸다. 나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등을 구부정하게 숙이며 길을 걷는 것이 좋았다.
부모님이 뒤집어진 버스에서 오 년째 살고 있다는 부부를 만났을 때 나는 소풍을 갔다. 어머니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들 부부와 소시지를 구워먹는 아버지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혓바닥이나 데어라! 나는 사진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반 아이들 몇이 벌에 쏘여 구급차에 실려갔고, 나는 남아 있는 아이들에게 지구 저편에는 벌을 튀겨 먹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거짓말.” 누군가 말했다. 나는 일주일 동안 자전거 한 대를 먹는 사람도 있는데 벌 따위야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뒤집어진 버스에서 살고 있는 부부는 부모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이 버스가 거꾸로 하늘을 달린다고 생각해봐요.” 나는 마당에 누워 허공을 차며 발을 굴러보았다.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달린다고 상상을 하면서. 치! 그걸 알기 위해 그 먼 곳까지 가야 하다니. 나는 마당에 누워 자전거를 타는 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부모님에게 보내주고 싶었다. ‘그건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라고 적어서. 부모님이 햄버거 많이 먹기 대회에 나가서 인기상을 수상했을 때, 나는 가을운동회 백미터 달리기에서 5등을 했고 아무 상품도 받지 못했다. 나는 콩밥 먹기에 도전을 했다가 세 번 만에 성공을 했다. 내가 찡그린 얼굴로 콩밥을 삼킬 때, 부모님은 녹물이 나오는 낡은 호텔에서 겨우 세수만 하고 잠이 들었다. 부모님이 키가 이 미터가 넘는 아들을 여덟 명이나 둔 노부부의 농장에서 살구 따는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엄지발가락이 꽉 죄는 운동화를 꾹 참고 신었다. 양말이 뚫어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할머니가 세 달 만에 운동화가 작아졌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제야 나는 새 운동화를 신게 되었다. 벼락 맞은 나무 아래에서 십 년째 기도를 올리는 남자의 이야기를 듣다 어머니는 눈물을 찔끔 흘렸다. 당신의 아들이 가을철 별자리 이름을 모두 외웠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당신의 아들이 열번째 생일선물로 천체망원경을 받고 싶어한다는 것은 짐작도 못한 채. 내 그림자는 조금씩 길어졌고 가방은 조금씩 무거워졌다. 부모님의 옷은 태양의 빛에 조금씩 바래갔고, 배낭은 조금씩 무거워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엽서는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밭을 찍은 사진이었다. ‘엄마가 어디 숨어 있는지 찾아봐라.’ 나는 할머니의 돋보기를 빌려 쓰고 사진을 들여다보았지만 어머니의 얼굴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학교 운동장에 서서 내 키보다 그림자가 더 길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서 운동장이 온통 해바라기밭으로 채워진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나는 가방에 모든 교과서와 공책과 준비물을 넣고 다녔다. 아침마다 가방을 쌀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는 아주 편했지만, 시간표를 볼 필요가 없어지니 요일이 자주 헷갈렸다. 나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등을 구부정하게 숙이며 길을 걷는 것이 좋았다.
부모님이 뒤집어진 버스에서 오 년째 살고 있다는 부부를 만났을 때 나는 소풍을 갔다. 어머니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들 부부와 소시지를 구워먹는 아버지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혓바닥이나 데어라! 나는 사진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반 아이들 몇이 벌에 쏘여 구급차에 실려갔고, 나는 남아 있는 아이들에게 지구 저편에는 벌을 튀겨 먹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거짓말.” 누군가 말했다. 나는 일주일 동안 자전거 한 대를 먹는 사람도 있는데 벌 따위야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뒤집어진 버스에서 살고 있는 부부는 부모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이 버스가 거꾸로 하늘을 달린다고 생각해봐요.” 나는 마당에 누워 허공을 차며 발을 굴러보았다.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달린다고 상상을 하면서. 치! 그걸 알기 위해 그 먼 곳까지 가야 하다니. 나는 마당에 누워 자전거를 타는 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부모님에게 보내주고 싶었다. ‘그건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라고 적어서. 부모님이 햄버거 많이 먹기 대회에 나가서 인기상을 수상했을 때, 나는 가을운동회 백미터 달리기에서 5등을 했고 아무 상품도 받지 못했다. 나는 콩밥 먹기에 도전을 했다가 세 번 만에 성공을 했다. 내가 찡그린 얼굴로 콩밥을 삼킬 때, 부모님은 녹물이 나오는 낡은 호텔에서 겨우 세수만 하고 잠이 들었다. 부모님이 키가 이 미터가 넘는 아들을 여덟 명이나 둔 노부부의 농장에서 살구 따는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엄지발가락이 꽉 죄는 운동화를 꾹 참고 신었다. 양말이 뚫어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할머니가 세 달 만에 운동화가 작아졌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제야 나는 새 운동화를 신게 되었다. 벼락 맞은 나무 아래에서 십 년째 기도를 올리는 남자의 이야기를 듣다 어머니는 눈물을 찔끔 흘렸다. 당신의 아들이 가을철 별자리 이름을 모두 외웠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당신의 아들이 열번째 생일선물로 천체망원경을 받고 싶어한다는 것은 짐작도 못한 채. 내 그림자는 조금씩 길어졌고 가방은 조금씩 무거워졌다. 부모님의 옷은 태양의 빛에 조금씩 바래갔고, 배낭은 조금씩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