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엽서를 보냈다. 관광지에서 샀음 직한 엽서를 보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모님이 직접 찍은 사진을 인화해 뒷면에 사연을 적어 보냈다. 도통 재료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음식 사진에는 ‘오늘 이런 걸 먹었다. 너도 먹어보면 평생 음식투정은 안 하게 될 게다’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부모님은 글 말미에 언제나 날짜와 도시의 이름을 적었고, 나는 날짜 순서에 맞춰 엽서를 정리해두었다. 외할머니와 똑같이 생긴 사람과 어머니가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도 있었다. ‘정말 닮았죠? 엄마, 보고 싶어요.’
그 엽서를 받은 날, 나는 할머니를 졸라 외할머니의 식당으로 갔다. 나는 주방 천장에 매달려 있는 끈끈이를 향해 소주병 뚜껑을 던져보았다. 뚜껑이 붙었다가 이내 떨어졌다. 끈끈이에 달라붙어 있던 파리도 몇 마리 같이 떨어졌다. “파리가 백 마리는 되겠어.” 외할머니가 두 손으로 내 볼을 쓰다듬으며 키가 더 컸네, 하고 말했다. 외할머니의 손에서 마늘 냄새가 났다. 소주를 마시던 손님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얼마예요? 하고 물었다. 외할머니가 만팔천원이요, 하고 대답했다. 나는 재빨리 아니에요, 이만사천원이에요, 하고 끼어들었다. “족발 중, 만팔천원. 소주 두 병, 육천원. 아니에요, 할머니?” 안경을 쓴 남자가 이만오천원을 내더니 천원은 이 똑똑한 놈 용돈으로 주세요, 하고 말했다. 손님들이 나가고 난 뒤, 외할머니는 오천원짜리를 반으로 접어 내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외할머니,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내가 물었다. 외할머니가 응, 사랑해, 하고 대답해주었다. “사돈. 그 말을 듣고 싶어하는 게 아닐걸요.” 외할머니가 끓인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먹던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는 외할머니의 가게에 오면 언제나 콩나물국에 밥을 한 그릇씩 말아 먹곤 했다. “솔직히 말해요. 무슨 일이 있죠?” 할머니는 외할머니의 앞치마의 얼룩들을 가리키면서, 사돈이 이렇게 지저분한 앞치마를 맨 것을 처음 본다고 했다. “맞아. 주방에 설거지 그릇들이 잔뜩 쌓였어. 바닥은 일주일은 안 닦은 것 같아.” 내가 맞장구를 쳤다. 외할머니가 주먹으로 무릎을 툭툭 쳤다. 마치 가게가 지저분한 것은 아픈 무릎 때문이라는 듯이. 나는 외할머니에게 어머니가 보낸 엽서를 보여주었다. “닮았죠? 내 눈엔 외할머니가 더 예쁘지만.” 외할머니는 형광등 밑에 서서 오랫동안 엽서를 보았다. 외할머니는 한 번도 카메라를 사본 적이 없었다. 외할머니는 카메라 파인더로 누군가를 바라보는 일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외할머니는 아장아장 걷는 어린 딸의 모습을 떠올렸고, 그 아이가 사각의 틀 밖으로 걸어나가기 전에 얼른 셔터를 누르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두 달 전이었나.” 외할머니가 말을 했다. 두 달 전 밤에 자다 등에 심한 담이 결렸다고. 약상자를 뒤져 파스를 찾아냈지만 담이 결린 등은 아무리해도 손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결국 외할머니는 약국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처음에 간 약국의 약사는 젊은 남자였다. 외할머니는 다른 약국을 갔다. 거기는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있었다. “여덟 군데나 갔어요. 여자 약사를 찾아서.” 외할머니는 마침내 찾은 여자 약사에게 파스를 붙여달라고 부탁을 했다. 약사의 손은 찼다. 등에 남아 있는 차가운 기운은 가게 문을 열고, 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족발을 삶는 동안에도 가시지 않았다. 쓸쓸했다. 외할머니는 쓸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평생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하며 살았다. 외로움에 빠지지 않는 것, 그것이 외할머니가 가진 전부였다. “그런데 겨우 파스 하나 때문에.” 외할머니는 그날부터 모든 게 귀찮게 느껴졌다. 단골 손님이 족발 맛이 달라졌다고 하자 그럼 앞으로 오지 마요,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외할머니가 갑자기 사진을 반으로 찢었다. “나도 그애랑 단둘이 찍은 사진이 없는데.” 외할머니는 서랍에서 테이프를 꺼내더니 사진 반쪽을 카운터 벽에 붙였다. 오른쪽 어깨가 잘린 어머니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나머지 사진 반쪽을 내게 주면서 말했다. “내가 훨씬 젊어. 난 이 여자처럼 이마에 주름이 있지도 않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