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화요일에 여자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여자는 휴대폰의 통화목록을 살펴보았다. 월요일 오후에 입사동기인 친구에게서 온 문자가 마지막이었다. 무단결근을 했는데도 누구도 안부전화를 걸지 않았다는 사실이 여자를 쓸쓸하게 했다. 그래서 여자는 아내가 임신을 한 기념으로 점심을 사겠다는 김대리를 따라나서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홀로 사무실에 남은 여자는 화요일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뉴스를 검색해보았다. “재미있는 일이 많더라고요.” 우선 화요일 저녁에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반지하방에 사는 자매가 살해당했고 범인은 아직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맨홀 구멍에 빠져 일곱 시간이나 갇혔던 남자가 있었다. 한강에서 연달아 세 명이 투신자살을 시도했고 한 명도 죽지 않았다. 현금인출기를 통째로 도둑맞은 사건도 있었다. 누군가 주차장에 주차된 자동차 문을 전부 긁어놓았다. 주차장에는 오십 대가 넘는 차가 있었다. 여자는 CCTV에 희미하게 찍힌 범인의 모습을 보았다. 모자를 써서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도.
“그러니까 본인이 그 일을 했다고 생각해요?” 작은삼촌이 물었다. 여자는 꼭 그렇지는 않아요,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날 우리 동네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났어요.” 의류수거함에서 고의성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연달아 났고, 건물 벽마다 심심해, 라고 낙서가 되어 있었고, 인도에 세워둔 입간판 몇 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날 이후로 전 그중 혹시 제가 한 일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을 해요. 인도를 막는 입간판들을 볼 때마다 늘 걷어차고 싶었거든요.” 여자는 세상엔 못 믿을 이야기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서점으로 가서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들어 있는 소설들을 사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방학숙제로 소설책을 읽은 이후 처음이었다.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외국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밤을 새우는 일이 잦아졌고, 회사에 지각하는 일도 잦아졌다. 여자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우리 남편도 회사를 그만두었어요.” 어머니는 카운터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남편이에요?”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네, 우리 아빠예요.” 내가 대답했다. “이 새벽에 뭐 하는 거예요?” “뭐 하긴요. 아버지 직장에 놀러 온 거죠.” 고모가 말했다. 그러자 여자가 우리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참 이상한 사람들이네요.” 그 말에 우리 식구들이 동시에 웃었다. “이상한 건 우리가 아니라 당신이에요. 왜 새벽 세시마다 초콜릿을 사먹죠?”
여자가 먹다 남은 초콜릿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혼자 어깨를 으쓱했다. 여자는 효자손으로 발바닥을 긁으며 세상이 우리 편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 라고 말을 하던 어머니를 생각했다. 회사를 그만둔 여자는 시간이 아주 많아졌다. 학비를 벌기 위해 늘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여자는 그처럼 오랫동안 쉬어본 적이 없었다. “한가해지니까 비로소 사기를 치고 달아난 어머니의 동창이 생각나더라고요.” 여자는 자고 일어나면 밤새 일어난 사건 사고를 검색했다. 여자는 어머니의 동창에게도 세상이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밤에 일어나는 그 수많은 사건들 중 하나가 그 여자에게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잖아요.” 여자는 초콜릿을 먹었다. 그러고 조용히 숨을 가다듬었다. “그래서 지금 저는 그 여자에게 어떻게 하면 가장 멋진 복수를 할 수 있을지 궁리하는 중이에요.”
나는 여자에게 캐러멜 한 통을 선물로 주었다. “너 그거 어디서 났니?” 어머니가 물었다. 나는 고모와 작은삼촌을 번갈아 쳐다본 후, 아까 훔친 거야, 하고 말했다. 아버지 직장에서 도둑질을 하다니, 역시 당신들이 더 이상해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억지로 하품을 했다. “졸리니?” 어머니와 작은삼촌과 고모가 동시에 말했다. 그때, 편의점 출입문에 달린 작은 종이 흔들렸다. 아버지가 청소부에게 홍삼드링크를 한 병 내밀었다. 나는 여자에게 우리 아빠는 저렇게 착해요, 공짜로 음료수도 주잖아요, 하고 말했다. 음료수를 다 마신 청소부는 병을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반대편 주머니에서 천원을 꺼내 아버지에게 주었다. “뭐가? 지금 돈을 받네.” 여자가 말했다.
아침이 밝아왔다. 어머니는 아침밥을 하기 귀찮다며 즉석밥을 사가면 어떨까 하고 중얼거렸다. “그것까지 사면 오늘 오빠 일당은 없을걸요.” 고모가 대신 자기가 아침밥을 하겠다고 말했다. 교대를 할 아르바이트 학생이 십 분 늦게 도착했다. 여자가 캐러멜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복수가 성공하면 반드시 이걸 먹을게.” 그 순간, 나는 여자가 정말로 사기꾼을 찾아 멋지게 복수를 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만약에 잡히면 제가 초콜릿을 사가지고 면회 갈게요.” 여자와 나는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무단횡단을 두 번 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왜 날마다 편의점에 온다니?” 현관문을 열자마자 할머니가 물었다. “몰라요.” 우리는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