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전만 해도 여자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아무리 늦어도 아침 여덟시 삼십분까지 출근을 했고, 일주일에 세 번은 야근을 했고, 돼지고기를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직장 동료들과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며 상사의 험담을 했다. 여자는 살면서 제가 아는 누구랑 닮았네요, 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여자는 지극히 평범했고, 그 평범한 얼굴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심지어 입사 면접시험에서도 차대리 닮았네, 혹시 자매인가? 하는 질문을 받았다. 여자는 평소처럼 그 소리 백번째예요, 라는 말이 나올 뻔했지만 꾹 참았다. “입사하게 되면 꼭 그분을 언니로 삼겠습니다.” 면접관들이 여자의 말에 웃었다. 여자의 어머니는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고 그 충격으로 쓰러져 칠 년을 자리에 누워 지냈다. 여자의 어머니의 손에는 늘 효자손이 쥐어져 있었다. 여자의 어머니는 그 효자손으로 텔레비전 전원을 켰고, 전화가 오면 전화기의 통화 버튼을 눌렀고, 개미가 보이면 손가락 모양으로 구부러진 대나무 끝으로 개미의 길을 막았다. 그리고 효자손으로 발바닥을 긁으면서 늘 똑같은 말을 했다. “세상이 우리 편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 그리고 등 좀 긁어라.” 여자의 어머니는 효자손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지만 정작 등만을 긁지 않았다. “나도 자식 손이 있는데 왜 효자손으로 등을 긁냐? 거기, 그래, 그 아래. 아 시원하다.” 여자는 어머니의 등에 난 손톱 자국을 보면 어렴풋이 자신의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이 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여자는 등을 긁으면서 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방에서 벗어났어요?” 작은삼촌이 물어보았다. 여자가 후루룩 소리가 나게 라면 국물을 마셨다. 후루룩.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소리였다. 아기였을 때 그 소리를 들었다면 밤에 잠을 자다 오줌 따윈 싸지도 않았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후로, 오랫동안, 쓸쓸한 기분이 느껴지면 나는 늘 여자가 국물을 마시며 냈던 그 소리를 생각했다. 아버지가 말없이 다가와 김밥 두 줄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나는 김밥을 사발면 안에 넣고 밥알에 국물이 스며드는 것을 보았다.
여자는 퇴근길에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던 아이의 교통사고를 목격했다. 그날 여자는 두 정거장 전에서 미리 내렸다. 날이 좋은 날이면 여자는 종종 그렇게 몇 정거장 앞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곤 했다. 여자가 커브 길을 돌았을 때, 119 구조대원이 트럭에 몸이 깔린 아이를 구하고 있었다. 흰색의 개는 저만치 떨어진 곳에 누워 있었는데, 숨을 쉴 때마다 뒤쪽 다리가 들썩였다. 구조대원들이 아이의 머리에 붕대를 감고 들것으로 옮겼다. 아이는 의식이 없는 듯했다. 그때 여자는 자기도 모르게 죽었을 거야, 하고 중얼거렸다. 혼잣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자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컸고,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여자를 쳐다보았다. 지팡이를 짚고 있던 할아버지가 여자를 보며 혀를 찼다. 들것이 구급차에 실리는 순간, 여자는 아직 바닥에 붙어 있는 검은 그림자를 보았다. 그림자는 작았다. 방금 구급차에 실려간 아이처럼. 여자는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해가 지고 있었고, 그래서 여자의 그림자는 개가 누워 있는 곳까지 길게 드리워졌다. 개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여자는 개도 곧 죽을 것임을 알았다. 여자는 점점 차가워지던 어머니의 발이 떠올랐다. 여자의 어머니는 잠을 자다 죽었다. 여자는 잠결에 어머니의 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여자는 자신의 발을 어머니의 발에 갖다댔다. 그러고는 여자는 아침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았다. 보일러가 꺼진 거야. 그 말만을 중얼거리면서. 교통사고를 목격한 날 여자는 즐겨 보던 드라마도 보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늘 그렇듯, 다음날, 알람에 맞춰 일곱시에 일어났다. 냉동실에서 식빵 두 쪽을 꺼내 버터를 발라 프라이팬에 구웠다.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냄새를 한번 맡아본 다음 마셨다. “그러고 출근을 했는데 과장이 뭐라 그랬는지 아세요?” 우리 식구들은 끄트머리만 남은 김밥을 내려다보았다. 고모가 김밥을 집으면서 되물었다. “뭐라 했는데요?” “어제 왜 결근했어? 물론 전 결근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여자는 과장에게 오늘이 무슨 요일이냐고 물었고, 과장은 수요일이라고 답해주었다. 여자는 달력을 보았다. 탁상달력에는 월요일에 동그라미가 쳐 있고 ‘우수사원, 동남아 여행’ 이라는 메모가 보였다. 여자는 분명 전날 여행사로 전화를 해서 우수사원으로 선정된 사람들에게 연말 선물로 지급될 동남아 부부여행권을 예약했었다. “화요일은 도대체 어디 간 걸까요?” 고모는 혹시 이십사 시간을 잠을 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저도 애인과 헤어지면 그렇게 스무 시간씩 잠을 자곤 하거든요.” 여자가 설마, 한 번도 안 깼을까요? 하고 되물었다. “허리가 아팠어요?” 어머니가 물었다. 오래 잠을 자고 나면 당연히 허리가 아프고 배가 고픈 법이라고. 여자는 허리도 아프지 않았고 배가 더부룩해서 식빵 두 쪽 중 한 쪽을 먹다 남겼다고 했다. “과연, 잃어버린 화요일에 전 뭘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