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 도착해서야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호텔 예약을 안 해놓은 것은 물론이고, 가이드북조차 들고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공항 로비에 서서 당신을 믿은 내가 바보야, 하고 소리쳤다. 아버지는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기 마련이라고 했다. “그러니 나만 믿어.” 아버지는 택시를 잡고 호텔로 가자고, 가장 좋은 호텔로 가자고 말을 했다. 택시기사는 운전석의 선바이저에서 집게손가락만한 빗을 꺼내더니 룸미러를 보며 수염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오케이! 라고 소리쳤다. 호텔로 가는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는 교통사고 현장을 보았다. 도로가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거봐, 도로가 막히는 것도 똑같지, 하고 말했다.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운전기사가 다시 오케이! 했다. 차가 서서히 정체된 길을 뚫고 지나갈 때 어머니가 옆 차선을 가리켰다. “저것 봐. 사람이 죽었나봐.” 승용차와 트럭 한 대가 엉겨 있었는데, 승용차의 뒷좌석은 앞으로 밀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다. 이마에 피가 난 남자가 트럭의 운전석에 앉아 뭐라 소리를 치고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열리지 않는 승용차 문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이 얼핏 보였다. 아버지는 사람이 죽는 것도 어디나 똑같잖아, 하고 말하려다 말았다. “오케이!” 그때 택시기사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그제야 아버지는 이번 여행이 어떻게 될 것인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기사의 오케이라는 말보다 차라리 어머니의 바보라는 말을 듣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에 도착한 부모님은 사흘 동안 잠만 잤다. 아침에 눈을 뜨면 로비로 내려가 천천히 아침뷔페를 먹었고, 방이 있는 8층까지 계단을 이용해 걸어서 올라갔다. 그리고 저녁이 될 때까지 다시 잠을 잤다. 어머니는 한국으로 돌아가거든 호텔처럼 커튼을 달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커튼만 치면 언제가 낮이고 언제가 밤인지 알 수 없었다. 저녁은 호텔 맞은편에 있는 허름한 식당에서 먹었다. 어느 음식이 유명한지 알지 못한 부모님은 늘 옆 테이블에서 먹는 음식과 똑같은 것을 시켰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재료가 무엇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도 있었지만 식성이 까다롭지 않은 어머니는 남김없이 다 먹었다. 아버지는 음식을 씹다 뱉고 싶은 마음이 든 적도 있었지만 꾹 참았다. 어머니에게 나만 믿어, 라고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사흘이 지난 후, 아버지는 서점으로 가서 지도를 사왔다. 지도를 호텔 바닥에 펼쳐놓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병원을 찾아 동그라미를 그렸다. “해외토픽에 날 정도면 작은 병원은 아닐 거야.” 어머니는 국립병원을 가장 먼저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코팅을 한 신문기사를 가방에 넣고 국립병원을 찾아갔다. 아버지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남자의 이름을 말했다. 병원 안내원이 그런 환자는 입원한 적이 없다고 하자 아버지는 신문기사를 보여주었다. 안내원은 돋보기를 꼈다. 그리고 너무 작아서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남자의 얼굴을 한참 동안 보더니 노, 하고 말했다. 부모님은 지도를 펼쳐 국립병원에 가위표를 쳤다. 그후로 일주일 동안 부모님은 지도에 나와 있는 모든 병원을 찾아다녔다.
“그래서, 어디서 찾았어요?” 나는 장갑에 일어난 보푸라기를 뜯어내며 물었다. 빨아서 항아리 위에 올려놓아야겠어, 하는 생각을 하며. 엄지에 묻은 갈색 얼룩이 지워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을 하며.
“결국 남자를 찾지 못했어. 마지막 병원을 갔다 오는 날이었단다. 그날은 정말 피곤했어. 배가 고픈 우리는 호텔에 도착해 늘 가는 식당에 들렀지. 주인이 식당 문을 막 닫으려는 참이었어.” 주인은 벽에 걸린 시계를 가리켰다. 열시가 지나 있었다. 부모님은 두 손으로 배를 만지면서 배가 고픈 시늉을 했다. 주인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의자를 다시 내려놓았다. 옆 테이블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어떤 음식을 시켜야 할지 몰랐다. 식당 주인이 메뉴를 펼쳤다가 이내 덮었다. 그러더니 자기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말하고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날 부모님은 그 식당에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다른 사람들이 먹는 것도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런 음식을 먹었다. 아버지는 식당 주인에게 맥주를 권했다. 식당 주인은 맥주 한 병을 숨도 쉬지 않고 단번에 들이켰다. 부모님이 놀란 표정을 짓자 식당 주인이 벽에 걸린 사진을 가리켰다. 세 명의 남자들이 맥주병 모양의 트로피를 들고 웃고 있었다. 식당 주인은 그중 가운데 서 있는 남자가 자신이라고 말했다. 주인은 맥주 빨리 먹기 대회의 우승자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식당 주인과 대결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가 반도 먹기 전에 주인이 한 병을 비웠다. 그러자 아버지가 다시 한번! 하고 소리쳤다. 다섯 번을 진 아버지가 가운뎃손가락을 뒤로 꺾어 손목에 붙이면서 말했다. “이건 할 수 없지?” 식당 주인이 끝마디가 잘린 가운뎃손가락을 보여주면서 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두 남자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어머니는 벽에 걸린 사진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어머니는 오른쪽에 서 있는 남자가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신문을 꺼내 두 장의 사진을 번갈아보았다. “여보, 이 사람 닮지 않았어?” 식당 주인이 어머니가 가리킨 남자를 보더니 뭐라고 말을 했다. 아버지가 식당 주인에게 다시 한번 말해보라고 했다. 식당 주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부모님이 그토록 찾아다니던 남자의 이름이었다. 지난 십 년 동안 맥주 빨리 먹기 대회에서 늘 붙었다고, 자기가 다섯 번 이기고 그 남자가 다섯 번 이겼다고, 식당 주인은 말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탁 치더니 맥주 한 병을 한 번에 들이켰다. 맥주를 다 마시는 데 이 초도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