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회사는 어쩌고요? 하고 물었다. 아버지는 나를 한번 본 뒤 말했다. “휴가를 냈지.” 하지만 사실 아버지의 직장상사는 휴가를 받아주지 않았다. 이렇게 회사가 어려운데 보름이나 휴가를 내다니 제정신이야, 하고 상사는 화를 냈다. “이 회사가 제 첫 직장이에요.” 아버지는 말했다. 상사는 그래서? 하고 되물었다. 상사는 늘 그래서? 하고 되묻는 말버릇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부하직원 중 한 명은 스트레스성 원형탈모가 생기기도 했다. 아버지는 자리로 돌아와 지난 서류들과 앞으로 처리해야 할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체크해야 할 일들을 포스트잇에 적어 벽에 붙여두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아버지는 점심을 걸렀다. 상사는 자기와 같이 밥을 먹기 싫어서 점심을 거른 거라고 오해를 했고, 점심을 먹으면서 다른 동료들에게 아버지의 험담을 했다. 시원하게 속내를 말하지 않아 답답하다는 거였다. 그러다 문득 몇 달 전에 아버지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났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상사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직원들의 점심값을 모두 계산했다. 퇴근을 하기 전에 아버지는 종이를 한 장 꺼내 휴가를 가야 하는 이유를 적었다. ‘입사한 이후 한 번도 결근한 적이 없음’ 이라고 적은 후 몇 분을 망설이다 결근 옆에 괄호를 치고 지각도, 라고 적었다. 사실 지각을 한 적이 있었지만, 지하철이 고장나 늦은 것이기 때문에 지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아버지는 생각했다. 아버지는 사내 체육대회에서 달리기를 일등 했던 것, 그것 때문에 아버지가 속한 부서가 우승을 해서 십만원짜리 상품권을 받았던 것, 팔 년 전에 친절사원으로 뽑힌 적이 있었다는 것 등등을 적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이런 충고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하고 물을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힙니다. 그 소리를 듣기 싫어서라도 저는 회사를 그만두겠습니다.” 어머니는 보름 이상 휴가를 주는 회사가 어디 있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버지는 작년 여름휴가도 반납을 했었다고, 밀린 휴가를 다 챙기자면 한 계절은 쉬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나는 나를 빼놓고 여행을 가는 부모님에게 삐져서 일주일 동안이나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날, 아끼던 벙어리장갑을 여행가방에 넣어두었다. 내가 다섯 살 무렵에 끼던 장갑이었는데, 그 장갑을 끼고 최초로 눈싸움을 했었다. 눈뭉치는 아버지의 얼굴을 맞혔고, 큰삼촌의 등을 맞혔고, 할머니의 항아리를 맞혔다. 봄이 되자 나는 장갑을 빨아 항아리 위에 올려놓았다. 장갑에서 햇빛 냄새가 났고 나는 장갑을 종이에 싸서 옷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이다음에 내게도 아이가 생기면, 그때 그 아이가 이 장갑을 끼고 눈싸움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어머니는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다가 장갑을 발견했다. 그래서 한국이 몇시인지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잠결에 전화를 받은 할머니에게 어머니는 나를 바꾸어달라고 말했다. “무슨 일인데.” 놀란 할머니가 물었다. “그냥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요.” 어머니가 말했다. 할머니가 자고 있는 나를 깨우면서 그렇게 걱정이 되면 데려가지, 하고 중얼거렸다. “올 겨울엔 눈사람을 만들자.”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응, 하고 대답하고는 이내 다시 잠들었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나는 할머니에게 꿈속에서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했다고 말했다가 그게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후로도 어머니는 아무 때나 전화를 걸었다. 나는 늘 꿈인지 실제인지 헷갈렸고, 그래서 아침이 되면 할머니에게 어제 전화 통화 했어? 하고 묻는 게 일상이 되었다. 보름 후에 돌아오겠다는 부모님은 겨울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나는 혼자 눈사람을 만들었다. 고모가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혼자 만들겠다고 우겼다.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오면 나 혼자 눈사람을 만들었어요, 하고 말할 생각이었다. 부모님이 아주 많이 미안해하도록. 하지만 내 말에 어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여긴 아주 덥단다. 등에 땀띠가 났어.”
일 년 후, 부모님이 긴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키가 한 뼘은 더 자랐다고 자랑을 했다. “잔소리 할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맘 편히 키가 자랐나봐.” 내 말에 어머니가 펼쳐놓은 물건들을 다시 가방에 넣는 시늉을 했다. “그럼 다시 가?” 나는 얼른 가방에 두 다리를 밀어넣었다. “나도 데리고 간다면.” 그제야 어머니는 나를 꼭 껴안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부모님은 가방에서 커다란 비닐봉지를 꺼내더니 그걸 내게 주면서 말했다. “선물이야.” 나는 비닐봉지에 담긴 물건을 바닥에 쏟았다. 보푸라기가 인 장갑. 색이 바란 모자, 뒤축을 꺾어신은 흔적이 있는 신발. 목이 늘어난 티셔츠 등등이 있었다. “이게 뭐야?” 내가 화를 내자 아버지가 장갑을 내 손에 끼워주면서 말했다. “이 장갑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니?” 그 장갑은 투신자살을 기도한 여자 때문에 죽다 살아난 남자의 아들 것이라고 했다. “그럼, 만났어요?” 그러자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랑스럽게 응, 하고 고개를 끄떡였다.
나는 나를 빼놓고 여행을 가는 부모님에게 삐져서 일주일 동안이나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날, 아끼던 벙어리장갑을 여행가방에 넣어두었다. 내가 다섯 살 무렵에 끼던 장갑이었는데, 그 장갑을 끼고 최초로 눈싸움을 했었다. 눈뭉치는 아버지의 얼굴을 맞혔고, 큰삼촌의 등을 맞혔고, 할머니의 항아리를 맞혔다. 봄이 되자 나는 장갑을 빨아 항아리 위에 올려놓았다. 장갑에서 햇빛 냄새가 났고 나는 장갑을 종이에 싸서 옷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이다음에 내게도 아이가 생기면, 그때 그 아이가 이 장갑을 끼고 눈싸움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어머니는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다가 장갑을 발견했다. 그래서 한국이 몇시인지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잠결에 전화를 받은 할머니에게 어머니는 나를 바꾸어달라고 말했다. “무슨 일인데.” 놀란 할머니가 물었다. “그냥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요.” 어머니가 말했다. 할머니가 자고 있는 나를 깨우면서 그렇게 걱정이 되면 데려가지, 하고 중얼거렸다. “올 겨울엔 눈사람을 만들자.”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응, 하고 대답하고는 이내 다시 잠들었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나는 할머니에게 꿈속에서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했다고 말했다가 그게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후로도 어머니는 아무 때나 전화를 걸었다. 나는 늘 꿈인지 실제인지 헷갈렸고, 그래서 아침이 되면 할머니에게 어제 전화 통화 했어? 하고 묻는 게 일상이 되었다. 보름 후에 돌아오겠다는 부모님은 겨울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나는 혼자 눈사람을 만들었다. 고모가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혼자 만들겠다고 우겼다.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오면 나 혼자 눈사람을 만들었어요, 하고 말할 생각이었다. 부모님이 아주 많이 미안해하도록. 하지만 내 말에 어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여긴 아주 덥단다. 등에 땀띠가 났어.”
일 년 후, 부모님이 긴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키가 한 뼘은 더 자랐다고 자랑을 했다. “잔소리 할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맘 편히 키가 자랐나봐.” 내 말에 어머니가 펼쳐놓은 물건들을 다시 가방에 넣는 시늉을 했다. “그럼 다시 가?” 나는 얼른 가방에 두 다리를 밀어넣었다. “나도 데리고 간다면.” 그제야 어머니는 나를 꼭 껴안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부모님은 가방에서 커다란 비닐봉지를 꺼내더니 그걸 내게 주면서 말했다. “선물이야.” 나는 비닐봉지에 담긴 물건을 바닥에 쏟았다. 보푸라기가 인 장갑. 색이 바란 모자, 뒤축을 꺾어신은 흔적이 있는 신발. 목이 늘어난 티셔츠 등등이 있었다. “이게 뭐야?” 내가 화를 내자 아버지가 장갑을 내 손에 끼워주면서 말했다. “이 장갑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니?” 그 장갑은 투신자살을 기도한 여자 때문에 죽다 살아난 남자의 아들 것이라고 했다. “그럼, 만났어요?” 그러자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랑스럽게 응, 하고 고개를 끄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