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어머니는 마루에 신문을 펼쳤다. 할머니가 돋보기를 썼다. 신문지 위에 쌀을 쏟으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키가 있어야 편한데.” 할머니가 쌀벌레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키가 있다 해도 키질을 할 줄 아는 사람도 없잖니, 하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왼손으로 쌀을 한 움큼 쥐었다. 그리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손바닥 위를 기어다니는 벌레를 잡았다. 어머니의 오른쪽에는 벌레를 넣는 통이, 왼쪽에는 쌀을 담는 통이 있었다. “언제 이 많은 벌레를 다 잡아? 그냥 먹는 게 낫겠다.” 나는 어머니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쌀을 산처럼 쌓다 허물기를 반복했다. 어머니가 벌레를 고르다 말고 오줌싸개 놀이 할까? 하고 물었다. “그게 뭐야?” 나는 물었다. 어머니가 부엌으로 가더니 젓가락 하나를 들고 나왔다. 쌀을 산처럼 쌓고 그 가운데 젓가락을 꽂았다. 먼저 어머니가 쌀더미의 한쪽 귀퉁이를 퍼냈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에 이 막대를 쓰러뜨리는 사람이 지는 거야.” 그 말에 나는 가장자리에 있는 쌀알 서너 개를 손가락으로 집었다. “어머니, 얘 좀 보세요. 누굴 닮아서 이렇게 소심한 거예요?” 어머니가 쌀더미의 반쪽을 과감하게 허물어뜨렸다. 젓가락이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내 차례가 되자 할머니가 이번엔 얼마나 용기가 있는지 볼까? 하고 말했다. “치! 난 남자잖아.” 나는 어머니가 허물어뜨린 쌀더미의 반대편을 과감하게 쓸어내렸다. 동시에 할머니가 후, 하고 입바람을 불었다. 젓가락이 쓰러졌다. “넌 오늘 오줌 싸겠다.” 할머니가 웃었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다시 쌀벌레를 고르는 동안 나는 혼자서 오줌싸개 놀이를 했다. 놀이를 하다 쌀벌레가 나오면 손가락으로 벌레를 꾹 눌러 죽였다. 나는 죽은 벌레들을 신문에 실린 누군가의 얼굴 위에 올려놓았다. 벌레가 점점 많아지자 눈동자가 사라졌다. 그리고 흰 이도 사라졌다. 마침내 얼굴을 벌레로 전부 덮게 되었고 그걸 자랑하기 위해 나는 어머니를 불렀다. “엄마. 이것 봐.” 어머니가 벌레를 잡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쌀을 손바닥으로 밀어내며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어머니. 이것 봐요.” 신문에는 지구 저편에서 일어난 황당 사고가 실려 있었다. 생활고를 비관한 미혼모가 삼층 건물에서 뛰어내렸는데 하필이면 그 아래를 지나가던 남자를 덮쳤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둘 다 죽지 않았다. 남자는 어깨와 다리가 부러졌고 여자는 타박상을 입은 게 전부였다고. “이 신문 언제 거냐?” 할머니가 물었다. “세 달 전 신문인데요.” 어머니가 말했다. 삼촌의 사고 일주일 뒤에 발행된 신문이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신문을 보여주었다. “어때?”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가 뭐가? 하고 되물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기사를 읽었을 때 삼촌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누구인지 모르는 그 두 사람의 얼굴이 막연하게 떠올랐어. 도련님이 가장 먼저 생각나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는 가족인데?” 어머니는 큰삼촌의 장례식을 치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내 아들이 아니어서 다행이야. 구급차에 실려갈 때 어머니는 하마터면 삼촌들이 입원한 병원으로 후송될 뻔했다. 그때 어머니가 구급대원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전 외동딸이에요. 큰며느리고요. 그러니 우리 부모님이 있는 병원으로 가게 해주세요.” 만약 그때 그대로 후송되었다면 그 사고를 당한 사람은 큰삼촌이 아니라 나였을지도 모른다고, 어머니는 생각했다. 어머니는 장례식 중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잠자는 아버지의 발을 쓰다듬으면서 어머니는 몇 번이나 고백을 했다.
아버지는 신문을 접어 어머니의 화장대 서랍에 넣었다. 그러다 문득 이 신문이 어디에서 난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은 구독하지 않는 회사의 것이었다. 아버지는 고모에게 세 달 전 신문을 사가지고 온 적이 있는지 물었다. 고모는 큰삼촌이 죽은 이후로 지금까지 글씨가 적힌 종이는 읽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니, 하고 짧게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싫어하는 신문이다, 하고 말했다. 아버지는 치료를 마치고 다시 군대로 돌아간 작은삼촌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신문이 어떻게 해서 우리집에 오게 되었는지를 물어보았다. 작은삼촌은 아버지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형, 다리가 시큰거려, 하는 말만 계속 반복해서 말했다.
신문은 잘못 배달된 것이었다. 신문배달을 하는 소년은 28인치 청바지를 입어보는 게 소원이었다. 소년은 미숙아로 태어났다. 소년의 어머니는 사골국물에 우유를 타서 먹었다. 결혼한 지 십일 년 만에 얻은 아들이었다. 청소년이 된 소년은 뚱뚱한 자신의 몸이 싫었고, 그래서 아버지를 따라 대중목욕탕도 가지 않았다. 소년은 텔레비전에서 신문배달을 하면서 살을 뺀 남자의 사연을 보았고 그날로 신문배달 일을 시작했다. 배달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은 지독한 독감에 걸렸다. 고열에 헛소리를 하면서도 소년은 신문배달을 해야 한다고 우겼다. 소년의 집 거실에 이런 가훈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그것은 자수성가를 했던 소년의 할아버지가 손수 쓴 가훈이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그 가훈을 싫어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말을 해주었다. “니 대신 배달을 해줄게. 대신 나랑 같이 목욕탕 가야 한다.” 소년의 아버지는 우편함 옆에 세모가 그려진 집을 찾아다니며 신문배달을 했다. 우리집 우편함에도 세모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작은삼촌이 어렸을 적에 별모양을 그리려다 만 것이었다. 그래서 소년이 독감에 시달리는 동안 신문이 배달되었고, 어머니는 그것을 펼쳐보지도 않고 베란다에 쌓아두었다.
다음날 저녁, 아버지는 퇴근을 하면서 커다란 가방을 사가지고 왔다. “이건 뭐니?” 할머니가 물었다. 아버지는 식구들에게 신문에 실린 그 사람들을 만나러 가겠다고 했다. “가서 당신이 상상한 그 얼굴인지 확인해보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다시 쌀벌레를 고르는 동안 나는 혼자서 오줌싸개 놀이를 했다. 놀이를 하다 쌀벌레가 나오면 손가락으로 벌레를 꾹 눌러 죽였다. 나는 죽은 벌레들을 신문에 실린 누군가의 얼굴 위에 올려놓았다. 벌레가 점점 많아지자 눈동자가 사라졌다. 그리고 흰 이도 사라졌다. 마침내 얼굴을 벌레로 전부 덮게 되었고 그걸 자랑하기 위해 나는 어머니를 불렀다. “엄마. 이것 봐.” 어머니가 벌레를 잡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쌀을 손바닥으로 밀어내며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어머니. 이것 봐요.” 신문에는 지구 저편에서 일어난 황당 사고가 실려 있었다. 생활고를 비관한 미혼모가 삼층 건물에서 뛰어내렸는데 하필이면 그 아래를 지나가던 남자를 덮쳤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둘 다 죽지 않았다. 남자는 어깨와 다리가 부러졌고 여자는 타박상을 입은 게 전부였다고. “이 신문 언제 거냐?” 할머니가 물었다. “세 달 전 신문인데요.” 어머니가 말했다. 삼촌의 사고 일주일 뒤에 발행된 신문이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신문을 보여주었다. “어때?”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가 뭐가? 하고 되물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기사를 읽었을 때 삼촌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누구인지 모르는 그 두 사람의 얼굴이 막연하게 떠올랐어. 도련님이 가장 먼저 생각나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는 가족인데?” 어머니는 큰삼촌의 장례식을 치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내 아들이 아니어서 다행이야. 구급차에 실려갈 때 어머니는 하마터면 삼촌들이 입원한 병원으로 후송될 뻔했다. 그때 어머니가 구급대원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전 외동딸이에요. 큰며느리고요. 그러니 우리 부모님이 있는 병원으로 가게 해주세요.” 만약 그때 그대로 후송되었다면 그 사고를 당한 사람은 큰삼촌이 아니라 나였을지도 모른다고, 어머니는 생각했다. 어머니는 장례식 중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잠자는 아버지의 발을 쓰다듬으면서 어머니는 몇 번이나 고백을 했다.
아버지는 신문을 접어 어머니의 화장대 서랍에 넣었다. 그러다 문득 이 신문이 어디에서 난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은 구독하지 않는 회사의 것이었다. 아버지는 고모에게 세 달 전 신문을 사가지고 온 적이 있는지 물었다. 고모는 큰삼촌이 죽은 이후로 지금까지 글씨가 적힌 종이는 읽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니, 하고 짧게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싫어하는 신문이다, 하고 말했다. 아버지는 치료를 마치고 다시 군대로 돌아간 작은삼촌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신문이 어떻게 해서 우리집에 오게 되었는지를 물어보았다. 작은삼촌은 아버지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형, 다리가 시큰거려, 하는 말만 계속 반복해서 말했다.
신문은 잘못 배달된 것이었다. 신문배달을 하는 소년은 28인치 청바지를 입어보는 게 소원이었다. 소년은 미숙아로 태어났다. 소년의 어머니는 사골국물에 우유를 타서 먹었다. 결혼한 지 십일 년 만에 얻은 아들이었다. 청소년이 된 소년은 뚱뚱한 자신의 몸이 싫었고, 그래서 아버지를 따라 대중목욕탕도 가지 않았다. 소년은 텔레비전에서 신문배달을 하면서 살을 뺀 남자의 사연을 보았고 그날로 신문배달 일을 시작했다. 배달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은 지독한 독감에 걸렸다. 고열에 헛소리를 하면서도 소년은 신문배달을 해야 한다고 우겼다. 소년의 집 거실에 이런 가훈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그것은 자수성가를 했던 소년의 할아버지가 손수 쓴 가훈이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그 가훈을 싫어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말을 해주었다. “니 대신 배달을 해줄게. 대신 나랑 같이 목욕탕 가야 한다.” 소년의 아버지는 우편함 옆에 세모가 그려진 집을 찾아다니며 신문배달을 했다. 우리집 우편함에도 세모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작은삼촌이 어렸을 적에 별모양을 그리려다 만 것이었다. 그래서 소년이 독감에 시달리는 동안 신문이 배달되었고, 어머니는 그것을 펼쳐보지도 않고 베란다에 쌓아두었다.
다음날 저녁, 아버지는 퇴근을 하면서 커다란 가방을 사가지고 왔다. “이건 뭐니?” 할머니가 물었다. 아버지는 식구들에게 신문에 실린 그 사람들을 만나러 가겠다고 했다. “가서 당신이 상상한 그 얼굴인지 확인해보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