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울보는 원래 큰삼촌의 별명이었다. 별명을 지어준 사람은 아버지였는데, 걸음마를 시작한 큰삼촌은 맨홀 뚜껑만 보면 눈물을 터뜨렸다고 한다. 이사를 오기 전에 살던 옛집에는 대문 앞에 맨홀이 있어서 어린 큰삼촌은 밖으로 나갈 때마다 자지러지게 울었다. 할머니는 큰삼촌을 임신했을 때 혹시 맨홀 때문에 놀란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밤마다 동그랑땡이 먹고 싶었는데 한 번도 할아버지가 사다주지 않았던 일뿐이었다. 그래서 큰삼촌이 울 때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째려보면서 잠만 처잤으면서, 하고 화를 냈다. 더이상 맨홀 뚜껑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큰삼촌을 울보라고 불렀다. “그때마다 삼촌이 뭐라 했는지 아니? 형, 나중에 내가 복수할 거야. 그렇게 말했어.” 그러니까 큰삼촌이 나를 울보라고 부른 것은, 내가 정말 울보여서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넌 원래 용감한 아이야.” 아버지가 내 손바닥에 연고를 발라주면서 말했다.
아버지는 지하실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다른 집보다는 방이 많았지만 정작 숨을 곳은 없었다. 아버지는 큰삼촌을 미워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큰삼촌을 무서워했다. 큰삼촌은 아버지에게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을 물려받았다. 그 동화책을 읽은 후, 큰삼촌은 아버지의 생각을 읽어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티격태격하는 걸 구경하고 있으면, 큰삼촌이 다가와 아버지처럼 팔짱을 끼고는 말했다. “형, 지금 진짜 부모님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했지?” 아버지가 길을 걷다 멈추고 하늘을 쳐다보기라도 하면 큰삼촌은 다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나도 그래, 형.” 큰삼촌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아버지는 아이스박스의 이야기를 듣던 다섯 살 무렵의 꼬마로 되돌아가서, 동생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큰삼촌이 아버지의 생각을 알게 된 것은 동화책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책의 귀퉁이를 접어두는 버릇이 있었다. 게다가 동화책을 사주면서 할머니는 기억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밑줄을 그어두라고 일러주었다. 그건 할머니가 백과사전을 읽을 때 익힌 습관이었다. “나중에 커서 밑줄 그은 부분을 다시 읽어보렴. 그러면 네가 얼마나 자랐는지 알 수 있을 거야.” 할머니의 말을 들은 후 아버지는 오른손에 연필을 쥔 채로 책을 읽었다. 큰삼촌은 동화책을 읽다가, 밑줄 친 문장이 나오면 서너 번 반복해서 읽었다. 큰삼촌에게 독서는 다른 사람이 친 밑줄과 자신이 칠 밑줄 사이를 오가는 일이었다. 그래서 큰삼촌은 책을 반드시 두 번 이상 읽었다. 큰삼촌은 새 책보다 헌 책을, 특히 손때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책을 좋아했다. 동화책을 다 읽은 후, 큰삼촌은 노트에 아버지가 고른 문장들을 적기 시작했다. 그 덕에 큰삼촌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받아쓰기를 틀린 적이 없었다. 몇 달 후, 큰삼촌은 아버지가 고른 문장들로 이루어진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열여섯번째 생일날, 큰삼촌은 그 노트를 아버지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도 모르고 난 그애를 미워했어.” 아버지는 잠든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서 밤마다 독백을 했다. “이 집에 지하실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동화책도 버리지 않고 지하실에 두었을지 몰라.” 어디선가 곰팡이가 슨 책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햇빛이 들지 않는, 습기로 공기가 축축한, 그런 지하실에서 쪼그려 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머니는 잠들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코를 골면서 자는 척을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큰삼촌의 운동화를 몰래 버린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발을 들여다보았다. 어느 날 아침, 자기보다 더 커버린 동생을 보게 될 때의 느낌은 어떤 것일까? 어머니는 그 느낌을 상상해보려고 애썼다. 더이상 동생들이 자신의 신발을 물려 신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게 된 장남의 심정을.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 심정과 비교할 수 있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았고, 그래서 어머니는 쓸쓸하다는 감정이 정확한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발을 가만히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