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매일 큰삼촌의 방을 청소했다. 책상 서랍에서 큰삼촌의 일기가 나왔지만 할머니는 그 일기를 보지 않았다.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자식들의 책상을 뒤져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내 자식이라고 모든 걸 알 수 있는 건 아니야.” 할머니는 일기장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나도 할머니처럼 일기장 위에 손바닥을 올려놓았다. “솔직히 난 궁금해, 할머니.” 할머니가 일기를 다시 책상 서랍에 넣으면서, 그럼 아무도 안 볼 때 이 할미도 모르게 몰래 와서 보렴, 하고 말했다. “하지만……” 갑자기 할머니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하지만, 너만의 큰삼촌은 이 일기장에 없을지도 몰라.” 나는 큰삼촌의 책상 서랍에 엄지손톱만한 단추와 베지밀 병뚜껑을 넣어두었다. 그것은 큰삼촌이 사고를 당한 장소에서 주운 것들이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나는 병원 공원 벤치에 앉아 병원을 오고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뭘 보니?” 목에 보호대를 찬 남자가 물었다. 남자는 나를 장례식장에서 보았다고, 이마에 감긴 붕대를 보고 알아보았다고, 했다. 나는 눈썹 위를 가리켰다. “여섯 바늘 꿰맸어요.” “오늘은 하늘이 맑네.” 남자가 말했다. 나는 내가 벤치에 앉아 있는 동안 구급차가 여섯 번이나 지나갔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구급차를 타봤어요?” 남자가 목에 찬 보호대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것 때문에.” 남자와 나는 구름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구름 그림자가 병원 옥상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미안하다. 내가 한마디만 더 말을 걸었더라면, 그러면, 니 삼촌은 죽지 않았을 텐데.” 나는 눈썹 위에 난 상처를 남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상처가 평생 낫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니, 흉터라도 남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큰삼촌이 마지막으로 서서 하늘을 보았던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엎드려 바닥에 귀를 대보았다. “뭐 하니?” 지나가던 사람이 쪼그리고 앉아 내게 물었다. “물소리가 들려요.” 내가 거짓말을 했다. 언젠가 큰삼촌과 같이, 그렇게 바닥에 귀를 댄 채 마당에 엎드린 적이 있었던 것만 같았다. 큰삼촌이라면 물소리가 들린다고 말해주었을 것만 같았다. 나는 희미하게 남아 있는 핏자국 위에 단추가 하나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단추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그 순간, 누군가의 발에 차인 병뚜껑이 내 앞으로 굴러왔다. 나는 그 병뚜껑도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삼촌의 책상 서랍을 열 때마다, 큰삼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단추와 병뚜껑을 보았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들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나는 큰삼촌의 야구모자를 물려받았다. 모자는 컸다. 눈을 덮을 정도로. 평소에는 챙을 뒤로 돌려 거꾸로 모자를 썼지만, 불리한 일이 생길 때면 똑바로 모자를 썼다. 그리고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을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숙제해라, 하고 말하면 모자를 푹 눌러쓴 뒤 뭐라고? 안 들려! 하고 대답을 하곤 했다. 그 모자를 쓰고 있으면 아무것도 무서운 게 없었다. 가게에 들러 초코파이 하나를 훔쳐보았는데 심장이 떨리지 않았다. 다음날 초코파이를 하나 더 훔쳤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나는 훔친 초코파이를 큰삼촌의 옷장에 숨겨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게 주인 할아버지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이제 그만해라.” 나는 주인 할아버지의 눈을 보았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눈빛이었다. 나는 얼른 모자의 챙을 앞으로 돌렸다. “그런다고 안 보이는 건 아니지.” 주인 할아버지는 내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나도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용서하는 게 아니야. 하루에 한 시간씩 일주일 동안 일해라.” 그날 밤, 나는 초코파이가 옷장 가득 차 있는 꿈을 꾸었다. 옷장 문을 열면 초코파이가 와르르 내 앞으로 쏟아지는 꿈을. 잠에서 깬 나는 맨발로 마당을 서성였다. 내가 처음으로 마당을 걷던 그 발자국을 따라서. 나는 할아버지의 역도를 들어보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큰삼촌의 오토바이에 올라타보았다. 하지만 핸들까지 손이 닿지 않았다. 치! 나는 하늘을 향해 침을 뱉었다. 하지만 그 침은 이내 내 얼굴로 떨어졌다. 나는 마당의 사과나무 가지를 꺾었다. “이 나쁜 놈 도둑질이나 하고!” 할아버지 목소리를 흉내내며 나는 나를 꾸짖었다. 사과나무 가지 하나로 손바닥을 내리쳤다. 손바닥이 아팠고 눈물이 났다. 그 순간 이런 울보, 하는 큰삼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나는 큰삼촌이 한 번도 내 이름을 불러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이제 더이상 울보도 아니야.” 나는 다시 한번 나뭇가지로 손바닥을 때렸다. 나는 생각했다. 울보는 예전의 일이라고. 이젠 아니라고. 하지만 큰삼촌의 기억에 내가 울보였다면 당분간은 삼촌의 기억대로 울보로 남아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