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입구에는 ‘어디 갔어요? 족발 먹고 싶어요’라고 적힌 쪽지가 붙어 있었다. 외할머니는 셔터 문을 반쯤만 올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불을 켜자 수십만, 아니 수백만 마리의 바퀴벌레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일주일 전이었다면 놀랐겠지만, 외할머니는 이제 더이상 바퀴벌레 따위에 가슴이 철렁이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냈다. 그리고 먹던 음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치우지 않은 탁자에 앉았다. 일주일 전, 그러니까 여행을 떠나기 전날, 마지막 손님들이 족발을 먹던 상이었다. 만취상태로 가게를 찾은 세 명의 청년들은 새벽 네시가 되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외할머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딸과 같이 여행을 가게 되었다며 청년들을 내쫓았다. 화난 청년들은 술값을 주지 않고 떠났다. 외할머니는 세 개의 잔에 모두 술을 따랐다. 그리고 차례대로 술을 마셨다. 족발에서 쉰내가 물씬 풍겼다. 상추는 짓물러 있었다. 소주 한 병을 다 마신 뒤 외할머니는 의자를 붙이고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던, 난방이 되지 않던 식당에서 밤을 보내던, 그 시절에 대해 생각했다. 그때 외할머니를 견디게 한 것은 몇 달 후면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는 사람이 한 명 생긴다는 뜻이었으니까. 외할머니는 시계를 한번 올려다본 뒤,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울리자, 할머니는 수화기에 손을 올려놓은 채, 이게 둘째의 전화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 저 늦어요.” “술 조금만 마시고.” “네.” 한 번만 더 엄마 저 늦어요, 하는 말을 들어볼 수 있다면,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래, 천천히 와라, 하고 대답할 텐데. 할머니는 수화기를 들었다. 전화기 저편에서 사돈이에요? 하고 외할머니가 말했다. “네.” 할머니가 대답했다. “이 세상에 우리를 아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요?” 대뜸 외할머니가 물었다. 외할머니는 다시는 찾아가지 않은 고향집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고향집 마룻바닥과, 해바라기가 열 그루나 있던 마당과, 소용돌이를 그리며 물이 빠지던 수챗구멍에 대해. “전 다 기억하는데 고향에는 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외할머니는 잠자리를 잡다 넘어져 다친 무릎의 상처는 아직도 그대로라고, 심지어 아직까지 그 상처가 가렵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일곱 살 때 다친 상처인데도 그래요. 그런데…… 전 우리 가족에겐 죽은 사람일까요?” 할머니는 큰삼촌이 중학생이었을 때 종아리를 때린 적이 있는데 자꾸 그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단지 수학시험을 못 봤을 뿐이었어요.” 할머니는 목이 메어왔다. 외할머니는 할머니가 실컷 울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삼십 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났다. 코 푸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내 사돈 아직 거기 있어요? 하고 할머니가 물었다. “그래요. 여기 있어요.”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아침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했다. 큰삼촌이 얼마나 늦게 걸음을 걷기 시작했는지, 어머니가 얼마나 늦게까지 젖을 먹었는지, 같은 이야기들을. “잊지 마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기억하는 거예요.” 전화를 끊기 전에 외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는 걸레를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 큰삼촌의 오토바이를 닦았다. 큰삼촌이 오토바이를 처음 몰던 날, 할머니는 오토바이가 중앙선을 넘어온 트럭에 치이는 꿈을 꾸었다. 만약 자신보다 앞서 죽는 자식이 있다면 그건 둘째가 아닐까, 하는 어렴풋한 예감에 사로잡히곤 했는데, 그런 이유 때문에 할머니는 큰삼촌이 오토바이 모는 것을 싫어했다. 오토바이를 닦은 후, 할머니는 사과나무 아래 떨어진 나뭇잎 하나를 주웠다. 할머니는 그 나뭇잎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아침밥을 차렸다. 그리고 괘종시계가 여덟 번 울리기를 기다린 다음 식구들을 깨웠다.
식탁에는 밥그릇이 여덟 개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할머니에게 왜 밥을 여덟 그릇이나 펐는지 묻지 못했다. 나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눈짓을 보내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가 고모에게 눈짓을 보냈고, 고모가 작은삼촌에게 눈짓을 보냈고, 마침내 작은삼촌이 내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나는 아무도 손대지 않은 밥그릇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할머니, 저 배고픈데 한 그릇 더 먹어도 돼요?” 그러자 할머니가 니 큰삼촌한테 물어보고 먹어라, 하고 대답했다. 그 순간,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할머니의 이마를 만졌다. “열은 없으니 걱정 마.” 할머니가 말했다. “기억하면 죽지 않아. 사돈이 그랬다.” 내가 죽은 큰삼촌의 나이를 넘어섰을 때, 그때까지, 할머니는 큰삼촌을 기억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의 독백이 점점 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