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후 큰삼촌의 사망기사가 같은 지면에 실렸다. 가족사진을 찍었던 기자는 병원 입구에 서서 그 기사를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기자의 카메라에는 사흘 전에 찍은 가족사진이 아직 남아 있었다. 기자는 그 카메라로 폴리스라인이 쳐진 사고현장을 찍었다. 바람이 불자 카메라 앵글 안으로 종이컵 하나가 들어왔고, 기자는 그 하얀색 종이컵이 피가 굳은 아스팔트 위를 굴러가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 종이컵이 큰삼촌이 마지막으로 들고 있었던 물건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종이컵 테두리가 잘근잘근 씹혀 있는 것을 본 사람도 없었다.
큰삼촌이 입원한 병실에는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보는 아저씨가 있었다. 어찌나 볼륨을 크게 틀어놓는지 큰삼촌은 두통이 다 생길 지경이었다. 게다가 큰삼촌의 침대는 텔레비전 바로 앞에 놓여 있었다. 소리 좀 줄여달라고 부탁을 하자 아저씨는 한쪽 귀가 멀어서 잘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큰삼촌은 텔레비전 소리를 못 견디겠을 때마다 그 아저씨를 찾아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참았다. 병실 문이 열릴 때마다 가장 먼저 고개를 돌리는 걸로 보아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틀림없다고 큰삼촌은 생각했다. 큰삼촌이 병실 밖으로 돌아다니게 된 것은 그래서였다. 큰삼촌은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어느 자판기 커피가 가장 맛있는지를 찾아보았다. 사고가 난 날, 큰삼촌은 병원 로비에 있는 자판기의 커피를 뽑아들고 병원 밖으로 나갔다. 벤치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실 때 목에 보호대를 찬 남자가 옆에 앉았다. 큰삼촌은 남자와 시시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이를테면, 비가 올 때가 됐죠? 그러게요, 가뭄이라 큰일이에요, 하는 말들을. “간호사 휴게실 가는 길에 있는 자판기 커피가 이 병원에서 제일 맛있어요.” 큰삼촌이 말했다. 남자가 담배를 한 모금 빨면서 고개를 끄떡였다.
큰삼촌의 사고현장을 가장 먼저 목격한 남자는 정형외과 치료 외에 정신과 치료를 병행해야 했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남자는 어느 날 밤에 큰삼촌이 해주었던 말이 문득 떠올랐고 그래서 간호사 휴게실을 찾아갔다. 자판기 앞에 섰을 때 남자는 동전을 갖고 오질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간호사 휴게실 문을 두드렸고, 마침 동전이 없는 간호사는 천원짜리 한 장을 주었다. 남자는 커피를 한 잔 뽑아 마셨다. 다른 커피와 똑같은 맛이었다. 그래서 남자는 뭐가 맛있다는 거요, 하고 중얼거렸다. 남자는 커피 한 잔을 더 뽑았다. 그러고 다시 간호사 휴게실 문을 두드렸다. 돈을 빌려주었던 간호사에게 커피 한 잔과 남은 동전을 돌려주었다. “이 밤에 잠도 안 자고……” 간호사가 말끝을 흐렸다. “잠이 안 와요.” 남자가 말했다. “저도요.” 간호사가 말했다. 간호사는 남자에게 얼마 전에 자신이 담당한 환자가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신 탓이 아니에요.” 남자가 간호사에게 말했다. 하지만 간호사가 잠을 못 이루는 이유는 자살한 환자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 아니었다. 걷지도 못하는 환자가 어떻게 해서 병원 옥상까지 올라갔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벤치에서 남자와 몇 마디를 주고받은 큰삼촌은 목발을 겨드랑이에 끼고 일어났다. “다리보다 겨드랑이가 더 아파요.” 큰삼촌이 웃었다. 큰삼촌은 쓰레기통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쓰레기통 입구가 열려 있었고 그래서 큰삼촌은 종이컵을 던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다 문득 온 식구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참았다. 만약 종이컵이 쓰레기통 밖으로 떨어지면 재수가 없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므로. 큰삼촌은 종이컵 바닥에 남은 커피를 마저 마셨다. 한 모금도 되지 않았지만, 큰삼촌은 커피를 마시는 척하면서, 계속 하늘을 보았다. 하늘이 맑네. 큰삼촌은 중얼거렸다. 사실, 하늘은 맑지도 않았다. 구름이 병원 쪽으로 서서히 몰려오는 중이었다. 그때 누군가 병원 옥상을 가리키며 어, 라고 소리쳤다. 큰삼촌은 옥상에 서 있는 물체가 무엇인지 깨달을 시간도 없었다. 창가에 서서 팔짱을 낀 채 하루 종일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삼촌이었지만, 정작 중요한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
김대리가 응급실에서 만났던 전신에 화상을 입은 여자는 하룻밤을 넘기지 못한다는 간호사의 예상과 달리 다음날 눈을 떴다. 병원 옥상에 서서 여자는 병원 건너편 도로를 보았다. 신호등이 바뀌고 다섯 명이 지나갔다. 다음 신호에는 여덟 명. 그다음 신호에는 한 명. 제발 한 명도 도로를 건너지 않기를 여자는 바랐다. 신호가 열 번 바뀔 때까지 한 번이라도 길을 건너는 사람이 없다면, 그러면, 죽지 말자. 여자는 생각했다. 신호가 열 번 바뀌자 다시 한번 열 번을 기다렸다. 그러다 누군가 자신을 가리키며 어! 하고 소리쳤다. 그 순간 여자는 모든 게 무서워졌다. 여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이 거울인 방에 서 있는 것처럼 붕대를 친친 감은 수십 명의 사람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여자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날았다.
기자는 발밑으로 굴러온 종이컵을 집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기자는 우리 식구들에게 자신의 부모님 이야기를 했던 것을 후회했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으므로. 천원짜리 지폐가 돌고돌아 제자리를 찾는 데는 삼 년이 필요했지만 그 행복이 무너지는 데는 단 오 분도 걸리지 않았다. 마치 큰삼촌의 어깨 위로 떨어진 누군가의 몸뚱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