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알려준 병원에 아버지는 없었다. 김대리는 화상으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환자가 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응급처지가 끝날 때까지 그 곁을 지켰다. 간호사가 남편이세요? 하고 물었고, 그제야 그 환자가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부모님에게 연락하세요. 오늘을 넘기기 힘들지 몰라요.” 그 말을 들은 김대리는 화장실 좀,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대리는 응급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부상자들이 어느 병원으로 흩어졌는지를 물어보았고, 모두 다섯 군데의 병원으로 나뉘어졌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네번째 병원에서 아버지를 찾아냈다.
아버지는 이마에 세 바늘을 꿰맨 것이 전부였다. 오른쪽 어깨가 부러진 줄 알았는데 단순히 뼈가 탈골된 거였다. 김대리는 아버지에게 펑크나 나라, 라고 욕을 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내가 미쳤나봐.” 김대리는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오른쪽 바퀴가 터지지 않았다면 차는 가드레일을 들이박지 않았을 거고, 그러면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봉고는 앞에 달리던 화물차를 정면으로 들이박았을 것이다. 봉고 뒤에는 결혼을 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은 신혼부부가 탄 승용차가 따라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10톤 트럭이 달려오고 있었다. 봉고가 언덕 아래로 구르던 그 순간, 뒤따라오던 승용차는 두 대의 트럭 사이에 끼어 종잇장처럼 구겨져버렸다. 화물차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이내 승용차로 불길이 옮아붙었고 누가 남편이고 누가 부인인지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타버렸다. “어쨌든, 타이어가 터져서 이렇게 살았잖아.” 아버지는 말했다.
김대리는 병실을 돌아다니며 식구들에게 살아 있어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식구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나와 어머니가 같은 병실을 썼고, 할머니, 외할머니, 고모가 같은 병실을 썼고,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같은 병실을 썼다. 할아버지는 왜 병실이 다르냐고 항의를 했다가 간호사에게 그게 얼마나 배부른 소리인지 아느냐는 잔소리를 들었다. “할아버지, 오늘밤 죽을 고비를 넘겨야 하는 환자가 다섯 명은 넘어요. 아시겠어요?”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비로소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단 한 번도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던 할아버지였지만, 병원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보고 고맙습니다, 라고 외쳤다.
큰삼촌과 작은삼촌은 아예 병원이 달랐다. 작은삼촌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던 소방관이 뒤집힌 봉고에서 식구들을 구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똑같은 말을 다섯 번도 넘게 말했다. “모두 같은 병원으로 가게 해줘요.” 하지만 소방관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화재 현장에서 동료 네 명을 한꺼번에 잃고 난 후부터 소방관은 어떤 것도 섣불리 약속하지 않았다. 심지어 괜찮습니다, 저희만 믿으세요, 하는 말도 하지 않았다. 김대리는 큰삼촌과 작은삼촌에게도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와 김대리는 택시를 타고 삼촌들이 입원한 병원으로 갔다. 그곳은 김대리가 처음으로 찾아갔던 그 병원이었다.
큰삼촌은 조수석의 의자가 불에 타지 않았다면 자기가 거기에 앉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탈 때면 큰삼촌은 조수석에 앉아 지도를 보고, 라디오 채널을 바꾸고, 음악테이프를 갈아 끼우는 일을 했다. 봉고에서 마지막으로 구출된 사람은 큰삼촌이었다. 소방관은 안쪽으로 움푹 파인 조수석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저기 아무도 안 앉았어요?” 큰삼촌이 고개를 끄덕였더니 소방관이 정말 기적이에요, 하고 말했다. 그래서 큰삼촌은 김대리가 찾아오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요. 의자를 태웠어요. 그런데, 의자가 안 탔으면 어쩔 뻔했어요.” 김대리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삼촌들에게 의자에 어째서 커피 얼룩이 생겼는지에 대해 말해주었다. 봉고를 운전할 때마다 그 여자가 생각나 괴로웠다고. 한번은 정지신호를 못 보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를 칠 뻔도 했다고. “그러니까 잘 태웠어요.” 김대리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