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작은삼촌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함부로 움직이면 평생 불구가 될 수 있어.” 어릴 적 할아버지의 장래희망은 소방관이 되는 거였다. 하지만 효자였던 할아버지는 그 꿈을 증조할머니에게 이야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쉬지 않고 식구들의 이름을 불렀다. 할머니는 지금까지 할아버지가 이렇게 듬직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할머니는 바퀴벌레를 죽이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결혼한 것을 후회하곤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가까운 온천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한 시간 후에 온천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 남탕과 여탕으로 들어갔다. 십 분이나 지났을까. 직원이 할머니의 이름을 부르며 남편 되는 분이 밖에서 기다려요, 하고 말했다. 할머니는 몸의 물기도 제대로 닦지 못한 채 다시 옷을 입었다. “왜, 무슨 일이야?” 할아버지가 온천 안에 문신을 한 남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무서워서 난 목욕 못 하겠어.” 할머니는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당신 이마.” 할아버지가 괜찮아, 이까짓 것, 하고 대답했다.
외할머니는 눈을 감고 아침에 보았던 일출을 떠올려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면 다시 소원을 빌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해가 떠오르는 풍경은 그려지지 않았고, 집에 돌아갈 걸 알고 있으면 여행이라고 말하던 소녀의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어머니는 집에 돌아가면 가족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괘종시계를 없애고 거기에 가족사진을 걸어야겠어. 어머니는 왠지 그 괘종시계가 싫었다. 시계가 울릴 때마다 어머니는 숨을 죽이고 종이 몇 번 울리는지 숫자를 세었다. 그러다보면 하루가 아주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등학교에 다닐 적에 어머니는 버스정류장 앞에 있던 사진관에서 사진을 훔친 적이 있었다. 반장의 가족사진이었는데, 사진관 입구에 진열되어 있어서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은 누구나 볼 수 있었다. 어머니의 기억에 의하면 사진은 거의 삼 년이 넘게 걸려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반장은 사진관 주인에게 그 사진을 치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사진관 주인은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공짜로 사진을 찍어준 거 아니니. 사진 값 가지고 와라.”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반 아이들이 밤 12시에 버스정류장에서 모이기로 했다. 누군가가 오빠가 쓰던 아령을 들고 왔다. 유리를 깨려는 순간, 에디슨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이가 맞은편 도로에서 기다려, 하고 소리쳤다. 차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지만 에디슨은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렸다. 에디슨 옆에는 에디슨하고 똑같이 생긴 아저씨가 서 있었다. “우리 아버지야!” 에디슨의 아버지가 주머니에서 열쇠뭉치를 꺼냈다. 일 분도 지나지 않아서 사진관 문이 열렸다. “참고로 우리 아빠 도둑은 아니야.” 에디슨이 말했다. 반장에게 가족사진을 돌려주면서 어머니는 나도 아버지가 없어, 하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 말은 반장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이스박스에 갇혔을 때처럼 두 손을 가랑이 사이에 집어넣고 잠을 자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꾸만 눈이 감겼고 그때마다 할아버지가 첫째야, 하고 불렀다. 큰삼촌은 옥상 난간에 서서 떨어지면 어떤 기분일까, 하고 상상하던 어느 날이 떠올랐다. 이제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게요. 큰삼촌은 기도했다. 분홍색 잠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보고 싶어졌다. 떠나보내지 않았다면 여행도 같이 왔을 텐데, 그랬다면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식구들을 보살펴주었을 텐데, 하고 큰삼촌은 생각했다. 고모는 라디오에서 이와 비슷한 사연을 들은 것 같았다. 고모는 편지지에 온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한 명도 다치지 않았다는 사연을 적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첫 문장을 뭐라고 하지?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온 꿈을 꾸었다고 할까? 아니야. 고모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진부해. 나는 자꾸만 침이 고였다. 침을 삼킬 때마다 피 맛이 났다. 침을 뱉고 싶었지만, 고모의 어깨 위에 내 얼굴이 포개져 있어 그럴 수가 없었다. 며칠 후, 나보다 먼저 퇴원을 하면서 고모는 말했다. 내가 숨을 쉴 때마다 어깨가 따뜻해졌다고. 그러면 안심이 되었다고.
마침내 구급차들이 도착을 했다. 소방관들이 정신없이 뛰었다. 작은삼촌이 소방관들을 따라 오른발을 들고 앙감질로 뛰었다. “좀 도와주세요.” 소방관 한 명이 뒤돌아 작은삼촌을 보더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더 급한 사람도 많아요, 하고 말했다. 작은삼촌은 들고 있던 지팡이를 바닥에 꽂고는 왼발로 힘껏 바닥을 굴렀다. 작은삼촌은 장대높이선수처럼 날아올랐다가 이내 바닥에 떨어졌다. 앞서 달리던 소방관이 놀라 제자리에 섰다. 작은삼촌이 재빨리 소방관의 다리춤을 붙잡았다. “제 말을 들어보세요. 저 아래에 차가 있어요.” 작은삼촌이 말했다. 그제야 소방관이 몸을 돌려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