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난 바닷가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외할머니는 죽어서 딱딱해진 불가사리를 집어들었다. 그제야 외할머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를 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도 하나도 낯설지가 않았다. 아주 오래 전, 바다에 발을 담그고, 바위에 물보라가 이는 것을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있었던 것만 같았다. 외할머니는 신발을 벗고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할머니는 외할머니가 바다에 발을 담그는 것을 보더니 나도, 하며 양말을 벗었다. 양말은 구멍이 나 있었다. “엄마, 이런 거 신지 말라니까.” 고모가 잔소리를 했다. 나는 할머니 몰래 양말을 모래사장에 묻었다.
작은삼촌은 모래사장에 누워 이대로 휴가가 영원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고모는 조개껍질을 주우러 다녔다. “혹시 그걸로 목걸이를 만들려는 건 아니지?” 내가 물었다. 고모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두꺼비집 만들기 놀이를 했는데, 손을 빼기만 하면 곧 모래가 무너졌다. 열번째 집을 무너뜨리자 책을 읽던 큰삼촌이 바보, 하고 중얼거렸다. “큰삼촌이 나보고 바보래.” 나는 아버지에게 고자질을 했다. “큰삼촌도 어릴 때 바보였어. 열 살 때까지 신발 오른짝 왼짝도 구별 못 했다니까.” 큰삼촌은 그건 일부러 그런 거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내 신을 벗겨 반대로 신겨주었다. “걸어봐.” 나는 삼촌이 시킨 대로 걸어보았다. 모래사장에 오른쪽 왼쪽이 반대로 찍힌 발자국이 새겨졌다. “뭔가 마음이 편해지지 않아?” 큰삼촌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발가락 아파.” 큰삼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큰삼촌이 읽던 책을 베고 모래사장에 누웠다. “옆에 와서 누워봐.” 나는 큰삼촌의 오른팔을 베고 누웠다. “삼촌은 평생 신발을 거꾸로 신을 수도 있었어.” 큰삼촌은 열 살 때 가출을 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용돈을 받으면 동생들을 학교 앞 만홧가게에 데려가주곤 했다. 큰삼촌은 그 만홧가게에서 한글을 배웠다. 다리를 저는 여자와 얼굴이 심하게 얽은 곰보인 남자가 가게 주인이었다. 부부가 가게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남자와 결혼을 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리를 저는 것 말곤 흠잡을 데 없이 예뻤거든.” 그때 큰삼촌은 고아인 소녀가 백만장자와 사랑에 빠지는 만화를 읽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만화를 즐겨 읽는 큰삼촌을 기지배라고 놀렸다. 큰삼촌은 겁이 많았다. 언젠가 혼자 만홧가게를 간 적이 있었는데 옆자리에 앉아서 만화를 읽던 중학생이 너 돈 있냐? 하고 묻자 바로 주머니에 있는 돈을 준 적도 있었다. 자기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마다 큰삼촌은 신발을 바꿔 신었다. 그러고 두 발을 내려다보면 어릿광대처럼 느껴졌고, 마음이 편해졌다. “난 잘 모르겠어. 마음이 편해지기는커녕 우스꽝스러울 것만 같아.” 나는 몸을 돌려 큰삼촌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큰삼촌은 눈이 커다란 소녀들이 나오는 만화를 좋아했다. 그런 만화를 읽을수록 큰삼촌은 만홧가게 주인 여자가 좋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는데.” 만화를 읽고 있는데 어디선가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손에는 주걱이 들려 있었다. 여자의 입에서는 삼촌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아주 이상한 욕들이 흘러나왔다. 곰보 남자가 의자를 집어 가게 밖으로 던졌다. 가게 구석에서 싸움을 구경하던 큰삼촌은 마침내 곰보 남자가 가게 입구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할 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읽던 만화책을 바닥에 내려놓고 주걱으로 자기 가슴을 내리치던 주인 여자의 곁을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그때였어. 그렇게 그악스럽게 싸우던 여자가 너무나 상냥한 목소리로 내게 말하는 거야. 내일 또 와라. 오늘은 돈 안 받으마.” 큰삼촌은 그 여자의 상냥한 목소리가 어찌나 무서웠던지 뒤도 안 돌아보고 뛰었다. “내가 가출을 한 날은 내 생일이었어.” 아침에 미역국을 먹는데, 온 식구들이 큰삼촌을 둘러싸고 서서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심지어 고모는 오빠 생일 축하해, 하며 볼에 뽀뽀를 해주기도 했다. 그때 큰삼촌의 머릿속에는 만홧가게 여자의 상냥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날 큰삼촌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신발을 거꾸로 신고 하염없이 걸었다. 그러다 문이 열린 정미소를 발견했고 천장까지 쌓인 쌀자루 사이에 몸을 숨겼다. 큰삼촌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벽돌집을 뚫어지게 보았다. 저 집의 창문이 열리고 누군가 밖을 내다볼 때까지 가만있어봐야지. 하지만 저녁이 되어도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고, 큰삼촌이 다시 잠에서 깨었을 땐 누군가 정미소의 문을 잠그고 퇴근을 한 후였다. “그 빈 정미소에서 혼자 노래를 불러봤어. 아침에 식구들이 불러준 생일축하 노래였지.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생일파티였지.” 큰삼촌은 할아버지에게 종아리 열 대를 맞았다. 종아리를 맞는 순간,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났고, 그래서 큰삼촌은 자기가 아직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더이상 신발을 거꾸로 안 신기로 한 거야.”
외할머니와 할머니는 바다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사이 바닷물이 점점 차오르기 시작했고, 파도가 한번 일자 모래사장에 벗어둔 외할머니의 구두가 바다에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구두!” 할아버지가 소리치며 바다로 달려갔다. 외할머니가 구두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외할머니의 가슴이 바다에 잠겼다. 외할머니가 손을 뻗었다. 구두가 손끝에 닿았다가 다시 파도에 밀려 멀어졌다. 외할머니가 앞으로 한걸음을 더 내디디려하자 할머니가 외할머니의 손을 잡아당겼다. 다시 파도가 쳤고 외할머니와 할머니가 물에 잠겼다가 떠올렸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손을 잡아 물 밖으로 잡아당겼다. 바닷가에 서서 외할머니와 할머니는 부둥켜안고 울었다. 구두는 이제 보이지도 않았다. “또 사드릴게요.” 어머니가 말했다. 아버지가 외할머니를 업었다. “봉고까지 업어다 드릴게요.” 나는 외할머니의 엉덩이를 뒤에서 밀면서 배고프니 빨리 가요, 할머니, 하고 말했다. 내 말에 모두들 아이스박스에 들어 있는 소고기를 생각했다. “고기는 우리가 구울게요.” 큰삼촌과 작은삼촌이 어깨동무를 했다. 나도요, 하고 내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