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도로는 막히기 시작했다. 앞차의 브레이크 등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오줌이 마려왔다. 나는 배에 힘을 주고, 손바닥으로 방광을 꾹 눌러보았다. 몇 분은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휴게소 아직 멀었어?” 나는 옆에 앉은 작은삼촌에게 물었다. “왜 배고파? 이거라도 씹어.” 작은삼촌이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주었다. 나는 껌을 씹으면서, 쌍시옷 자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생각했다. 오줌이 마려운데 바로 화장실에 갈 수 없다면 오줌이 마렵다는 생각 말고 다른 생각을 해야 한다고, 언젠가 선생님이 말해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쏘리’라는 단어밖에 생각나질 않았다. 작은삼촌은 내게 자주 꿀밤을 먹였는데, 내가 머리를 만지며 울먹이려고 하면 ‘쏘리’ 하고 대답하곤 했다. 나는 다리를 꼬며 계속 쌍시옷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생각했다. 그때, 큰삼촌이 내 이마에 손을 올리면서 말했다. “얘 멀미해요. 얼굴 좀 봐요.” 그제야 나는 사실은 오줌이 마렵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다 보는 길거리에서 오줌을 누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비상등을 켜고 갓길을 달렸다. 회사에서 융통성이 없다고 상사에게 구박을 받던 아버지는 갓길을 달리면서 박하사탕을 먹고 심호흡을 하는 것처럼 가슴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는 미소를 지었다.
“난 국수.” “난 자장면.” “아침도 안 먹었는데 밥을 먹어야지.” 여덟 명이 각자 먹고 싶은 것을 말하자 아버지는 주문할 음식을 외우려다가 포기를 했다. 그러곤 한 사람에게 오천원씩 주면서 각자 알아서 시켜먹으라고 했다. “나도?” 나는 좋아서 박수를 쳤다. “먹고 싶은 게 육천원이면 어떻게 해?” 고모가 물었다. 고모는 육천원짜리 돈가스가 먹고 싶다고 말했고, 삼천오백원짜리 가락국수를 먹을 예정인 큰삼촌이 천원을 보태주겠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오천원을 받은 나는 슈퍼마켓으로 가서 음료수 두 병과 과자 네 봉지와 초코파이 두 개를 샀다. 돈이 모자랐고 나는 과자 한 봉지를 뺐다. 그랬더니 돈이 남았다. 돈이 남으면 아버지가 다시 뺏을 게 분명했기 때문에, 나는 계산대 옆에 놓여 있는 소시지를 샀다.
비닐봉지를 들고 나는 돈가스를 먹고 있는 고모에게로 갔다. 고모가 돈가스 한 점을 입에 넣어주었다. 어머니는 김밥과 유부초밥을 먹고 있었는데, 김밥 끄트머리 두 개를 접시 끝에 모아두었다. 그게 내 몫이라는 것을 나는 알아차렸다. 그래서 고맙습니다, 하고 손으로 집어 김밥을 먹었다. 나는 목이 멘다고, 작은삼촌에게 라면 국물을 마셔도 되냐고 물었다. “국물만 마셔.” 나는 국물을 마시는 척하면서 면을 씹지도 않고 삼켰다. 식구들에게 이번에는 배가 아파요, 화장실 갈게요, 하고 말하고는 식당 밖으로 나왔다. 나는 벤치에 앉아 소시지와 과자 한 봉지와 음료수 하나를 마셨다. 그러고 초코파이 하나를 꺼내 마시멜로를 감싸고 있는 빵을 손가락으로 뜯어 먹었다. 엄지와 검지가 금세 초콜릿색으로 물들었다. “왜 그렇게 먹니?” 왼손에 깁스를 한 남자가 물었다. “여기 가운데 하얀 거요. 이것만 따로 먹으려고요.” 내가 말했다. 그러자 남자가 그걸 혓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있으면 기분 좋아지지? 하고 되물었다. “어떻게 알아요?” “나도 그래.” 나는 비닐봉지를 뒤져 초코파이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남자에게 주면서 이게 마지막 초코파이예요, 하고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했다. “나도 너처럼 먹어야지.” 남자가 초코파이의 봉지를 뜯으면서 말했다. 마침내, 흰색의, 동그란, 마시멜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걸 들어 하늘의 해를 가려보았다. “달 같지 않아요?” 그러자 남자가 자기의 마시멜로를 들었다. 나는 남자의 얼굴에 둥그렇게 그늘이 지는 것을 보았다. “하나, 둘, 셋.” 남자가 말했다. 우린 동시에 마시멜로를 혓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혓바닥이 간지러워졌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뒤돌아보니 식구들이 서 있었다. 어머니가 달려와 내 등을 때리면서 얘가 겁도 없이, 하고 말했다. 남자가 마시멜로를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내게 윙크를 하고, 깁스한 팔로 하늘을 한번 가리키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남자에게 안녕히 가세요, 라고 말할지 즐거웠어요, 라고 말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뭉게구름이었다. 내가 뭉게구름이라고 말하자, 식구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예쁘네.” “저건 꼭 커피잔처럼 생겼네.” 어머니가 말하고는 손을 들어 컵을 집는 시늉을 해보았다. 외할머니의 기억에는 돼지 냄새가 달력에까지 배어 있는 족발집에서 스테인리스로 된 물컵에 커피믹스를 타서 한 번에 마시곤 하던 딸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외할머니는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는 딸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러자 결혼을 시키지 말고 공부를 더 시켰어야 했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구들이 하늘을 보는 사이에 남자가 사라졌다. 작은삼촌이 꿀밤을 먹이면서 말했다. “이 꼬맹이가 무섭지도 않냐. 낯선 사람이랑.” 나는 비닐봉지를 안으면서 작은삼촌이 과자를 달라고 하면 절대 주지 않을 거라고 결심했다. 그때, 초록색 티셔츠에 검은색 반바지를 입은 일곱 살가량의 남자아이를 찾는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식구들이 동시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갑자기 나는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마를 만지면서 소리쳤다. “저렇게 잃어버린 아이들이 많은데. 내가 겁이 없는 게 아니라 우리 엄마 아빠가 겁이 없는 거라고.” “안 잃어버렸잖아.” 아버지가 말했다. “쏘리라고 말해줘.” 내가 말했다. 아버지가 내 입가에 묻은 초콜릿을 닦아주었다. “그래 쏘리다. 쏘리. 너 잔돈 남은 거 있으면 다시 내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