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새벽 네시에 온 식구들을 깨웠다. 고등학교를 다닐 적엔 이틀에 한 번씩 지각을 하던 작은삼촌이 단번에 일어나 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고모는 출발하기 오 분 전에 깨워달라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큰삼촌은 세수를 하고, 겨드랑이가 구멍난 줄무늬 티셔츠를 입었다. 그건 삼촌이 기분좋은 날만 입는 옷이었는데, 낡은 옷을 입는 게 못마땅한 할머니는 언젠가 큰삼촌 몰래 옷을 버리겠다며 벼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마당으로 나가 운동을 할까 생각했지만 평소와 달리 몸이 움직여주질 않았다. “나 아무래도 아픈가보다. 계속 잠만 온다.” 할아버지는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웠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열은 없는데.” 부엌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쌀을 씻던 어머니는 부엌 창 너머로 하늘을 보았다. 언제나 밥을 하는 그 시각이면, 앞집에 사는 꼬마아이가 유치원 옷을 입고 대문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꼬마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겨울날의 아침처럼, 앞집 대문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지금 여덟시 맞아요?” 어머니가 거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응.” 아버지가 거실 벽에 걸린 괘종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그러다 문득 왜 종이 울리지 않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가 어머니의 화장대에 놓여 있는 자명종을 보았다. 새벽 네시였다. 아버지는 새벽에 화장실에 갔다가 거실에 있는 시계가 여덟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늦게 출발하면 차가 막히는데. 그렇게 생각한 아버지는 온 방을 돌아다니며 식구들을 깨웠다. “아버지. 더 주무세요. 아프신 게 아니라 졸린 거예요.” 아버지가 소파에서 졸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도대체 시계 밥 담당은 누구야?” 할머니가 서랍에서 건전지를 찾으며 중얼거렸다. 식구들은 다시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
외할머니는 아침에 머리를 두 번이나 감았다. 그제 파마를 했는데, 아직도 머리에서 파마약 냄새가 나는 듯했기 때문이다. 미역국에 밥을 한 공기 반을 말아먹고, 지갑에 돈을 얼마 넣어가야 하나 고민을 하며 짐을 챙기고, 가지고 있는 모든 화장품을 다 발랐다. 그래도 출발한다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리모컨을 돌려가며 방송 3사의 아침드라마를 모두 보고,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난 뒤에 외할머니는 조심스럽게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제 가냐?” 외할머니의 말에 어머니는 잠결에 지금 몇 신데, 하고 되물었다. “아까 열시 넘었어.” 어머니가 자고 있는 아버지를 깨웠다. “늦었어.” 아버지는 새벽에 그랬던 것처럼 온 방을 돌아다니며 모두 일어나요, 하고 소리쳤다. 화장실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할아버지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싱크대에서 세수를 했다. “내가 진작 이층에도 화장실 하나 더 만들자고 했죠?” 작은삼촌이 투덜댔다. “삼촌은 얼굴이 까매서 세수를 안 해도 티 안나.” 내가 말했다. 고모와 할머니는 아이스박스에 담을 음식들을 챙겼다. “배고파.”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고모가 말했다. “지금 밥 할게요.” 어머니는 새벽에 씻다 만 쌀을 밥솥에 안쳤다. “언제 밥해서 먹냐, 사돈어른 기다리시는데, 가서 사 먹자.” 할머니가 말했다. 외할머니의 전화를 받은 지 삼십 분 만에 여덟 명의 식구들이 간신히 세수를 마쳤다.
외할머니는 경비실 앞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운전을 하고 있는 아버지를 본 할머니는 손을 두어 번 내젓더니, 제복을 입은 경비아저씨에게 뭐라 몇 마디를 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사람은 누구냐? 둘이 잘 어울리는데.” 뒷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가 고모의 구박을 받았다. “배고플 때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법이야.” 할머니가 고모를 흘겨보았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에게 구두를 신겨드렸다. 외할머니는 잠깐만, 하더니 경비실로 갔다. 그러고는 신고 있던 신을 경비실에 맡겼다. 어머니는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걷는 외할머니를 보면서 눈가를 훔쳤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등에 업혀 잠들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옆에 서 있는 나를 꼭 껴안으며 자주 업어줄걸, 하며 중얼거렸다. 업으며 키우면 다리가 휜다는 기사를 읽은 후 어머니는 나를 거의 업어주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대신 자주 안아줬잖아요, 하고 대답했다. “출발.” 아버지가 경적을 길게 울렸다. “얼른 차에 타요. 우리 모두 배고파요.” 나는 봉고에 막 올라타려는 외할머니의 엉덩이를 뒤에서 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