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군대에 간 작은삼촌은 일 년 만에 살이 십오 킬로그램이나 쪘다. 같이 입대한 동기 중에 디스크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의 원장 아들이 있었다. 그 동기를 교묘하게 괴롭히는 선임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동기는 살이 십오 킬로그램이 빠졌다. 군대 내에서 삼촌과 동기는 뚱뚱이와 홀쭉이로 불렸다. 홀쭉이는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 홀쭉이의 여행 이야기를 들으면서 삼촌은 4수를 하는 대신 세계일주를 떠났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작은삼촌은 식구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제가 휴가를 나가면, 모두 같이 여행을 가요.” 식구들은 한글 공부를 해야 한다며 답장을 나에게 쓰도록 했다. 나는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씩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모두 똑같은 말을 했다. “건강해라.” “더 없어요?” 내가 조금 길게 말해달라고 부탁했더니 밥 잘 먹고 건강해라, 라고 말했다. 할 수 없이 나는 옆집에 새로 이사온 사람들에 대해, 천하장사라는 소시지를 하루에 다섯 개씩 먹는 짝꿍에 대해 썼다. 길 건너 비디오가게가 망했다는 소식도 전하고, 내가 우유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작은삼촌은 내 편지를 홀쭉이에게 읽어주었다. 외아들인 홀쭉이는 작은삼촌에게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바람이라도 피워 어디 숨겨둔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어.” 작은삼촌은 홀쭉이에게 제대를 하면 집으로 초대를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홀쭉이는 만약 부모님이 디스크를 앓게 되면 공짜로 수술을 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 말은 홀쭉이를 괴롭힌 선임이 그토록 듣고 싶은 말이었다. 선임은 홀쭉이를 볼 때마다 허리 디스크로 몇 년째 고생하는 어머니가 생각이 났고 수술비가 없어서 수술을 못 시켜드리는 자신이 무능력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홀쭉이를 보면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었다. 홀쭉이는 선임이 죽도록 미울 때마다 작은삼촌이 읽어준 편지를 떠올렸다. “삼촌, 여행을 가기에는 제 가방이 너무 작아요. 책가방밖에 없어요.” 그 꼬마아이에게 멋진 가방을 선물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나는 달력에 동그라미를 쳤다. 작은삼촌이 휴가를 나온다는 날이었다. “이날 여행을 가야 해요.” 나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식구들에게 말했다. 할아버지는 이 식구들이 다 움직이려면…… 하고 말하다가 말문을 닫았다. 할아버지는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아버지가 네 살 때쯤 계곡으로 물놀이를 간 적이 있었다. 수영을 싫어했던 할아버지는 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낮잠을 잤다. 계곡은 다섯 살짜리 아이가 들어가기엔 너무 깊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 옆에서 수박 안에 들어 있는 씨를 골라냈다. 그리고 집으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 수박씨로 돗자리 위에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모기에 물린 종아리를 보여주었다. 할머니가 침을 발랐다. 아버지는 피가 나도록 종아리를 긁어대면서 울었다. “튜브도 하나 안 사주고.”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너 옛날에 계곡에 놀러 간 거 생각나니? 하고 물었다. 아버지가 아니요, 하고 대답했다. “제 기억에는 한 번도 가족여행이란 걸 간 적이 없어요.” 큰삼촌이 말했다. 사실 아버지는 계곡에 놀러 갔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큰삼촌의 말을 들으면서 ‘너는 태어나기도 전이야’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참에 어디 가서 고기 구워먹고 하룻밤 놀죠.”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가려면 니들끼리 가라.” 할머니는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며느리가 들어온 이후로, 손자가 생긴 이후로, 할머니는 말을 할 때마다 잔소리쟁이로 보이지 않도록 노력을 했다. 그래서 큰삼촌이 왜요? 하고 물었을 때 젊은 애들끼리 놀아야지, 하고 대답했다. 나는 고모에게 전화를 걸어 여행을 가는 것에 찬성인지 반대인지를 물었다. “좋은 데로 가면.” 할머니가 일찍 들어와라, 하고 소리쳤다. 고모가 네, 하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고모 귀 따가워.” 뭐가 웃긴지 내 말에 고모가 깔깔 거리며 웃었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고모는 무조건 찬성이래요.”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큰삼촌이 어머니 눈치를 살피더니 형수님, 하고 불렀다. “걱정 마세요. 우리 남자들이 다 할게요.” 그렇게 말하며 큰삼촌은 내 어깨에 손을 올려주었다. 갑자기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나만 믿어, 엄마, 하고 말했다. “니들은 그렇게 눈치가 없니?” 할머니가 한심하다는 듯 우리를 봤다. “그래. 다 같이 가자. 안사돈께 전화해라.” 그 순간 아버지는 자신이 얼마나 무심한 남편인지를 깨달았다. “우리 엄마는 구두가 한 켤레도 없어요.” 결혼 전 아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외할머니는 한 번도 고속도로를 달려본 적이 없었다. 외할머니는 36-1번 버스밖에는 타지 않았다. 집 앞에서 36-1번을 탄 뒤 열두 정거장을 가서 내리면 거기에 외할머니의 족발집이 있었다. 어머니는 추석날에도, 설날에도, 문을 닫지 않았던 족발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놀러 가자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외할머니는 니 결혼식 날에도 가게 문 열었던 거 알아? 하고 되물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버지가 전화를 가로챘다. “장모님. 제가 예쁜 구두 사드릴게요. 같이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