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에 어머니는 음식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족발집을 하는 외할머니는 어머니가 한 음식을 한 번도 맛있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주 어릴 때부터 설거지와 청소를 했다. 식당 일에 지친 외할머니는 집에 돌아오면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며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러다가 소파에 기대어 잠드는 일이 많았다. 외할머니는 어머니가 떠나고 혼자 남게 되자 비로소 청소를 해본 지가 십여 년도 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결혼을 해서 처음으로 한 음식은 콩나물국이었다. 외할머니의 식당은 청량고추를 넣은 콩나물국 때문에 또 온다는 손님이 있을 정도로 콩나물국이 유명했다. 어머니는 다른 건 몰라도 콩나물국과 동치미는 자신 있었다. 할아버지는 콩나물국을 먹으면서 아가, 이젠 마음놓고 술을 마셔도 되겠다, 라고 말했다. 작은삼촌은 국을 한 숟가락 떠먹더니 아예 대접째 들이마셨다. “너무 맛있어요. 새언니.” 고모는 용기를 내어 새언니라고 말했다. “이젠 온 식구들이 살찌겠다.” 할머니가 삐쩍 마른 큰삼촌을 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식구들의 예상과 달리 어머니는 할 줄 아는 음식이 그리 많지 않았다. 식구들은 콩나물국을 먹으면서 요리솜씨를 칭찬했던 것을 후회했다. 어머니는 아침마다 콩나물국을 끓였다. 어머니가 친정에 간 날 식구들은 저녁을 먹으면서 가족회의를 했다. “누군가 말해야 해요. 다른 것도 먹고 싶다고.” 작은삼촌이 말했다. “난 안 돼!” 고모가 말했다. 고모는 자신은 얄미운 시누이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럼 나도 싫다. 까다로운 시어머니는 어디서나 욕을 먹는 법이야.”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는 그 동안 즐겨 보았던 드라마들을 떠올렸다. “차라리 형보고 말하라 그러죠.” 삼촌들이 말했다. 하지만 그 의견에는 할머니의 강한 반대가 있었다. “우리가 뭐라 해도 걔 혼자 마누라 편을 들어야 하는 게야.”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째려보았다. “난 말 못한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안 그랬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작 어머니에게 콩나물국을 그만 먹고 싶다고 말한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당신의 아들이 일주일 내내 같은 국을 먹는다는 사실을 알면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슬퍼할 거야. 할아버지는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그제야 식구들에게 솔직히 말했다.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제가 잘하는 건 요리가 아니라 청소예요.” 어머니는 소파 아래에 쌓인 먼지나 화장실 변기의 찌든 때를 닦는 일을 좋아했다. 하지만 삼촌들은 어머니가 자신들의 방을 청소하는 걸 싫어했다. 할머니는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발가벗은 채로 화장실을 청소하는 걸 좋아했다. “나도 그렇단다.” 그 순간, 할머니는 며느리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누가 뭐라 해도 큰며느리는 내 편으로 만들어야지. 할머니는 생각했다. 할머니는 밥을 먹고 있는 식구들에게 말했다. “그렇게 먹고 싶은 게 많으면 직접 해먹어. 아님. 요리사를 고용할 만큼 돈을 많이 벌든지.”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입에 있는 밥을 씹지도 않고 삼켰다. 목에 메어왔고, 물을 두 컵이나 마신 후에도 계속 가슴이 아려왔다. “얘야, 넌 장래희망이 뭐였니?” 할머니는 괜찮니, 라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생각과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현모양처는 아니에요.” 어머니는 대답했다.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 때마다 장래희망이 무엇이었는지 물어봐주었던 그날의 아침식사를 떠올렸다. 그러면 섭섭한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이제부터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냉장고에 쪽지를 붙여주세요.” 다음날, 어머니가 포스트잇을 식구들에게 나눠주면서 말했다. “그럼 내가 처음으로 쓸까?” 할아버지는 고등어조림이라고 적었다.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요리노트라고 적은 공책을 펼쳐 첫 장에 고등어조림이라고 썼다. 고모는 인터넷에서 요리법을 찾아 요리순서를 같이 적어주었다. 고모는 여러 가지 요리 비법을 알게 되었다. 훗날, 요리 책을 써서 돈을 벌게 되었을 때 고모는 어머니에게 모두 다 새언니 덕분이라며 커다란 오븐을 선물했다. 큰삼촌은 오늘은 일찍 집에 올 거예요, 저녁은 제가 할게요, 라는 쪽지를 종종 남겼다. “누군지 도련님이랑 결혼하는 여자는 땡잡은 거예요.” 어머니는 큰삼촌이 결혼을 할 때를 대비해서 적금을 하나 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유치원에서 종이로 카네이션을 접는 방법을 배웠을 때, 나는 카네이션을 여덟 개나 접어야 했다. 큰삼촌에게 카네이션을 주면서 나는 삼촌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는 삼촌이 해준 카레가 세상에서 젤로 맛있어.” 큰삼촌은 나중에 꼭 삼촌을 위해 카레를 만들어줘, 하고 말했다. “응.” 나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