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아침마다 역기를 들었다. 회사 창립기념일마다 열리는 체육대회에 참석했다가 할아버지는 허리를 다친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할 줄 아는 운동이 없었다. 심지어 줄넘기도 열 개를 못 넘었다. 증조할아버지의 사주에 자식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들은 증조할머니는 결혼한 지 십이 년 만에 태어난 아들을 애지중지 키웠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문지방에 걸려 넘어질까봐 문지방을 없앨 정도였다. 할아버지의 피부는 구두에 원피스만을 입던 방앗간 딸보다도 하얬다. 친구들이 놀릴 때마다 할아버지는 친구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화가 날 때마다 소리를 지르던 버릇은 그때 생겼다. 체육대회에 간 할아버지는 줄다리기 선수로 뽑혔다. 깃발을 든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었고 할아버지는 줄을 잡아당겼다. 서너 번 팽팽하게 밀고 당기다가, 갑자기, 줄이 앞으로 확 당겨졌다.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자 할아버지의 팀은 손쓸 틈도 없이 무너졌다. 할아버지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줄을 놓았다. 그 순간, 넌 사내자식이 윗몸일으키기도 못하냐, 하고 놀리던 체육선생님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줄을 놓지 않았다. 무릎이 꺾였다. 심판이 다시 호루라기를 불 때까지 할아버지는 오십 미터는 족히 끌려다녔다. 줄다리기를 하다 허리를 다친 할아버지는 일주일이나 병가를 내야 했다. 집에서 쉬는 동안 할아버지는 네 명의 아이들과 나란히 누워 낮잠을 자곤 했다. 잠에서 깨어나면 할아버지는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마당을 거닐었다. 어쩌자고 네 명이나 낳은 거야. 할아버지는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후회를 했다. 허리가 다 낫자 할아버지는 역기를 샀다. “역기는 왜?” 할머니가 물었다. “막내가 결혼을 할 때까지 매일 운동을 하겠어.” 할아버지가 말했다.
퇴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는 자리를 양보받았다. 할아버지가 버스에 타자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여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할아버지가 나? 하고 묻자 여학생이 네, 하고 대답했다. 자리에 앉아 두어 정거장을 가다가 할아버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리를 양보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놀란 할아버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를 양보한 여학생이 놀란 눈으로 할아버지를 보았다. “내가 그렇게 늙어 보여? 난 할아버지가 아냐.” 버스 승객들이 일제히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린 할아버지는 누군가에게 알통을 보여주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할아버지는 눈에 보이는 술집에 들어갔다. 청년 두 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들의 테이블을 슬쩍 넘겨보았다.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아줌마. 두루치기에 소주 한 병.” 할아버지는 주방을 향해 호기롭게 외쳤다. 안주는 줄지 않았다. 딱 소주 한 병만 마시자, 라고 생각했지만 두 병을 마셔도 안주가 남았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소주를 한 병 더 시켰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소주가 남고 안주가 모자랐다. 할아버지는 다시 닭똥집볶음을 시켰다. 안주가 남으면 소주가 모자랐고, 소주가 남으면 안주가 모자랐다. 그날 할아버지는 돼지고기 두루치기, 닭똥집볶음, 파전을 먹었다. 소주 다섯 병과 함께.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여섯 병째 술을 시키자 술집 주인이 더이상 안 팔겠다고 했다. “할아버지 곱게 드시고 집에 가세요.” 술집 주인이 냉수 한 사발을 할아버지에게 주면서 말했다. 할아버지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내가 할아버지로 보여? 내가 할아버지로 보여?” 할아버지는 그 말만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옷소매를 걷고는 술집 주인에게 팔뚝을 만져보라고 말했다. “이 알통을 봐. 쌀 한 가마니도 들 수 있다구.”
할아버지가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동안 나는 거실에서 작은삼촌과 놀고 있었다. 작은삼촌은 관객이 별로 찾지 않는 운동경기를 보러 다니는 걸 좋아했다. 고교 육상대회 같은 것들. 포환던지기나 장애물달리기를 보면 쓸쓸하다는 말을 하는 게 얼마나 사치스러운지 알 것 같다고 삼촌은 생각했다. 작은삼촌은 거실에 베개를 늘어놓고는 말했다. “한번 넘어봐.” 삼촌은 내가 세 발짝에 한 번씩은 넘어져서 무릎에 보호대를 차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할머니가 물었다. “조기교육.” 작은삼촌이 말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베개를 넘어보려 했지만, 베갯잇의 끝자락에 걸려 넘어졌다. 바닥에는 할아버지가 쓰던 지압봉이 있었고, 거기에 이마를 부딪쳤다. 작은삼촌은 나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할머니에게 평생 들을 욕을 다 들어가며.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계속 내가 할아버지 같아? 라는 말만 중얼거렸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 당신이 할머니요?” 할머니가 되물었다. “손자가 다친 건 생각도 안하고.” 할머니가 베개로 할아버지의 등을 때렸다. 다음날 아침, 할아버지는 내 이마를 보더니 식구들에게 소리쳤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넘어졌어. 세 바늘 꿰맸다고. 당신 술 마시며 놀 때.” 할머니가 말했다. 할아버지가 내 이마를 만졌다. 아직 술이 덜 깨서 눈이 빨갰다. 나는 그 눈이 무서워서 울었다. “미안하다. 미안해.” 할아버지가 바닥에 주저앉더니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할아버지라고 불러라. 할아버지라고 불러.” 할아버지가 울면서 중얼거렸다. 의아한 눈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던 식구들에게 할머니가 말했다. “아침이나 먹자. 오늘 국은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