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것까지 큰삼촌에게 보여줄 생각은 없었다. 현관 입구에는 신발장이 있는데 작은삼촌은 신발장 문을 닫는 걸 잊곤 했다. 그래서 작은삼촌이 밖에 나가고 나면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신발들이 보였다. 신발은 한 칸에 두세 켤레씩 포개져 있을 정도로 많았다. 식구들 중 누구도 밖에 나갈 때 어떤 신을 신을지 고민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궁금했다. 그렇다면 저 많은 신들은 다 누구의 것이지. 그래서 신발장이 있는 곳으로 한발을 내디뎠다. 마침 집에는 큰삼촌밖에 없었다. 내가 한걸음을 더 내딛자 큰삼촌은 거실장을 열어 캠코더를 찾았다. 하지만 캠코더는 고모가 식구들 몰래 가지고 나간 뒤였다. 큰삼촌은 거실에 굴러다니는 볼펜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내 발 모양을 따라 그림을 그렸다. 내가 주저앉자, 거실 바닥에는 오른발 왼발 두 개의 발바닥이 보였다.
“형수님, 얘가 걸었어요. 이게 첫 발자국이에요.” 큰삼촌은 수박 한 통을 사들고 들어오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또래보다 일찍 걷기 시작했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속으로 보행기를 안 사줘서 그랬어요, 하고 말했다. 결혼하기 전 어머니는 주말이면 외할머니의 식당에서 일을 했다. 그때 손님 중 다리를 저는 아가씨가 한 명 있었다. 한 달이면 한두 번 찾아와 족발에 소주 반병씩을 먹던 아가씨였는데, 손님이 뜸하면 어머니가 합석해 남은 반병을 마셔주곤 했다. 여자는 어릴 때 보행기를 타다가 부엌으로 떨어져 다리를 다쳤다고 했다. “옛날 집이었거든요. 부뚜막이 있던 재래식 부엌이요. 엄마의 소원은 입식 부엌을 갖는 거였는데 제가 다친 후에야 그 소원을 풀 수 있었죠.” 고모가 백일선물로 보행기를 사주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그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보행기는 안 태울래요. 이렇게 사람이 많은 집에서 혼자 보행기에서 노는 아이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작은삼촌은 볼펜은 금방 지워질 수 있다며 송곳으로 발바닥을 다시 그렸다. 그리고 발바닥 가운데 날짜를 적어넣었다. 잔칫집에 갔다가 술을 한잔씩 하신 할아버지는 마룻장에 새겨진 발자국을 보면서 다 큰 어른들이 잘하는 짓이다, 하고 말했다. “이 집에서 평생 살아야겠네.” 할머니가 말했다. 언젠가는 분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어머니가 이사 갈 때 마룻장을 뜯으면 되죠, 하고 대꾸했다.
큰삼촌은 마당에도 똑같은 발자국을 그렸다. “신발을 신고 처음으로 걸었어. 처음으로 흙을 밟은 거라고.” 고모는 큰삼촌의 말을 듣고 동네의 모든 문방구를 뒤지고 다녔다. 결국 어느 문방구에서 고모는 곰발바닥 모양의 액세서리를 발견했다. 고모가 사온 곰발바닥을 본 큰삼촌은 목젖이 보이도록 큰 소리로 웃었다. 고모는 큰삼촌의 웃음소리가 낯설었다. 오빠가 이렇게 웃는 걸 본 적이 있었던가, 하고 고모가 생각하는 동안 큰삼촌이 말했다. “우리 나중에 북극곰 보러 알래스카에 가자.” 삼촌은 모종삽으로 흙을 살짝 파내고 내가 발을 디뎠던 곳마다 곰발바닥 모양의 액세서리를 심었다.
큰삼촌은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이면 마당으로 나와 곰발바닥 모양을 따라 걸어보곤 했다. 발자국은 여섯 번 정도 이어지다 끊어지는데 그 지점에서 내가 넘어졌기 때문이었다.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그렇게 중얼거려보면 처음으로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더 디딜 발자국이 없어지면 큰삼촌은 어린 내가 그랬듯이 두 다리에 힘을 풀고 마당에 모로 넘어졌다. 큰삼촌은 마당에 누워 별이 보이지 않는 하늘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왼쪽 어깨가 이슬에 젖었다. 큰삼촌은 미처 몰랐으리라. 훗날, 큰삼촌이 떠난 그 집에서, 내가 큰삼촌이 그랬던 것처럼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이면 어린아이처럼 걸음마를 연습해보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