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층을 지은 사람은 세 살 때 천자문을 외웠다는 아들을 둔 부부였다. 버스회사의 사위와 딸은 그 집에서 이 년을 넘기지 못했다. 동물원에 갔다가 곰에게 먹이를 주던 딸이 곰에게 오른팔을 물리는 사고를 당했고, 몇 차례나 수술을 했지만 오른손을 살리지 못했다. 요리책을 사서는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요리를 해보던 딸은 방안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결국 사위는 부인을 위해서라도 처가살이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시골에서 조그맣게 과수원을 했다는 부부에게 집을 팔았다. 부부가 과수원을 팔아 이사를 하기로 결심한 것은 아들 때문이었다. 농사를 짓는 것 말고는 다른 재주가 없던 부부는 이층에 방을 들여 하숙을 치기로 했다. 시골에 계시는 노부모가 먹을거리들을 부쳐주었다. 세 명이었던 하숙생이 네 명으로 늘고 다섯 명으로 늘었다. 창문이 없는 방이 생긴 건 몇 년째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학생의 부탁 때문이었다. 누워서 잠을 잘 수 없도록 작은 방을 만들어달라고 했을 때, 부부는 공부를 잘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에선 천재 소리를 듣던 아들의 성적도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고시생은 책을 찢어서 벽에 붙였다. 천장에도 붙였다. 고시생이 밀린 하숙비를 갚지 않은 채 사라졌을 때 그 방에는 찢어진 책과 팬티 두 장만이 남아 있었다. 지각을 했다는 이유로 담임선생님에게 따귀를 맞은 후로 아들은 몽유병에 걸렸다. 자다 일어나보면 고시생이 살았던 그 방에서 눈을 떴다. 벽에 붙어 있는 종이는 한문이 가득했다. 아들은 그중에 자신의 이름과 같은 한자가 있는지를 찾아서 손톱으로 자국을 내보곤 했다. 한자를 다 찾게 되면 다시 학교를 가리라 결심하면서.
부부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사이 고향의 과수원은 두 배나 땅값이 올랐고, 집을 팔아 살 수 있는 밭은 마늘밭뿐이었다. 하숙집 부부에게 집을 산 사람은 딸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층집이 필요 없었다. 그들을 사로잡은 것은 잔디가 깔린 마당이었다. “앵두나무를 심어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그들은 집을 계약하면서 중개인에게 말했다. “그럼 이층은 세를 놓으실래요?” 중개인이 물었다. 이층은 쉽게 세가 나가지 않았다. 이층을 지은 부부가 화장실을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가 나가지 않자 부부는 이층 현관문을 잠갔다. 어떻게 해서 딸이 이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는지, 창문에 매달려 무엇을 보려했는지, 부부는 알 수 없었다. 부부가 그 집을 버리다시피 떠난 것은 그래서였다. 내가 현관문을 잠갔던가? 하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목수는 자신의 이름을 수리한 집 어딘가에 새겨넣는 버릇이 있었다. 그것은 목수에게 일을 가르쳐준 김씨의 버릇이기도 했다. 목수는 할아버지의 주문대로 이층 창문을 막아버렸는데, 창문을 막기 전에 문틀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ㅎㅇ’이라고 새겼다. 내친 김에 일층 화장실 문 아래에도, 싱크대 문 안에도, 이층의 마룻바닥에도 이름을 새겼다. 수리를 마친 목수는 남은 나무로 네 사람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벤치를 만들었다. “이건 선물이에요.” 벤치에 마지막 못질을 하고 난 뒤 목수가 말했다.
증조할머니는 안방을 쓰겠다고 우겼다. 부엌 옆에 있는 방은 꼭 식모들이 쓰는 방 같아서 싫다고 증조할머니는 말했다. “어머니는 혼자지만 우리는 둘이에요.” 할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는 동생들이 이층으로 뛰어올라가 자신들의 방을 고르는 모습을 구경했다. 작은삼촌은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 된 대학생이 묵었던 방을 골랐다. 여자아이가 떨어졌던 그 방을. 큰삼촌은 창이 없던 그 방을 골랐다. 하숙집 아들이 방문을 잠그고 며칠씩 틀어박히곤 했던 그 방은 이제 가장 전망 좋은 방이 되었다. “그럼 난 이 방.” 아버지는 동생들이 차지하고 남은 방을 골랐다. 아버지는 방문을 열었다. 창문 밖으로 맞은편 집의 붉은 벽돌이 보였다. 일층과 이층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왔다갔다하던 고모가 마당 한가운데 서서 울었다. “내 방은 없어.” 그제야 할아버지는 방이 하나 모자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랑 같이 쓰기 싫으냐. 고얀 놈!” 증조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가 싫은 게 아니야. 오빠들만 방이 있는 게 억울한 거라고.” 할아버지가 큰삼촌과 작은삼촌에게 둘이 같은 방을 쓰라고 했다. 큰삼촌은 자신이 고른 방을 양보하지 않았고 작은삼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는 삼촌들에게 가위 바위 보를 하라고 시켰다. 눈치 빠른 삼촌들은 똑같이 가위를 내었다. 지친 고모가 난 할머니랑 잘래, 하고 말할 때까지 삼촌들은 가위를 내고 또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