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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할아버지는 이사를 가기로 결심을 했다. 고모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애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예쁜 방을 꾸며줄 거야.’ 시장에서 떡을 팔아 결혼한 지 팔 년 만에 집을 마련한 증조할머니는 증조할아버지가 생전에 베던 목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 집을 샀을 때 니 애비와 나는 다짐을 했단다. 여기서 손자손녀 키우며 죽을 때까지 살자고.” 증조할머니는 옷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할아버지는 증조할머니가 울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증조할머니는 양파를 썰 때를 빼고는 울어본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아이는 넷이나 되는데 방은 세 개밖에 되지 않는다고, 대학을 보내려면 아이들에게 공부방이 필요하다 말했다. 할아버지는 적금통장을 바닥에 펼쳤다. 통장은 모두 다섯 개였다. “저도 제 힘으로 마련한 집에서 손자손녀 키우며 죽을 때까지 살고 싶어요.”
아버지는 동생들을 데리고 문방구로 갔다. 그리고 노트 한 권을 샀다. 거기에 살고 싶은 집을 그릴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언젠가 보았던 주말의 영화를 떠올려보았다. 다락방에서 잠을 자는 아이들이 어찌나 부러웠던지! 노트에 이층집을 그리는 아버지에게 큰삼촌이 말했다. “형, 내 방은 지하에 있었으면 좋겠어.” 큰삼촌은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아버지에게 보여주었다. 코가 커다란 박사가 무엇인가 실험을 하고 있는 장면이 그려진 만화였는데, 종이 귀퉁이에 떡볶이 국물이 묻어 있는 걸로 봐서 학교 앞 만홧가게에서 찢어온 것이 분명했다. “발명가들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작업실이 있다는 거야. 그것도 지하에.” 큰삼촌이 검지를 입술에 대고 속삭였다. 큰삼촌은 언제나 비밀을 고백하는 사람처럼 말을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놀라는 사람은 고모밖에 없었지만. “넌 혼자 자는 거 안 무서워?” 아버지가 고모에게 물었다. “할머니가 얼마나 코를 고는지 모르지? 난 차라리 오빠들하고 잘래.” 작은삼촌은 노트에 이렇게 적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셋째의 방은 잠들면 저절로 불이 꺼지는 형광등을 달아줄 것.” 아버지가 삼촌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런 게 어디 있냐?” 그러자 큰삼촌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지하실만 만들어줘. 내가 발명할게.” 희망사항이 노트 한 권에 다 채워질 때까지 할아버지는 집을 보러 다녔다. 이층집을 사기에는 적금통장의 돈이 터무니없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래도 할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집은 오 년째 비어 있었다. 이층에서 아이가 떨어져 죽는 사고가 생기지 않았다면 그 정도 가격에 내놓지도 않을 집이라며 부동산 중개인이 말했다. 하지만 분홍색 잠옷을 입은 여자아이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소문을 들었다 해도 할아버지는 집을 계약했을 것이다. 중개인의 말처럼 할아버지가 가진 돈으로 그만한 크기의 집을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으므로.
할아버지는 개망초로 덮인 마당을 거닐며 생각했다. 어느 집이나 죽는 사람은 있는 법이라고. 개구리도 손으로 잡지 못할 정도로 겁이 많던 할아버지가 용감해진 것은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였다. 증조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후 할아버지는 잠을 자기 전에 하루에 열 번씩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제부턴 나를 믿어야 해.’ 그렇게 주문을 외우고 잠을 자면 증조할아버지가 꿈속에 나타나 대답을 해주었다. ‘걱정 마라. 내가 돌봐주마.’ 할아버지는 아이가 떨어졌다는 이층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 창문은 위험하니까 막아버려야겠어, 라는 생각을 하면서. “수리를 많이 해야겠네. 조금만 더 깎아주세요.” 할아버지는 흔들리는 문을 닫았다 열었다 하며 중개인에게 말했다. 거실 벽에 걸린 괘종시계는 12시 25분에 멈춰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네.” 할아버지는 행운의 네잎클로버를 찾은 사람처럼 기분이 좋아졌다.